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검정고시 합격률 100%... 아이도 부모도 웃는 학교의 실체

[활동가 인터뷰 ⑫] 송민기 인디학교 교장

등록 2021.02.07 12:09수정 2021.02.07 13:14
2
원고료로 응원

성북구 종암동의 인디학교 컴퓨터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송민기 선생님 ⓒ 문세경

  
"전공이 사학과라 졸업하면 역사학 교수가 되고 싶었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역사학 교수가 되려고 했는데 대학에 가보니까 전부 학생운동만 하는 거예요."

새해가 밝았다. 2020년도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암흑 속에 갇힌 기분으로 살았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지난해를 보냈으리라. 기후위기를 걱정하던 사람들은 언젠가 지구에 역병이 창궐하리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토록 오래 갈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살아남아 하던 일을 하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본격적인 한파가 닥친 1월 8일 오후 7시, 서울시 성북구 종암동에 있는 학교 밖 아이들을 위한 '인디학교'에서 송민기(58) 교장선생님을 만났다. 

"대학교에 다닐 때는 열심히 학생운동을 했어요. 학교를 겨우 졸업한 후에는 노동운동을 하려고 공장에 취업했어요. 어느 날 발각돼서 쫓겨났고 복직투쟁을 했어요. 지방노동위원회에서 기각된 후에 노동상담소에서 상담활동을 했어요. 그 이후에는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기가 힘들었어요.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었거든요.

취업하기가 힘들어서 친구들과 광고기획사를 차렸어요. 지방선거, 총선에 사용되는 선거 홍보물을 만들었어요. 1990년도부터 1995년도까지 했어요. 이후 1996년도부터 1999년까지는 중소기업에 취직해 직장생활을 했어요. IMF가 터지고 희망퇴직을 한 후, 조그만 재활용 사업체를 꾸렸어요. 처음엔 잘됐는데 시작한 지 4년 차에 사기를 당했어요. 엄청난 빚이 생겼어요. 신용불량자가 됐고, 2003년도부터 2년간 실직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겼어요. 담도암이었죠. 1년 동안 투병생활을 했어요. 지금은 완치했고요.

학생운동 할 때 민간인 사찰을 받던 때가 있었어요. 당시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어요. 대학노트에다 꼼꼼히 메모를 많이 했어요. 한 10권쯤 됐어요. 그런데 민간인 사찰 때문에 위험해서 다 태워 버렸어요. 경찰에게 뺏기면 선배나 친구들이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요. 가끔 그때 버린 노트가 아까워요. 시간이 지나면 다 추억이고 역사인데…"


학생운동을 피할 수 없을 때 학교에 다녔다. 어떻게든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변하지 않는 세상, 생계의 압박, 쌓여가는 스트레스였다. 암이 발병했다. 1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건강을 되찾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여기서 멈추기에는 할 일이 많았다. 부양해야 하는 노모가 있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둘이나 있었다. 더 이상 생계를 아내에게 떠맡길 수는 없었다. 그의 나이 마흔네 살이었다. 
  
인디학교의 탄생
 

초창기 인디학교에서 수업하고 있는 송민기 선생님. ⓒ 송민기

 
"성북구에는 저소득층이 많았어요. 개발되기 전에는 더 많았어요. 2006년에 우연히 저소득층의 생활을 지원하는 '성북 나눔의 집'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았어요. 처음에는 어르신들 의료지원 사업을 맡았어요.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을 병원에 모셔다드리고, 외로운 분들을 위해 야유회도 가고 그랬어요. 대부분의 어르신이 근본적인 치료는 못하고 쳇바퀴 돌듯이 병원에 다녔어요. 드시는 약도 너무 많았고요.


그래서 제가 성북 나눔의 집에 주치의 제도를 만들자고 했어요. 자매결연 맺은 가정의학과에 가서 종합검사를 하고 약 처방하고 그랬죠. 시간이 지나니까 어르신들이 속 얘기를 꺼냈어요. '혼자 사니까 외롭다. 그래도 누구랑 같이 사는 건 못 한다. 고독사할까 봐 걱정이다' 등의 얘기를 하셨어요. 어르신들의 얘기를 듣고 인간에게 '고독'은 무서운 것이고, '자유'는 정말 중요한 거라는 걸 알게 됐어요. 

