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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트로트 경연대회, 나만 불편한가요?

[김언경의 미디어 안경] 민망한 노래 가사에 인권 침해 요소 다분해

등록 2021.01.26 18:43수정 2021.01.26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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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를 좋아한다. 연로하신 부모님 영향으로 어릴 때 무슨 의미의 노랫말인지도 모른 채 많은 트로트를 불렀다. 오죽하면 대여섯 살에 아버지가 좋아하는 '황성옛터'를 제대로 부를 줄 알았다. 중학교 시절, '이산가족찾기' 열풍으로 전국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새삼 향수에 젖었던 아버지는 고향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아버지는 고향집 인근에 '동명왕릉'이 있다고 했다. 남한의 그 어떤 능도 그곳처럼 웅장하고 아름답지 않았다며, '황성옛터'를 들으면 그곳이 떠오른다고 했다. 나는 그제야 '황성옛터'를 마음으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나는 지치고 힘들 때, 혼자 노래방에 가서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이 잠 못 이뤄. 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를 부른다. 그때마다 눈물이 나지만 마음이 풀어지며 힘도 난다.

이렇게 트로트를 좋아하지만 어린이가 방송에서 트로트를 부르는 것은 보기에 불편하다. 어린이의 모습보다 그런 어린이를 소비하는 어른들, 그 와중에 수입을 챙기는 사람들이 불편하다. 이 의견을 여러 번 주위에 말해 보았지만, 그다지 동의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TV조선의 <미스트롯2> '초등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나로서는 매우 반가운 균열이기에 이 틈새를 비집고 다시 한번 불편함을 이야기해 본다.
 
어린이가 부르는 성인가요, 그 불편함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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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미스트롯2' 중에서 ⓒ TV조선

 
이번에 불거진 TV조선 <미스트롯2> '초등부'의 논란 내용부터 짚어보자. <미스트롯2>는 팀 미션에서 심사위원의 '올하트'를 받지 않으면 팀 내 누군가가 탈락하게 된다. 올하트를 받지 못하자 초등부 출연자들은 울먹이기 시작했고, 한 어린이는 유난히 울었다. 방송 이후, 많이 울었던 어린이의 태도와 적절히 편집하지 않은 제작진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1차 개인 경연에서 올하트를 받아 합격한 한 어린이 공연 장면만 통편집되었다. 올하트를 받지 못한 어린이를 포함해 초등부 모든 어린이의 공연과 심사평 장면이 방송되었기에 통편집된 어린이의 실망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반면, 팀 미션곡을 정하는 과정에서 어린이들이 갈등하는 모습을 편집하지 않고 제작진이 그대로 내보냈다. 어린이 출연자의 경우 섬세하게 편집했어야 한다는 점에서 지적하는 목소리가 컸다. 

또 다른 것도 있다. 합격과 탈락이 있는 오디션은 어른들도 힘겨워하는 장치이다. 충분히 멋진 무대를 치러냈지만 아쉽게도 올하트를 받지 못한 어린이는 자신에 이어 다른 어린이가 올하트를 받을 때마다 울상이 되어갔다. 심지어 3차 경연에서는 대결 상대가 공연하는 동안 무대 위에 앉아서 라이벌의 공연을 보게 했다. 무한경쟁의 긴장감에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구경거리처럼 제공되었다.

<미스트롯2>만 그런 것은 아니다. 2020년 MBN <보이스트롯>에서도 한 어린이가 완벽하게 노래를 부르는데, 라이벌 어린이는 울먹이다 결국 눈물을 흘렸다. 카메라는 고통스러워하는 어린이의 표정을 기어코 클로즈업해 보여주었다. 어린이들을 이렇게 잔인한 장치에 몰아넣은 방송사와 불안과 질투에 떨며 우는 그들의 모습을 소비하는 우리의 행태는 과연 괜찮은 걸까.

트로트 가사도 마음에 걸렸다. 어린이 출연자들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훌륭한 노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어떻게 저 나이에 이런 감정을 표현하느냐며 감탄했다. 그러나 그게 좋은 것일까.

