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0년 만에 거리에 선 이유

'송강호 평화운동가 석방 촉구 기자회견' 참여 후기

등록 2021.02.08 16:12수정 2021.02.1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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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6일 오전 9시 40분]

내가 제주강정마을을 알게 된 건 십 년도 더 된 일이다. 평소 팔로잉하던 작가의 트윗에서 제주에 해군기지가 건설된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부터다. 해군기지건설 반대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관련 트윗을 리트윗하며 관심을 표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다였다. 가족들과 제주 여행을 가고 성산일출봉에 올라 오메기떡은 사먹었지만 강정마을에 들러 직접 구호를 외쳐볼 엄두는 못내었다. 경찰의 공권력이 두려웠다. 그들과 직접 마주할 만한 번거로움을 감내하기는 싫었다. 딱 그 정도의 관심이었다. 

당시의 내 대학생활은 분주했다. 사회가 원하는 경쟁력 있는 인재가 되기 위해 영어공부도 해야 했고 데이트를 위해 스커트에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종종거리며 다녔다. 여러 가지 사회의 이슈들과 마찬가지로 당장 나와는 밀접한 관련이 없는 강정마을은 점차 관심 속에서 멀어져갔다. 

최근에 알게 된 친구 수피아는 제주에 자주 오갔다. "제주 어디에 다녀 왔어요?"라는 질문에 그녀는 강정마을에 다녀왔다고 했다. 강정... 오랫동안 젊은 기억 먼 곳에 묻혀있던 작은 섬. 수피아가 건네준 책을 읽었다.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의 저자 송강호는 국제구호단체 '개척자들'을 세웠고 르완다, 소말리아,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 반다아체 , 카슈미르, 아이티 등에서 평화 활동가로 활동하였다. 그러다 해군기지 건설 소식이 들리자 제주로 와서 반대투쟁을 전개하며 강정 앞바다에 몸을 던지고, 중장비에 맞서 사슬을 두르기도 하였다.

2011년에는 해군과 경찰의 폭력에 만신창이가 되며 제주교도소에 처음으로 수감되었다. 이후에도 구럼비 바위가 발파되기 직전까지 매일 그곳에 올라 평화를 위한 기도를 올렸던 송강호 평화운동가는 네 번 수감됐는데 2020년 3월에 또 구속이 되어 지금까지 감옥에 있다는 뉴스를 찾아보게 되었다. 구럼비 바위 발파 8주년이 되는 날 이제는 펜스로 막혀버린 구럼비 바위에서 기도를 하게 해달라고 해군기지에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답을 듣지 못하자 펜스를 뚫고 기도를 하고 정문으로 나온 것이다. 

기억의 무덤에 덮여 있던 강정이 조금씩 형체를 드러냈다. 놀랐다. 송강호를 포함한 강정마을 평화활동가들은 십 년도 넘는 그 세월동안 계속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이후 그의 옥중에서 쓴 편지를 인터넷 뉴스로 찾아보았다. 그는 감옥에서조차 강정을 전쟁과 폭력과 싸우며 평화를 배우는 학교로 세우기 위한 꿈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대검찰청 앞에서 진행된 '송강호' 석방 촉구 기자회견 왼쪽부터) 이명옥 공동대표(평화어머니회), 민승준 위원장(개성관광재개운동본부), 나, 홍선희(동북아평화연대 공동대표) ⓒ 송원재

 
제법 긴 시간동안 운동가들과 주민들은 늘 강정에 있었다. 서로 연대하고 투쟁하며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평화, 그 아득한 희망을 걷다> 책 페이지를 넘기는 한 장 한 장 부끄러움이 켜켜이 쌓여갔다. 그들의 투쟁을 못 본 척하고 그들의 투쟁이 사실 우리 모두의 평화를 위한 것이었음에 고개 돌렸던 것. 하지만 모른 체 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가족과 아침식사를 함께하고 친구와 카페에 앉아 한참을 깔깔거렸던 것, 낙엽 지는 돌담길을 좋아하는 사람과 손잡고 걸었던 일상의 작고 소중한 것들이 바로 '평화'임을. 거저 주어지는 것 같은 당연한 일상이 투쟁의 최전선에서 자신의 개인적 평화와 자유를 기꺼이 대가로 지불하고 철장 안에 갇힌 송강호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임을 나는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나는 빚을 졌던가? 그렇다. 나는 송강호와 그와 같은 이들 때문에 지금 '평화'롭게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이 빚을, 이 부채감으로 인해 불편한 마음을 어떻게 덜어낼 수 있을까. 아주 작은 것이나마 해야 한다. 