어르신 만나는 일을 1년 정도 하고, 그다음부터는 '학교 밖 청소년'들을 만났어요. 주로 취약계층의 한부모 가정이었어요. 부모 상담을 많이 했어요. 생계가 어려우니까 아이들에게 신경을 많이 못 써요. 아이들이 말을 안 들으면 설득하거나 타이르는 게 아니라 폭력을 써요. 시퍼렇게 멍들어서 다니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가정폭력은 주로 아빠로부터 일어나죠. 아이들은 폭력을 피해서 갈 곳이 없어요. 아빠하고 가급적 부딪히지 않거나, TV를 보거나, PC방에 가는 게 다예요. 학교에서 억울한 일 당하고 담임 선생님께 혼나도 집에 가서 이르지 않아요. 어쩌다 엄마가 알게 되면 엄마도 화가 나죠. 그러면 학교에 찾아가서 얘기를 들어봐야 하는데 학교에 못 가요. 아이와 엄마 모두 위축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저하고 같이 학교에 찾아가서 담임을 만났어요. 담임을 만나고 오면 엄마가 달라져요. 자신감이 생기는 거죠.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고요."


취약계층 가정의 아이들을 만나면서 우리나라 교육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게 된 송민기는 방문 학습 멘토링 사업을 제안한다. 지역의 취약계층 가정의 아이들 200명을 대상으로 학부모와 대학생을 포함한 50명의 멘토를 뽑아서 사업을 진행했다.

약 2년 반 동안 진행한 사업으로 멘토링 받은 아이들은 학습능력뿐만 아니라 사회성도 놀라울 정도로 좋아졌다. 이 사업에 힘을 받아 2013년에는 본격적으로 학교 밖 아이들을 만나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약 1년간의 준비 끝에 '인디학교'가 탄생했다.

"지역에 계신 몇 분이랑 같이 준비를 했어요. 2014년 1월에 개교했어요. 공간을 만들 돈이 없어서 고생을 좀 했어요. 개교하고 바로 공부를 하고 싶은 친구들이 있어서 수업을 했는데, 공간이 낡고 후져서 싫어하더라고요.

그래서 개교한 지 두 달쯤 있다가 생명의 전화 복지관 건물로 이사를 갔어요. 28년쯤 된 건물이었어요. 거기서 6개월 정도 있었는데 지역 네트워크를 통해 제안이 들어왔어요. 성북 사회적경제센터 건물을 쓸 수 있게 됐어요. 그곳은 옛 동사무소 건물을 리모델링한 건물이어서 깨끗하고 좋았어요.

아이들이 친구들을 데리고 오고 학생들 모집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역시 공유공간이라 수업할 공간이 넉넉지 않았어요. 당장 나갈 곳이 없어서 계약 기간인 3년을 버티며 독립공간 마련을 위한 후원행사를 했어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어요. 예상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 모였어요. 그래서 지금의 공간으로 이사 왔어요.

학교 밖 청소년들은 부모들도 인정을 안 해줘요. 학교에 안 다니면 용돈 한 푼 안 줘요. 왜 안 주냐면 학교도 안 다니는데 친구들 만나고, 유흥비로 쓰고,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하니까요. 학생들 입장에서는 학교를 안 다닌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 친구도 만나고 간식도 먹어야 하고 생활을 해야 하는데 한 푼도 안 주니까 치사해서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벌어요.

그러면 엄마는 또 그래요. '돈 벌어서 집에 생활비는 안 보태고 유흥비로 다 쓴다'고. 아이는 아이대로 '내가 돈 벌어서 유흥비로 쓰든 어디에 쓰든 내 자유고 빚만 안 지면 되지 않냐'고 해요. 기본적으로 학교 밖 청소년들은 신뢰를 받지 못하는 거죠.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대안학교 가겠다고 하면, 더 못 미더운 거죠. 어쨌든 일반학교에 안 가고 대안학교라도 가겠다고 하니 보내긴 해요. 어느 날 검정고시를 보고 딱 합격하면 부모의 태도가 달라져요. 심지어 '우리 애가 합격한 거 맞아요? 커닝한 거 아니에요?' 하고 물어요. (웃음)"


검정고시 합격률 100%의 비결

인디학교의 검정고시 합격률은 100%다. 그 이유는 학생 수준에 맞는 학습 방법으로 가르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검정고시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학생들 수준에 맞는 방법으로 가르치지 않아서예요. 실제로 중학교 2학년에 다니고, 고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아이들이지만, 공부에 손 놓은 건 초등학교 4, 5학년이에요. 학교에 다녔지만, 공부를 안 한 거죠. 일반적인 교과과정을 따라갈 수 없어요.

그래서 저희는 일대일 수업을 원칙으로 하고 어느 수준에서 공부가 멈췄는지를 찾아요. 바닥을 쳐보면 그때부터 공부가 되거든요. 영어, 수학 빼고는 제가 다 가르쳤어요. 한 달이면 공부 방법을 터득해요. 중학교 검정고시는 100시간 공부하고 고등학교 검정고시는 500시간을 공부해요. 고졸 검정고시는 5개월 과정이라 꾸준히 하면 다 합격해요."


