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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맑은 가덕도 앞바다가 불쌍하다

[주장] 가덕도신공항에서 한일해저터널까지... 토건국가 망령을 경계함

등록 2021.02.07 19:46수정 2021.02.0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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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신공항 예정 부지 주변 어항 모습 가덕신공항이 들어설 예정인 곳 주변에 위치한 어항 모습이 한적하다. 신공항이 건설되면, 이 어항은 어찌될까? ⓒ 부산광역시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4월, 국토연구원은 가덕신공항 비용편익(B/C)비율이 0.7이라 발표한 바 있다. 경제성이 없는 사업이란 내용이다. 이 기조는 수구정권 내내 그대로 유지된다. 그런데 이 사업이 최근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그 핵심엔 토건국가 기제가 작동되고 있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란 이름으로 산업화가 본격화된 1960년대부터, 우리 국토는 삽질(쓸모없는 일을 하는 행위)에 상처받아 지금도 몹시 허덕이고 있다. 이 모두가 당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욕망의 정치를 앞세운 '토건국가(土建國家)체제'에서 비롯되었다.

토건국가 대한민국

토건국가는 호주국립대 '개번 머코맥' 교수가 1996년에 출간한 <일본, 허울뿐인 풍요>라는 책에서 미국 '군산복합 체제'에 상응하는 일본의 '토건국가체제'라고 한 말에서 파생되었다. 이는 공공토목사업에 과도한 지출(당시 일본 GDP의 8%)과 온 국토를 불필요한 토목시설로 뒤덮어 놓는 행위를 말한다. 그는 일본은 "전후 장기간 지속된 일당지배체제 하에서 대규모 부패를 통해 민중을 착취하는 유착 체제"로 토건업체와 정치인이 중심이 되고, 그 수혜자는 "국가를 좀 먹는 마피아에 필적할 만한 악몽 같은 존재들"이라 주장한다. 토건국가는 정치인·관료, 금융기관, 건설업체로 구성된 '철의 삼각구조'를 중심으로 작동하며, 그로 인한 부패가 매우 심각하다.

일본이 토건국가로 한창 버블(bubble)경제를 키워나갈 때 유행한 말이 있다. "열도 모든 해안선이 콘크리트 옹벽으로 둘러싸일 것이다"라는 우스갯소리다. 하지만 이 말엔 무시무시한 핵심이 들어 있다. 쓸모없는 공사를 연이어 만들어 내고 끊임없이 이어간다는 사실이다. 토건국가 핵심 속성을 제대로 짚어낸 말이다. 토건족들은 점차로 더 큰 건설 사업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래야 그들 존재이유는 물론 확대재생산 체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토건국가 특성은 땅을 파헤치는 데 막대한 재정투입이 수반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투입된 재정이, 토건업을 과도하게 비대화 시키는 원인이 되어왔다. 특히 권력과 강고하게 연결된 유착관계는 공룡 같은 카르텔을 형성시켰다. '정치집단-관료집단-정부투자기관(공기업)-토건업체-언론사-토호세력-금융기관'으로 연계되는 카르텔이다. 지금 우리 모습이다. 이 카르텔은 '인적기반 연합'을 바탕으로 한다.

토건국가 작동 기제
 

부산시구군 의회 합동결의대회 모습 2020년 7월 23일 열린, 가덕신공항 건설을 촉구하는 부산시구군 의회 합동결의대회 모습이다. ⓒ 부산광역시

  
학연-지연으로 클러스터(Cluster)가 형성된다. 학맥·인맥이 차별적·중의적으로 엮인다. 클러스터는 건설(토목 및 건축), 에너지(발전 및 가스, 석유 등), 수자원, 광물자원 등을 가리지 않는다. 전 방위적으로 확산된다. 이를 '건설 산업'이라 한다면, 클러스터로 형성된 카르텔이 건설 산업 전반에서 준동하기 시작한다. 건설 비중이 전체산업에서 절대적으로 커나간다.
   
