세계문학전집 364번이 비어있는 이유, 이 사람들은 압니다

[책이 나왔습니다] 읽는 것보다 사는 속도가 빠른 책덕후들의 이야기,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등록 2021.02.17 09:02수정 2021.02.1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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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책이 나왔습니다'는 저자가 된 시민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저자가 된 시민기자라면 누구나 출간 후기를 쓸 수 있습니다.[편집자말]
독서 커뮤니티에도 신출내기를 위한 혹독한 신고식이 존재한다.
강호의 고수들에게 잔뜩 예의를 차리고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는 신출내기들이 올린 글에는 댓글이 순식간에 달리는데 그 댓글의 다수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나 <피네간의 경야>다. 

책 덕후의, 책 덕후에 의한, 책 덕후를 위한 책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위 글에서 말하는 '독서 커뮤니티'는 디씨 인사이드의 독서갤러리와 도서갤러리를 말한다. 여기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은 대체로 책을 사는 속도가 읽는 속도 보다 빠른 사람들이다.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책을 사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독서를 해보겠다고 도움을 청하는 독린이(독서 초보자)에게 세상에서 가장 난해하다고 소문난 <율리시스>와 <피네간의 경야>를 추천하는 장난기를 발휘하기도 하지만 이 두 책은 이들에게 영원한 숙제이며 떡밥이다.

책 수집 덕후로 지낸 20년
 

표지 표지 ⓒ 소명출판

 
이미 소장하고 있는 책의 한정판 리커버 버전이 나오면 '빨리 주문하지 않고 뭐하고 있어?'라고 서로를 다그치며 군대 월급, 회사 복지 지원금, 설날 세뱃돈을 털어서 주문 버튼을 떨리는 손으로 누르는 사람으로 가득찬 디씨 인사이드 독서 커뮤니티.

그곳에 20년 상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책의 물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책과 출판의 뒷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은 책 수집 덕후로 지낸 20년 인생의 결과물이다.
 
다른 책 애호가들의 내밀한 목록을 살피고, 분투를 들여다보는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클리앙이나 디시 같은 곳에서 활동하는 독서광들의 세계를 알려주는 에피소드들을 듬뿍 담고 있어서 무척 흥미롭다. 

혹여 써 본 사람은 알겠지만, 꾸준히 책 이야기꾼들의 세계에 참여해 시간을 바치고, 자료를 모아 온 내공이 없으면 이런 글을 책 분량으로 써 내는 것은 꿈도 못 꾼다. 책 내용은 검색으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책을 둘러싼 에피소드들은 직접 독서광 세계에 뛰어들어 꾸준히 체험하면서, 호기심을 느낄 만한 이야기들을 몸에 새겨 넣지 않으면 글로 나오기 어려운 까닭이다. - 출판평론가 장은수 선생의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서평 중에서 

책덕후들만 아는 이야기

읽는 속도보다 책을 사는 속도가 빠른 사람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그저 난해한 책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이 난해한 책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전설의 17장 마지막 줄 파리똥 사건은 어떻게 해서 일어난 것인지 궁금해 하고 탐구한다.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판매 금지된 <율리시스>를 독자들에게 읽히기 위한 랜덤하우스 출판사가 감행한 기상천외한 밀수 작전 이야기도 이들이 좋아하는 화젯거리다.

또 보통의 독자라면 별다른 생각 없이 넘겨버리는 각 출판사의 세계문학 전집 1번은 출판사의 어떤 의도가 숨어있는지 알아내려고 애쓴다.

일반 사람들이 유럽여행을 앞두고 맛집이나 숙박 업소를 검색할 때 책 덕후들은 어떤 책을 들고 다니면서 여행지를 즐길 것인지 고민한다.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364번이 비어 있는 이유를 두고 집단 지성을 발휘해서 그 이유를 밝혀내고야 만다.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은 책 덕후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책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가 어떻게 재빠르게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소개되었는지, 나쓰메 소세키가 어떤 이유로 표지 디자인을 직접 했는지, 과연 실존하는 인물인지가 논란의 대상이었던 전설의 번역가 채대치는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윤동주 시인이 너무나 읽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굴렀던 <사슴>은 어떤 시집인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바둑 소설 <명인>을 번역한 민병산 선생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려준다.

또 단순히 전설적인 영어 교재 저자로만 알려진 <성문종합영어>의 송성문 선생의 깜작 놀라만한 노블리스 오블리제 스토리와 아내를 향한 애절한 시가 담겨있다.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박균호 (지은이),
소명출판,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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