아이들 수준에 맞는 공부방법을 연구하고, 아이들이 공부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치는 선생님과 학교. 그런 학교가 많으면 학교 밖 청소년이 안 생기지 않을까. 틀에 박힌 학습과정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학교는 누구라도 다니기 싫을 것이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그런 학교에 아이를 밀어 넣을 수밖에 없는 학부모. 우리 사회의 학교는 왜 이렇게 변화가 더딜까. 가슴이 답답해졌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검정고시에 합격하면 희망의 끈을 보는 거죠. 엄마가 찾아와서 그동안 마음고생 한 것을 털어놔요. '우리 애가 좋은 대학 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무슨 자격증이라도 땄으면 좋겠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좋았다. 미용사가 됐으면 좋겠다. 제과제빵사가 되면 좋겠다'라고 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상담을 해요.

취약계층 아이들은 부모가 관심을 덜 가지니까 아무 생각 없이 학교에 가요.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왕따나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당하면 배 아프다면서 학교에 안 가요. 수용적인 엄마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오늘 쉬라고 해요. 그게 반복되면서 학교에 안 가요. 이런 아이들은 인디학교에 오면 대부분 좋아져요."


가정환경이 좋으면 좋은 대로 안 좋으면 안 좋은 대로 학교에 가기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기본적으로 학교는 재미없는 곳이니까. 그 아이들을 품어주는 대안학교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

대안학교는 일반학교보다 등록금도 비싸고 지방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인디학교는 서울에 있다. 저렴한 등록금을 내고(월 10만 원이지만 거의 감면 혜택을 받음),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선생님과 호흡한다. 교사들은 학교 밖 아이들의 감성을 이해하고 공동체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 일의 가장 첫 번째는 아이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공감'에 있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마음과 열린 귀, 적극적인 상호작용, 겸손한 태도가 뒷받침되었으리라. 쉬워 보이지만 쉽지 않은 길을 걷는 송민기 선생님의 정년이 코앞에 다가왔다.  
  
정년 앞둔 교장이 일선 교사에 하고 싶은 말
 

인다학교 게시판에 붙어 있는 각종 소식들 ⓒ 문세경

 
"2년 후면 환갑이에요. 그때는 은퇴해야죠. 벌어놓은 돈도 없고 직장생활을 꾸준히 한 게 아니라서 연금생활은 꿈도 못 꿔요. 운전을 잘하니까 어린이집 차나 학원 차를 운전하는 일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봉사활동을 할 거예요. 놀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못 놀았으니까 좀 놀아야죠. (웃음) 취미생활은 따로 없어요. 걷는 거 좋아하니까 등산도 하고, 걸어서 전국 일주를 하는 게 꿈이에요."   

결코 평탄치 않은 길을 선택한 송민기 선생님, 그의 마음 속에는 늘 약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 치유가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는 아이들이 더 많아졌어요. 학교에 가면 (방역 때문에) 칸막이가 쳐 있으니 친구들과 스킨십도 못 하고, 뛰지 말라고 하고, 밥 먹을 때 말하지 말라고 하고, 교대로 학교 가잖아요. 이러니 학교에 가기 싫은 거예요. 그리고 줌으로 수업하면 사생활이 다 노출되잖아요. 어떤 아이는 거실이 보이는데 어떤 아이는 창고 같은 게 보이고...

코로나19 초기에는 몇 학년이 가장 힘들까 생각해 봤어요. 중학교 3학년이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중3 때 진학상담을 하잖아요. 그게 잘 안 되면 고등학교를 제대로 못 갈 수 있어요. 그러면 본인 인생이 꼬였다고 말할 수 있어요. 내 인생을 사회가 망쳤다는 원망을 할 수 있잖아요. 일반학교든 대안학교든 선생님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커서 코로나19 시절을 생각했을 때, 학교는 나에게 해준 게 없다고 기억하지 않고,  코로나19 때문에 엄청나게 힘들었지만 내가 다니던 학교의 선생님, 심지어 급식실 선생님들이라도 우리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주었다고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힘들었지만, 특히 아이들의 기억 속에 안 좋게 남으면 죄책감이 클 것 같아요."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서울 청각장애인 문자통역지원 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활동가 인터뷰 #인디학교 #송민기
댓글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대자보가 대학가에 나붙고 있다
  3. 3 [단독] 김건희 일가 부동산 재산만 '최소' 253억4873만 원
  4. 4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5. 5 [동작을] '이재명' 옆에 선 류삼영 - '윤석열·한동훈' 가린 나경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