이들이 움직이는 패턴은 대체로 일정하다. 시화호가 그러했고 새만금이 그랬으며, 이전 동남권신공항 논의나 현재 가덕신공항 논의가 그렇다. 유심히 살펴보라. 예외 없이 이 길을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정치집단이 가장 먼저 움직인다. 자기 권력을 과시 또는 유지시키는 수단으로 건설공사만큼 가시적인 성과를 내보이는 분야도 드문 까닭이다. 여기에 중앙은 물론 지방자치단체 관료들이 부화뇌동한다. 이들은 없는 사실도 만들어내어 장밋빛이 감도는 환상적인 패키지로 포장하는 데 특화된 집단이다. 때에 따라선 정부(지방)투자기관(公社)이 동원되기도 한다. 뒤이어 중앙이건 지방이건 언론이 붓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러면 금방이라도 세상이 장밋빛으로 물들 것처럼 모두가 환상에 젖어든다.

일부 지역 언론들은 영혼까지 팔 작정으로 덤벼든다. 지역 언론은 해당 지역 토호세력으로 대부분 건설업체를 끼고 있거나 각종 개발사업 이권에 관련된 자들의 소유인 경우가 허다하다. 지역 공동체 안에 허황된 이해관계가 형성된다. 일종의 스펙터클(Spectacle, 기억에 남을 정도의 장면이나 이벤트가 되는 것)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과거 전라북도에서 있었다. 이른바 '새만금독재' 스펙터클이다. 어느 학자(황성희)는 "전라북도 안에서 새만금은 미디어 스펙터클이 되기 이전에 정치적 스펙터클이 되는 데 성공했다. 새만금은 정치적 스펙터클이 됨으로써 미디어 스펙터클이 되었고 그 스펙터클에 매혹된 전라북도의 대중은 새만금을 통해 미래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다"라며 "그 결과 전라북도 안에서는 새만금개발에 대한 반대 담론이 차단되는 현상이 일어났고 새만금독재라 불릴 만한 상황이 지속되었다"고 말한다. 보궐선거를 앞둔 부산에서, 예전 전라북도 토건세력이 만들었던 스펙터클 현상이 다시 읽혀지고 있다.

공사가 발주되면, 건설업체는 인·허가 권한을 쥐고 있는 관공서를 문지방이 닳도록 넘나든다. 공사가 시작되면, 건설업체와 지방토호세력이 찰떡처럼 결탁한다. 공사 나눠먹기와 환경파괴가 이뤄진다.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 토건국가 대한민국의 실체다.

미래를 좀 먹는 토건국가 

이런 메커니즘(Mechanism)에는 필요악처럼 비리와 부패가 곁들여진다. 처음부터 실현가능성이나 효용이 떨어지는 무리한 사업을 발굴한다. 시화호나 새만금, 4대강이나 각종 부동산 버블 현상을 일으킨 사업들이 대표적이다. 공항(무안, 청주, 양양공항)도 예외가 아니다. 모두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한 사업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억지를 앞세워 힘으로 밀어붙인다. 부패와 담합, 불로소득이 어마어마하게 만들어진다. 카르텔은 더 큰 '부동산 공화국'으로 확대재생산 되어진다.
   
이런 사업들은 대부분 반 시장적이다. 자원의 적정배분이나 자본의 기회비용을 스스로 망가뜨린다. 재정이 왜곡되고 국토 및 생태·환경·역사·문화를 파괴시키는 일등 공신으로 군림한다. 4대강 22조를 그 당시 청년일자리 창출이나 벤처기업 육성에 투자했다고 생각해 보라. 이는 1990년대 일본처럼, 실물자산이 붕괴되는 '토건공황'으로 이어질 높은 확률과 개연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이런 토건공황은 곧바로 '금융공황'으로 이어져 나라경제를 수렁으로 빠뜨리는 대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우리의 토건국가는 불행하게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선 우리 경제의 선진화나 질적 성장은 요원하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건설 산업 전반을 적정수준으로 유지시킬 필요가 있다. 우선 정치논리를 철저히 배제시켜야 한다. 치밀한 경제성 검증에 근거해야 한다. 불요불급한 사업만 추진하는 체계(Downsizing) 구축이 시급하다.

