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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전 의원 딸에게 일어난 흔치 않은 일

[하성태의 인사이드아웃] 10과목에서 성적 정정, 검찰은 '교수 재량'이라고 불기소

등록 2021.02.08 19:00수정 2021.02.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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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여러 프레임 공격으로 인한 혐의(자녀 특혜 의혹 등)들에 대해 검찰이 모두 무혐의 처분을 했다. 그게 출마에 대한 판단의 여지를 넓혀줬다."
- 1일 <시사저널>, '[인터뷰] 나경원 "安, 자신 있다면 우리 당 경선 들어오라"' 중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나경원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털어놓은 출마 결심의 결정적 계기다. 나 전 의원은 이어 "결단력 있게 해결해 나가며 국민의 지지도 받고 현 정권을 심판할 부분을 해야 하는데 그 부분엔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이긴 했다. 그래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검찰의 역할을 언급한 대목일 수밖에 없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는 지난해 12월 24일 나 전 의원 자녀들과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회, 사단법인 스페셜올림픽코리아(SOK) 등과 관련된 고발사건을 무더기로 불기소(13건은 불기소, 1건은 기소중지) 종결 처리했다.

"여지를 넓혀줬다"라는 말의 해석을 달리하면,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없었을 경우 '판단의 여지'가 좁혀질 수도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일까. 나 전 의원은 여러 매체 인터뷰에서 지속해서 "이성윤 검찰로부터 무혐의를 받았다"라거나 "이성윤 중앙지검장이 저한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줄 줄은 몰랐다"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검찰이 아닌 이성윤 검찰이란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보수‧경제지들이 '친 추미애', '추미애 측근'이라 일컬었던 이성윤 중앙지검장이 진두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이 일종의 면죄부를 부여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나 전 의원. 그 역시 검찰의 수사나 기소에 '정치적 판단'이 어느 정도 개입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셈인가.

검찰의 불기소 처분으로부터 3주 후 나 전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윤 총장이든 이 지검장이든, 결과적으로 검찰이 서울시장 예비후보 나경원의 출마 결정에 날개를 달아준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일부 언론이 인터뷰에 나선 나 전 의원에게 질문을 던져도 "사건조차 안 되는 거"라는 고발 사건들은 그렇게 검찰에 의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헌데, 석연치 않다. 나 전 의원을 단 한 번도 소환조사하지 않은 검찰이 일부 사건을 무혐의 처분한 사유 말이다. 우선, 최근 나 전 의원 관련 사건을 서울고검에 일괄 항고한 시민단체 중 하나인 '사립학교개혁과 비리추방을 위한 국민운동본부'가 공개한 나 전 의원 딸의 성적 정정 내용만 봐도 그랬다.


검찰의 크리스마스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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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개혁과 비리추방을 위한 국민운동본부가 공개한 나경원 전 의원 딸의 성적 정정 내용.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엔 이와 같은 성적 정정이 모두 10번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 사립학교개혁과 비리추방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대학을 다녀본 누구라도, 특히 교수나 강사, 재학생이라면 두 눈을 의심할 만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2학년부터 4학년까지, 총 네 학기에 걸쳐 각기 다른 과목에서 무려 10번의 성적이 향상됐다. Dº가 A+가 되고, C가 A나 B로 정정된, 비상식적으로 성적이 올라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성적 정정 자체만큼 눈길이 가는 것은 교과목과 비고란(정정 절차)이었다. 나 전 의원 딸 김아무개씨는 성신여대에서 실용음악과를 전공했다. 맞다. 지난 2016년 부정입학 의혹이 제기됐던 바로 그 학과다.

일례로, 김씨가 C+에서 A+을 받은 과목은 영화예술의 이해다. 수강생이 대규모인 인기 있는 교양과목 중 하나다. 타과생들과 함께 수강하는 강의이기에, 성적 경쟁도 당연히 치열할 수밖에 없다. 김씨는 이 인기 교양과목에서 C+에서 A+로 성적이 정정됐다. 다른 과목들 역시 2013학년도 2학기 '화성법2', '콘서트 프로덕션'을 제외한 나머지도 전공과목이 아닌 걸로 보인다.

검찰은 이 모두를 "교수와 강사의 재량"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말이다, 전국의 대학에서 각기 다른 연도의 각기 다른 10개 (교양) 과목의 교수(강사)들이 특정 학생의 성적을 일제히 월등하게 높여 정정해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그 흔치 않은 일이 나 전 의원 딸에게 일어난 셈이다. 

정정 절차도 의아하다. 전공과목은 학과 이메일을 통해, 여타 교양과목은 학생지원팀의 협조문을 통해 이뤄졌다. 민생경제연구소 등 고발단체는 그 과정에서 교수나 강사의 의사가 배제된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최근 <더팩트>가 보도한 검찰의 불기소 결정서에 따르면, 검찰은 이 모두를 "교‧강사의 재량"으로 봤다. 검찰은 "변경 편차가 비교적 큰 과목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장애학생의 특수성과 이를 고려해 학칙상 인정되는 교‧강사의 재량을 고려하면 부당한 성적 변경의 근거로 단정하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김씨는 장애학생 절대평가(일정 점수를 넘으면 해당 학점을 부여하는) 대상이었다. 성신여대 학칙‧학사 규정상 일반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상대평가에서 예외 적용을 받았다. 이에 검찰은 김씨 외 다른 장애학생 4명도 성적을 정정 받았고, 강사들도 제3자의 요구나 외압은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검찰은 "장애학생 절대평가 시행 초기(2013~2014년) 위와 같은 세부 절차나 제도가 정립되지 않아 어떤 경로로든 교·강사의 의사가 전달되면 학사지원팀이 성적을 정정했던 것으로 확인된다"라며 "교·강사의 요청서 없이도 다양한 방법으로 교·강사의 의사 확인이 이뤄진 것으로 보이므로, 학과 명의 이메일로 성적변경 요청이 됐다는 점만으로는 부당한 성적 조작이나 개입이 있었다고 단정이 어렵다"라고 증거불충분의 사유를 설명했다.

