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에 따뜻한 선물... 서산시 발 빠른 행정 빛나

당뇨성망막증 치료 중인 미혼모에게 도움의 손길 이어져

등록 2021.01.27 08:23수정 2021.01.2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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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기다리는 아가의 손 생후 60일 된 아가의 손에 사랑이 전해지고 있다. ⓒ 최미향

 
그녀를 만나러 간 지난 25일은 겨울답지 않게 하늘에서 햇살이 유난히 짙게 내려앉은 날이었다. 충남 서산시에 거주하는 미혼모 A씨는 어린 딸을 품에 안고 부엌 입구에서 분유를 먹이고 있었다. 생후 60일 된 아기는 분유를 먹다 말고 낯선 사람들의 방문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몸을 뒤척이며 먹던 분유를 물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A씨는 자연스럽게 아기를 무릎에 앉히며 토닥였고, 그 모습이 익숙한 듯 아가는 울음을 그치며 엄마 품으로 파고들었다.

A씨는 24살, 교통사고가 나면서 자신이 당뇨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하지만 어린 시절이라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관리할 겨를 없이 식당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했다.

지난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던 A씨는 몸에 이상을 느껴 산부인과에 갔었고, 그곳에서 임신이란 진단을 받았다. 당시 그녀는 당뇨성망막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터라 임신 소식은 그녀를 놀라게 했다. 임신이라는 말이 축복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들렸던 아기의 심장 소리에 A씨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강한 모성애를 느꼈고, 그때부터 뱃속 아기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지냈다.

식당 일을 하면서 만난 아기 아빠는 배가 점차 불러오자 그녀를 떠나 버렸다. 그녀는 결국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미혼모가 된 것이다.

"아이만은 살리겠다"는 그녀의 소망을 들은 그녀의 가족들은 A씨를 안심시키며 낳아서 같이 키우면 된다고 다독였다. 하지만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터졌다. 임신으로 인해 당뇨병이 깊어졌지만 약을 복용할 수가 없었다.

결국 9개월 임신 기간 중에 당뇨성망막증 4단계로 진행됐다는 선고를 받아야 했다. 담당 주치의는 그녀를 무료로 치료해주었고, 덕분에 A씨는 열 달 만에 3kg의 건강한 여아를 순산했다.

아기만을 바라보며... 그렇게 견디며 살았다


어릴 적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홀몸으로 남매를 키웠다. 더구나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어머니에게 시골에서 벌이가 있는 일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어렵게 생활을 이어가던 남매는 중학교 의무교육에 만족해야 했고 어린 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보통 사람들처럼 '임신'이라는 말이 축복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A씨의 배는 불러왔지만 아르바이트만은 그만둘 수가 없었다. 먹고 사는 것이 먼저였다. 친오빠가 보태주는 적은 금액으로는 청각장애인인 어머니와 모녀가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무거운 배를 안고 바쁜 식당일을 하다 보면 잘 대해주는 주인과 동료에게 미안한 맘이 들기 일쑤였다. 식당일 대신 다른 일을 찾으려 해도 중졸인 그녀를 받아줄 곳은 없었다.

코로나19로 식당일이 없으면 대타 자리를 구하는 휴대폰이 울리기만 기다려야 했다. 운 좋은 날에는 식당에서 A씨를 찾는 전화가 올렸고, 그녀는 부른 배를 힘들게 일으켜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견디며 살았다. 아가만을 바라보며.

이제 아기는 자라서 60일이 됐다. 그동안 서산시 해미면 복지담당 공무원들과 복지사들은 A씨를 돕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행정서비스가 가능한 범위 내이지만 최대한 도움의 길을 찾았다. "그분들의 도움이 제겐 힘이 되었어요." 그녀의 말이다.

이런 소식이 지역사회에 알려지면서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평소 어려운 이들을 위한 봉사활동가인 뉴톤보청기 충남지사 한지영 대표가 올린 SNS를 타고 퍼진 A씨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서산·태안과 이웃 당진 시민들이 물품지원과 성금을 보내오고 있다. 아름다운동행(대표 김명환)을 비롯한 여러 봉사단체들도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여기에 서산시와 해미면의 긴급위기가정 지원이 발 빠르게 가동됐다. 내달 2월부터는 기초수급대상자에 선정됐다는 반가운 소식도 날아들었다. <서산시대>의 보도를 접한 천주교 대전교구 미혼모의 집 '자모원'에서 지속 지원을 결정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A씨는 "도와주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아가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다"며 잠든 딸의 얼굴을 환한 미소로 바라봤다. 희망의 사다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우선 닥친 그녀의 병세가 심각하다. 아기를 키우기 위해서는 그녀의 건강이 문제다. 시민들은 아기와 그녀를 위한 촘촘한 의료복지지원이 병행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서산 #미혼모 #당뇨성망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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