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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하는 인간' 저자 권수영 교수에게 듣는 자기돌봄의 기술

등록 2021.02.18 14:56수정 2021.02.1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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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모르는 듯 치솟는 부동산 시장과 지속적인 불황 때문에 안 그래도 팍팍한 세상인데, 2020년 한 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에게 정말 고통스럽고 암담한 시간이었다. 누구도 앞날을 예측할 수 없었고 세상과 단절된 가운데 우울감을 호소하는 국민들에게,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권수영 교수는 그의 책 <치유하는 인간>에서마음돌봄의 기술을 소개한다. 

권 교수는 현재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원장이자 상담코칭학 교수, 그리고 상담코칭지원센터장과 가습기살균제보건센터 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상담진흥협회 회장, 한국상담서비스네트워크 이사장까지 다양한 직임을 수행하고 있다. 방송에서도 자주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친근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많을텐데, 그는 EBS '세바시'와 '명강, 마스터', tvn '어쩌다 어른', 'Shift' 등에 출연했다.   
 

<치유하는 인간>의 저자 권수영 교수 ⓒ 유영수


작년에 4부작으로 방송된 tvn 프로그램 'Shift'에서 코로나 확진자의 죽음과 관련된 내용을 가족과 유관 기관 관계자 등과 인터뷰한 그에게 방송을 하면서 어떤 걸 느꼈는지 물어보았다. 


"모든 상담은 애도 상담이라고 봅니다. 상실한 것에 대해 슬퍼해야 하는데 사회 시스템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요. 코로나로 인해 돌아가신 분들이 많은데 이걸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단순히 숫자로 보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에 대해 애틋해 하는 마음, 애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거죠. 미국 뉴욕타임즈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의 부고를 1면에 실으면서 사람들이 추모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했는데, 우리 사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노력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다음은 권수영 교수와 줌(zoom)으로 나눈 인터뷰의 내용이다.

- 현재 가습기살균제 보건센터를 책임지고 계시는데 그 피해자들과 상담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느끼셨을 거 같아요.
"전국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7천여 명쯤 있다고 하는데요. 환경부에서 작년 3월부터 그분들의 정신건강을 돌보는 취지에서 이 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저희 학교에서 위탁관리하고 있습니다. <치유하는 인간>을 탈고하면서 그분들께 헌사하는 내용을 책에 적기도 했습니다.

피해자 중에는 직장을 잃거나 학교생활이 어려워지는 등 일상생활이 무너져 버린 분들이 많은데, 가족들을 위해 가습기 살균제를 사서 사용했던 분들이 자책감을 가지고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이 매우 안타깝죠. 저같은 전문가나 국가 차원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돌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힐링'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교수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라틴어 Homo Sanans(치유하는 인간)를 말하고 싶은데요. 히포크라테스는 '의사는 치료하고 자연은 치유한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결국 인간은 누구나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인데요. 이것은 신이 주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체는 물론 정신적인 면에서도 동일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곳을 여행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외적인 것 말고 내면에서의 힐러의 기능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회복탄력성이라고 말해도 괜찮겠죠."