정말 이걸로 충분한 걸까. 다른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한 서울지역 대학교수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저 정도의 성적 정정이라면 '대학이 권력에 도륙당했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습니다"란 반응을 보였다.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우종학 교수도 격한 반응을 보이며 의구심을 제기한 이들 중 하나였다.

현직 대학교수들의 이어진 의문표
 
아니, 어떻게 나경원 전 의원의 자녀가 들은 과목의 강사들이 다들 집단적으로 그렇게 성적평가를 엉망으로 했다가 재평가를 해서 추가 점수를 수십 점이나 주고 성적을 올려줄 수 있다는 걸까요? 한 명의 강사도 아니고 10명의 강사가 재량으로 성적을 올려주었다면 누구라도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지요. 그것도 한두 등급이 아니라 C, D 수준의 최하위 성적을 A급으로 올려준 경우가 4과목이나 됩니다.

강사들이 뇌물을 받았거나, 학교 측으로부터 다음 학기에 과목을 안 준다는 압력을 받았거나, 외부 청탁을 받았거나, 그런 이유로 이렇게 성적이 드라마틱하게 변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훨씬 합리적이지 않나요? 저만 그런 거예요? 대학에서 10년 넘게 성적을 내왔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  6일 우종학  교수 페이스북 글 중 일부

절대 평가와 상대 평가의 차이와 사후 점수 변경 자체의 논란 여지, 다른 학생들과의 형평성 여부를 조목조목 짚은 우 교수. 그는 "수십 점의 추가 점수를 근거 없이 보태주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라며 "이것은 불법입니다. B, C를 받은 학생들을 다 무시하고 D를 받은 학생을 갑자기 A로 올려주는 것은 불공정하고 불의한 일입니다. 이런 건 허락되지 않습니다. 강사 재량으로 볼 수 없습니다"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또 다른 현직 교수는 검찰 무혐의 처분 사유로 언급된 '장애인 학생 별도 평가'의 경우 성신여대 학사규정 제39조(성적 평가) 항목에 해당한다고 지적하며 "정정이나 변경에 관한 것이 아니라 평가 항목이므로 이 조항의 적용이 적절하였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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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서울시장 선거 본경선 미디어데이에서 나경원 경선 후보자가 기호추첨을 마친 뒤 자신의 사진 위에 서명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지난 2016년 3월 해당 의혹을 최초 제기한 <뉴스타파>가 <성신여대, 나경원 딸에게 성적도 특별 대우 정황> 보도에서 공개한 김씨의 담당 강사 인터뷰는 꽤 충격적이었다. 성적 정정의 과정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시험 성적이 "빵점"인 것은 분명했다. 
 
콘서트 프로덕션을 가르친 강사 B씨는 "당시 김씨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 백지를 내면서 '교수님, 교수님 강의가 너무 어려워서 뭐라고 써야 할지 몰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답안지를 써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B씨는 "시험 성적만으로는 빵점이었지만 출석과 수업태도를 반영해 점수를 매긴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강사 B씨가 당초 나 의원 딸에게 매긴 점수는 확인되지 않았다.
- <뉴스타파>, '성신여대, 나경원 딸에게 성적도 특별 대우 정황' 중에서

정유라 학사 특혜 사건 당시 검찰은 전방위적인 수사를 통해 정유라의 출석부를 허위기재하고 과제물과 시험지 등을 위조한 이화여대 교수를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했고, 2018년 대법원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한 바 있다. 검찰은 과연 나 전 의원 딸 사건을 정유라 학사특혜 사건과 동등한 잣대로 수사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또 검찰은 나 전 의원의 부친이 설립한 사학법인 홍신학원 관련 배임 의혹 사건 역시 "홍신유치원의 위성 사진과 주변 공인중개사의 의견 등을 종합해 주변 시세보다 낮은 곳이 맞다"라고 판단했다. 나 전 의원이 회장으로 재직하던 사단법인 스페셜올림픽코리아(SOK)가 나 전 의원의 지인 자녀를 특별채용했다는 의혹 사건 또한 채용 절차 및 관련 규정을 지켰느냐 여부나 서류의 미비보다 지인 자녀에게 입사 면접을 먼저 권유한 SOK 측 주장을 무리 없이 받아들여 무혐의 처분했다.

이쯤 되면, 합리적 의심을 해보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검찰이 나 전 의원 사건을 철저히 수사한 것이 맞는지, 성적 정정이 "강사의 재량"이라던 검찰 역시 수사 과정에서 "검사의 재량"을 용인한 것은 아닌지.
#나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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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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