그의 석방을 촉구하고, 실형을 내린 판사를 규탄하는 집회소식을 들었다. 집회하는 이들 옆에 서있기라고 하고 싶었다.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비폭력적 시위를 주도한 운동가가 감옥에 갇혀있다니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무언가 해야 했다. 

'송강호는 제주와 세계평화를 수호하고, 나는 그 일을 하는 운동가를 수호해야한다.'

어떤 의지의 한줄기가 답답했던 숨을 트이게 했다. 그리고 나는 십 년 이상의 세월동안 알고 있던 제주강정마을을 위해 송강호 평화운동가를 위해 처음으로 직접 몸을 일으켜 거리로 나섰다. 지난 5일 대검찰청 앞에서 현수막을 들고선 나를 사람들이 지나쳐갔다. 현수막 문구를 유심히 보는 이도 있고, 무심하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치는 이들도 있다. 바로 어제까지는 저들이 나였다. 오늘은 현수막 모서리를 한쪽을 쥐고 선 자가 나다. 

개성관광재개운동본부 민승준 위원장은 "전쟁 중인 한반도에서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무죄입니다. 한반도 평화의 바다 제주에서 평화의 기도를 하다 감옥에 갇힌 송강호 평화운동가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하며 한반도를 전쟁없는 세상으로 바꾸는 그의 용기와 격려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사법부의 무죄 선고를 기대합니다"라고 발언했다.

이어 서울통일의 길 대외협력팀의 송원재 실장은 "평화로운 제주 남쪽바다에 군사적 위험이 있다는 핑계는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편승하여 우리 땅을 미국의 대중국 전초기지로 내주기 위한 허울일 뿐입니다. 그런 거짓된 동기로 천혜의 자연환경을 부수고 세워진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것은 평화운동가로서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지건설반대 투쟁에 보여준 몇몇 행동만을 문제 삼아 과도하게 실형을 선고하는 것은 법의 형편성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 부당한 판결로 검찰과 법원이  국민위에 군림한다면 잘못된 일입니다. 송강호 평화운동가를 즉각 석방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평화어머니회 이명옥 공동대표는 "평화비행기를 타고 강정마을에 갔을 때 구럼비 바위에 가는 것을 막는다고 가장 아름답다는 제3올레 길을 경찰들이 막고 못 들어가게 했습니다. 자연은 인간이 파괴하고 훼손하고 정복하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송악산 해안을 개발하려 하는데 만약 개발을 한다면 오름과 지형이 망가져 귀중한 세계유산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잘 보존된 자연을 후손에게 되돌려줘야 합니다"라고 외쳤다.

전쟁기지를 짓기 위해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을 훼손하고 강정마을 공동체를 분열시킨 국가의 폭력에 대항하기 위하여 그리고 평화를 수호하고자 기꺼이 공권력과 맞선 평화운동가를 위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나는 십 년 만에 거리에 섰다.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고 모욕당하고 수감되는 이들 덕에 누리는 일상이라는 평화를 조금은 떳떳하게 살아가기 위해 나도 송강호를 위해 소리 내 구호를 외쳤다.

"송강호를 석방하라! 해군이 뺏어간 구럼비를 시민에게!"

21세기. 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공황상태에 빠진 와중에 k방역, kpop, kmovie 등 대한민국의 위상은 위기를 기회삼아 더 높아져만 가는 것처럼 보인다. 며칠 전에는 대한민국이 미국매체 블룸버그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국가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동북아평화를 해치고 천혜의 자원을 파괴하며 마을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는 것이 21세기가 기대하는 혁신일까? 세계자연유산 제주에 평화의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평화의 공원'를 설립하는 것이 21세기 세계를 놀래킬 만한 혁신이 아닐까. 송강호 평화운동가를 석방하고 해군기지가 아닌 평화의 공원을 건설하는 근사한 혁신국가 대한민국을 기대해본다. 
#송강호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구럼비 #검찰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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