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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김진숙 지도위원님께 보내는 편지

[참가기] 희망뚜벅이 마지막 날, 김 지도위원과 함께 걸었습니다

등록 2021.02.08 10:09수정 2021.02.0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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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7일, 김진숙 복직을 외치며 '희망뚜벅이'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한강대교를 건너고 있다. ⓒ 안승민


김진숙 지도위원님, 안녕하셨나요? 이런 질문을 드리기 죄송스럽기도 합니다. 안녕하지 못하셨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36년째 국가의 폭력, 자본의 폭력에 시달려오신 위원님께 안녕하시냐는 말씀을 건네기 죄송스럽습니다. 비록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마음을 전하고 싶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편지를 보냅니다. 저는 오늘(7일) 희망뚜벅이의 마지막 날을 함께한 한 청소년입니다. 김 지도위원님은 작년 말부터 오늘까지 쉬지 않고 걸어오셨습니다. 고생하셨다는 말부터 건네고 싶습니다.

솔직히 위원님께서 경기도에 다다르셨을 무렵까지만 해도 저는 위원님이 왜 걷는지 자세히 몰랐습니다. 그저 복직 투쟁을 하며 걷는 한 해고노동자로만 생각했었지요. 그러나 경기도에 다다르셨을 즈음 자세히 기사를 찾아보던 저는 충격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조선소 여성 용접공이신 위원님이 1986년 노조 대의원 신분으로 전단을 돌리다가 대공분실로 끌려갔고, 그 이후로 다시 공장을 밟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올해로 벌써 36년째입니다. 해고된 이후 수차례 복직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복직되지 못하셨습니다. 몇몇 동료들은 복직되어 일터로 돌아갔지만, 위원님만은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셨습니다.

아침에 흑석역으로 갔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 흑석역으로 갔습니다. 희망뚜벅이의 마지막 날을 함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정된 행진 시각보다 20분 일찍 왔는데도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위원님과 함께했습니다. 행진 출발 시각이 다 되자 사람들은 흑석역 1번 출구 앞을 가득 메웠습니다. 흑석역 1번 출구 앞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모습, 그 모습을 감히 제가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흑석역에서 9명씩 짝지어 한강대교를 건너갔습니다. 위원님께서는 제일 앞줄에서 출발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일 앞줄에서 출발하며 희망뚜벅이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신 소감, 한강을 건넜던 소감은 어떠셨나요? 희망뚜벅이의 중간 정도 자리에 서서 위원님을 뒤따라 건넌 제가 그 감정을 모두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짐작만 할 뿐입니다.
 

흑석역 앞에서 받아 한진중공업 앞에서 날리려 했지만 경황이 없어 날리지 못한 종이배. 앞면에는 '김진숙 복직', 뒷면에는 '해고 금지'가 쓰여있는 종이배다. ⓒ 안승민

 

한진중공업 본사 앞. 경찰이 벽을 쳐 진입을 막고 있다. ⓒ 안승민

한강대교를 건너 신용산역, 삼각지역을 지나 걸어가니 한진중공업 본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경찰들은 길을 건너지 못하도록 해서 시민들과 경찰 사이에 작은 시비가 붙기도 했었습니다. 한진중공업 본사가 보이기 시작하자 흑석역에서 받은 종이배가 생각났습니다. 앞면에는 '김진숙 복직'이, 뒷면에는 '해고 금지'가 쓰인 종이배였습니다. 종이배를 받으며 "한진중공업 본사 앞에서 던져라"라는 말을 들은 터라 던지기로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종이배를 던지지 못했습니다. 경찰이 한진중공업 본사 앞을 가로막으며, 계속 행진하라고 안내했기 때문입니다.  던지지 못한 종이배는 집에 가지고 왔습니다. 던지지 못한 아쉬움이 많이 남기도 합니다.

"36년간 나는 유령이었습니다"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의 모습. ⓒ 안승민


서울역에서 흩어져 점심을 먹고 함께 걸었던 분과 청와대 앞 청운효자동 주민센터로 걸어갔습니다. 청운효자동 주민센터로 가는 길은 험난했습니다. 경찰들이 벽을 세워 막기도 했고, 서서 막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돌고 돌아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 늦게나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위원님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36년간 나는 유령이었습니다. 자본에게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습니다. 함께 싸워왔던 당신이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해고자인 내가 보이십니까? 앞으로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 할지 모를 우리들, 포기하지 맙시다. 쓰러지지도 맙시다. 저도 그러겠습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오늘 12km 넘게 걸으며 힘들기도 했지만, 느낀 점은 많았습니다. 김진숙 위원님,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먼 길을 왔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은 것 같습니다. 그 길의 끝까지, 그날까지 저는 위원님과 함께 웃으며,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중학교 학생입니다.
#김진숙 #희망뚜벅이 #김진숙복직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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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글쓰기. 문의는 j.seungmin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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