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청와대로 '김 지도'가 간다, 파죽지세로 그가 온다

'소금꽃나무' 김진숙 지도위원 덕분에 나의 세상은 넓어졌다

등록 2021.02.06 11:14수정 2021.02.06 11:14
4
원고료로 응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오는 7일 서울 청와대에 닿는 것을 목표로 여러 시민들과 함께 '희망뚜벅이 도보 행진'을 하고 있다.  [편집자말]
a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3일 경기도 진위역에서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마친 뒤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나는 작은 낭독 유튜브를 꾸리고 있다. 그날 아침에 김진숙 지도님께 메시지를 보낸 건 그 때문이었다. "<소금꽃나무>의 일부를 낭독해서 유튜브에 올리고 싶어요." 흔쾌한 허락을 듣고 심상하게 짧은 안부를 나누었는데, 그로부터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가 청와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암 투병 중이었다. 정년을 하루 남기고 있었다. 출발할 때 일행은 그를 포함해 겨우 세 명이었다. 놀라웠지만 그답다고 생각했다. 비장하지 않게, 그러나 온 존재를 걸고. 멀리서 지켜본 그의 행보는 늘 그랬다. 

직업과 직업병이 합쳐져서인지 나는 사람을 그가 쓴 글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기교나 맞춤법이 기준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그만한 힘을 내면에 가진 사람이더라는 단단한 믿음이 있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다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좋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은 확실히 있다. 믿음은 그의 글을 읽으며 더 강해졌다. 

그가 글을 써서 다행이다

내가 그를, 아니 그의 글을 처음 본 것이 트위터였는지 아니면 어느 기사에 인용된 글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알게 된 뒤 그 글을 쓴 사람이구나 탄성이 나왔던 것만은 확실히 기억한다. 그 뒤부터 그의 글은 유난히 눈에 걸렸다.

겨우 140자밖에 들어가지 않는 트위터의 작은 화면에서도 존재감은 명료했다. 찰싹찰싹 잔물결이 치듯 끊임없이 밀려왔다. 사람들이 리트윗으로 서로에게 쪽지를 건네듯 글을 건넸다. 희망버스를, 거기에 탄 수많은 사람을 끌어모은 잔물결이었다. 그 물결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영도의 꼬불꼬불한 골목을 마음 졸이며 뛰는 내내, 85호 크레인 공중에 있는 작은 방을 생각했다. 그 안에서 그는 내게 고양이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이웃처럼 친근하게 저녁 메뉴에 참견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를 보며 흔연하기 어려웠다. 그 당시 나는 그를 자주 생각했고 가끔 울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공중의 작은 방에 한 사람이 있는데 글을 쓴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 당시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 가장 죽음에 가까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무사히 땅을 밟지 못할까 봐 무섭다고, 그때는 입 밖에 내서 말할 수도 없었다. 
 
a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평택 진위역을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그가 무사히 땅을 밟고 난 몇 년 뒤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났던 분이 내게 주고 싶은 책이 있다고 했다. 그 책이 <소금꽃나무>였다. 상상하기 어려운 삶이 숨 막히는 밀도로 꾹꾹 쓰여 있으면서도 문득 헤실헤실 부드럽게 굽이치는 그런 글이다. 그 책을 읽으면서 또 울었다. 울다가 가끔은 키득키득 웃었다. 그가 글을 써서 다행이다. 그 글을 읽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와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내 세상은 그 덕분에 한 바닥쯤 넓어졌다. 더 좋은 사람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많은 겹을 갖게 되었다. 가끔은 그의 책에 등장한 아주머니처럼 그가 힘든 싸움을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어디 먼 디로 가가 안 보고 살모 고마 이자 삐고 살아진다"고 말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의 싸움에 정년이 있으면 좋겠다. "할 만큼 했다"고 툭, 내려놓는 날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멀리서 지켜보는 자의 오지랖으로. 

전각을 배우던 어느 날, 돌 하나를 얻어 새로 새길만한 걸 찾다가 내 책의 한 문장을 옮겨 적었다. 삐뚤빼뚤 새긴 주제에 자랑이랍시고 올린 전각 사진을 보고 그가 갖고 싶다고 했다. 뭔가 욕심내는 것을 본 기억이 없는 그가 갖고 싶다고 말하는 게 고맙고 신기해서 얼른 싸서 보냈다. 몇 년 전 얘기다. 

그가 세 명으로 시작해 수십, 수백 명과 함께 걷고 있는 길을 생각하며 그 문장을 떠올린다. "내가 혼자 걸어갔던 시간들이 내가 된다." 지금 혼자 걷고 있지 않지만 혼자여도 걸을 사람인 그에게 어울리는 문장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와 함께 걸으며 각자의 '나'가 되고, 그 '나'들이 모여 우리가 되는 것을 보고 있다. "내가 혼자 걸어갔던 시간들이 내가 된다"는 문장을 받은 그가 "우리가 함께 걸어가는 시간들이 우리가 된다"는 문장을 몸으로 밀며 돌려준다. 파죽지세로. 파죽지세로 그가 온다. 
#김진숙 #소금꽃나무 #김진숙복직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북칼럼니스트. 책 <치킨에 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면> 저자.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니, 소파가 왜 강가에... 섬진강 갔다 놀랐습니다
  2. 2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3. 3 배달하다 숨진 26살 청년, 하루 뒤에 온 충격 메일
  4. 4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