하지만 이는 선거에서 표를 잃게 되는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기 일쑤다. 지금 부산이 딱 이 모양새다. 우리 역대 정부가 손쉽게 토건국가 체계에 순응하는 입장을 보여온 원인이다. 이젠 그런 잘못을 끊어낼 시기가 되었다.
   
정부기구(중앙 및 자치단체)를 비롯한 정부투자기관 전체를 되짚어 볼 시기다. 낡고 오래되어 변화하는 시대에 역행하는 기구와 기관들이 존속됨으로써, 우리는 너무나 많은 매몰비용(Sunk Cost)과 국민적 에너지를 낭비시켜 왔다. 시화호가 그렇고 새만금이 그러했으며, 경인운하와 4대강이 그러했다. 지금도 도처에 지어지고 있는 석탄화력 발전소와 원자력 발전소가 그렇다. 허물어 버려야 할 각종 방조제와 하구 둑이 그렇고 강을 막고 있는 댐들이 그렇다. 더 이상 벌이기만 하는 쓸모없는 일은 이제라도 여기서 멈춰야 한다.

불행의 사슬을 끊어내야
 

가덕신공항 현장 설명회 지난 1월 20일 가덕도 앞바다에서 현장설명회를 진행하는 모습이다. ⓒ 부산광역시

 
경제성 없는 가덕신공항은 필연적으로 투기를 유발시킬 것이다. 투기는 토건국가를 번성시키는 지렛대다. 이로 인해 노동의 가치는 증발되어 버리고, 땀의 가치가 휘발된다. 착실하게 일해 부를 쌓는 행위가 멸시의 대상이 된 사회요 국가가 지금 우리 모습이다.

이런 비극의 시초가 '토지자본이득'을 노리는 투기에서, 그것도 나라에 의해 씨앗이 뿌려졌다는 점이다. 온 국민의 꿈이 '투기꾼'인 세상이다. 이 꿈은 분명 후손들 삶에까지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높은 '최대의 죄악'이 될 것이다. 토건국가체제는 근로 소득을 착실하게 저축해가며 자산을 불리며 살아가려는 선량한 사람들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

환경은 더 할 나위없다. 가덕도 맑은 앞바다가 우려스럽다. 도대체 환경과 생태, 자연을 해치고 파괴하는 경제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그런 성장이 지속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역사에서 공부하자. 지어는 졌으나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공항(양양, 무안, 청주공항)들을 어찌하겠다는 말인가? 묻는다. 이들 공항이 지어질 당시 장밋빛으로 포장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그런데 '동남권신공항'이라는 이름으로 극렬한 지역분열을 야기시키더니, 또 다른 탐욕이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이다. 가덕신공항뿐만 아니라 제주 신공항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목포∼제주 간을 해저터널로 연결하자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어느 정치집단은 며칠 전 '한일해저터널'을 말하고 있다. 그럴 만큼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아니 그런 논의 자체를 막아내고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으로 나아가도 부족한 실정에, 저런 낡은 논의를 대체 언제까지 하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시민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토건족들의 또 다른 이기의 발로일 뿐이다.

토건국가체제는 하루라도 빨리 해체시키는 게 좋다. 그게 우리가 공존·공영하는 길이다. 이전에 저지른 잘못된 사업 사례가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토건국가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뼈저리게 되돌아보고, 이젠 그 길을 끊어내려는 시도로 이어져야 한다.

이 땅이 오로지 우리 세대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명심하자. 자자손손 우리 후손들이 안온한 삶과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야 할 소중한 터전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국토공간에도 엄연히 기회비용이 존재한다. 가급적 남겨두어 후손들이 누릴 기회비용을 최대한 높여주는 게 우리 세대가 할 일이고 몫이며 사명이다. 제발 가덕신공항이 정치구호로만 머무르기를 바랄 뿐이다.
#토건국가 #가덕신공항 #정치스펙터클 #국토기회비용 #불요불급_사업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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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레 타인과 소통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하는 그런 일들을 찾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서로 교감하면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풍성해지는 삶을 같이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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