- 대학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하실 때와 방송에서 대중을 상대로 강의하실 때, 교수님 개인적인 입장에서 각각 장단점은 뭐가 있을까요.
"대학 교수는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로 분류하는데 조교수 때는 자기가 모르는 것만 가르치고, 부교수 시절에는 자기가 아는 것을 가르치는 반면, 정교수가 되면 자기가 기억나는 것만 가르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정교수 정도 되면 중학생들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풀어내는 능력이 생긴다고 봐요. 대중들에게는 어려운 말로 강의하면 바로 욕 먹거든요. 일찍부터 대중과 소통하며 강의를 했던 경험은 교수법의 측면에서도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아이들이 정서 조절 가능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공감이 필수적이다' 이런 내용이 책에 있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부모의 입장에서는 문제가 뻔히 보이니까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서 공감을 하기가 참 어려운 게 현실인데요. 이 두 가지가 부딪힐 때 혹시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부모로서 또 교수로서, 교사의 입장에서 답이 보이면 상대의 마음을 공감하기 어렵죠. 우리가 다 같이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부모님들이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준다면,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을 물어보면서 함께 마음을 맞추는 일이 중요합니다. 머리로만 맞추려고 하지 말고, 마음을 맞추면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잘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건 부부 간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 한국 사람들은 특히 '감정적이다'라는 표현처럼 감정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시죠.
"우리나라가 빠른 속도로 성장을 이룬 것에는 한국인의 감성이 많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왕의 명재판 장면을 아실텐데요. 한 아이를 두고 두 여인이 서로 자기가 친모라고 주장했을 때, 솔로몬이 '그럼 아이를 둘로 나누어 가져라'고 한 것이, 얼핏 보면 이성적인 판단같지만 사실 매우 감성적인 면에서 결정을 내린 거라고 생각해요.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감정을 적절히 표출하지 못하는 부분인데요. 그것도 관계의 욕구가 많기 때문이라고 역설적으로 이해하시면 되는데, 예전에 비해 관계에 대한 욕구를 충족할 수 없어서 사회적인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고 봅니다. 서로를 향한 감정적 연결점, 연대의식을 지혜롭게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 '치유하는 인간'에서 마음돌봄에 필요한 8가지 기술의 영어 단어 앞 글자를 따서 힐링이라는 단어를 완성하셨는데요. 8가지 모두 중요하겠지만 교수님이 보시기에 특히 더 중요한 기술을 꼽는다면 어떤 것일까요.
"8가지 기술 중 '성장(growth)'을 말하고 싶습니다. 세월호 사건 유가족이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평생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경험한 셈인데, 이들에게도 그 어려운 사건을 통해 오히려 성장하는 측면을 볼 수 있다는 거죠.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구별해서 외상후 성장(PTG)라고 설명합니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온라인으로 인터뷰하며 그의 인생을 마주함. ⓒ 유영수


-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스캇 펙은 '성장이란 어린아이가 어른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은 것인데, 한 걸음 살짝 내딛는 것이 아니라 두렵게도 단숨에 도약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데요. 교수님께서는 성년기로 도약하는 특별한 전환점이 언제였는지 궁금합니다.
"좋은 질문이네요. 제가 고 이한열 열사와 같이 종로학원에서 재수를 했는데요. 삼수를 통해 87학번으로 연세대에 입학한 후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죠. 제 학부 전공이 신학이고 부전공으로 사회학을 하기도 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사회운동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유학할 때 우연찮게 정신분석을 공부하게 되었고, 그때 개인상담을 받으면서 제가 얼마나 불안이 많은 사람인지 처음 알게 됐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 진로가 바뀌는 계기가 된 것이죠. 

대학생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남탓, 나라탓만 할 게 아니라 자기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 대학생뿐 아니라 정치인들에게도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데, 맨날 니탓이라고만 하지 말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일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상담은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 이왕 스캇 펙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사랑에 대해 한 가지 더 여쭤보겠습니다. '사랑은 자신이나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돕기 위해 자신을 확대하는 의지'라는 스캇 펙의 정의는 자주 인용되는 명문장인데요, 교수님의 사랑에 대한 정의, 혹은 생각은 무엇인지 알려주십시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 마틴 부버의 <나와 너>가 떠오릅니다. 죽도록 사랑한다고 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사랑이 사라졌다고 호소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그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보지 못하고 '대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상담자들도 내담자를 볼 때 순수하게 You로 봐야 하는데, '이 사람 너무 어려운 대상인데 어쩌지?'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면 진솔하게 그 사람과 접촉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초보 상담자들이 주로 이런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많죠. 대학생들이 저에게 좋은 책 딱 한 권만 추천해 달라고 하면, 저는 주저없이 <나와 너>를 권합니다."

- 마지막으로 코로나 블루 때문에 삶이 팍팍해지고 또 우울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많은데, 마음돌봄에 관한 책의 저자로서 또 상담학 전문가로서 어떻게 이 난국을 잘 대처해 나가면 좋을지 한 말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관계하지 못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 상실을 겪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우울감을 느끼시는 건 너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 대해 있는 그대로 인정하시는 게 필요하고요,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연대감을 잘 느낄 수 있는 방법들을 활용하시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랜선 술파티도 한다고 들었는데, 이런 다양한 방식으로 지혜롭게 우울감을 이겨나간다면 우리 국민들은 충분히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낼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것이 또 다른 의미의 '치유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기사에 미처 싣지 못한 자세한 인터뷰 내용 전체를 권 교수님의 동의를 받고 저의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channel/UCnt4lRPehsH-nPdd4n7BuPA에 업로드했습니다.

치유하는 인간 - 타인도 나 자신도 위로할 줄 모르는 당신에게

권수영 (지은이),
EBS BOOKS, 2020


##권수영교수 ##치유하는 인간 ##책마주 ##책을통해저자의인생을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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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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