노랫말들은 대부분 어린이가 부르기에 적절치 않았다. <미스트롯2> 초등부 팀 미션곡인 '하니하니'의 가사는 "아무것도 묻지 마. 우리 그냥 이대로 뜨겁게 뜨겁게 사랑하다가 아침이 올 때까지만 내 곁에 있어 주면 돼. 그리고 미련 없이 우리 그냥 헤어져"이다. 어린이들이 부르기엔 매우 민망한 가사다. 9살 어린이가 '단장의 미아리고개'의 "여보… 어린 용구는 오늘 밤도 아빠를 그리다가 이제 막 잠이 들었어요. 네 여보 여보~"라고 외치는 모습도 마음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국악도 어린이가 소화하기엔 부적절하거나 어려운 가사이지만 국악 천재들은 잘 소화하고 있지 않냐고 지적할 수도 있다. 실제 <미스트롯2>에서 트로트 경쟁을 하는 두 어린이는 이전에 '국악 신동'으로 KBS 등에서 공연했다. 그러나 이들이 출연한 춘향가와 심청가, 수궁가는 어린이가 부르기에 적절한 수위로 잘 조절된 내용이었다.

어린이에게 동요만 부르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국악이든, 트로트이든, 아니 노래뿐 아니라 춤이나 연기 모든 면에서 어린이의 방송 출연에 있어서는 어린이의 교육적 측면과 정서를 감안하여 곡 선정과 의상, 안무 등 표현 수위는 세밀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 인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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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미스트롯2' 중에서 ⓒ TV조선

 
다행히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출연 아동·청소년의 권익보호를 위한 표준제작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올 1월 18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방송제작 현장에서 방송사, 제작진, 출연자, 보호자들이 공동으로 준수해야 할 사안을 규정한 것이다.

이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미스트롯2> 초등부를 살펴보자. 우선 한 어린이의 올하트 받은 영상을 통편집해 방송하지 않았고, 아무런 공식 입장도 내지 않는 것은 "아동 청소년의 출연기회와 절차는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V. 제작을 위한 사전조치, 1. 아동・청소년 출연과 캐스팅 나항)는 내용을 위반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한 어린이에 대한 악성댓글이 발생하게 한 <미스트롯2> 초등부의 팀 미션 방송도 여러 규정을 통해 부적절한 행위임이 확인된다. 가이드라인에는 "제작진은 아동 청소년 출연자와 보호자에게 프로그램 기획의도, 촬영형식, 주요 내용, 출연으로 인하여 예상되는 불이익 등을 충분히 설명하도록 한다. 제작진은 방송 제작 촬영에 대해 아동 청소년 출연자와 보호자의 동의를 구하도록 한다. 아동 청소년과 보호자의 의견이 다르거나 아동 청소년과 보호자가 모두 동의한 경우에도 제작진은 객관적이고도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방송출연 이후의 상황이나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여 결정하도록 한다"(V. 제작을 위한 사전조치 2. 사전설명과 동의 가항, 나항)라는 내용이 있다.

아예 "아동 청소년이 방송 출연으로 인해 사이버 괴롭힘, 악성 댓글 등으로부터 피해를 받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사이버 괴롭힘 등 피해가 우려되거나 발생한 경우 신속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하여 아동 청소년 출연자를 최대한 보호하도록 노력한다"(Ⅶ. 안전과 보호 1. 안전과 사이버 괴롭힘 다 항)라고 강조한 내용도 있다.

이러한 기준으로 봤을 때, TV조선 측이 논란이 될 만한 영상을 그대로 방송하고, 이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공했으며, 영상에 대한 댓글 차단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번에 살펴보니 어린이가 출연하는 영상에는 애초에 댓글을 차단해 놓은 방송사들도 많았다.

한편 가이드라인에서는 제작과정에서 어린이 청소년의 학습권, 건강권, 휴식권 등 인권 보호에 대해 규정해 놓았다. "아이들의 촬영 시간은 가급적 학교 수업시간과 겹치지 않도록 정하고,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동 청소년은 성인과 달리 쉽게 지칠 수 있으므로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유의하여야 한다" 등이다.

<미스트롯2>가 이 규정에 충실했을까도 의문이다. 어린이 출연자들은 어른들과 똑같은 조건으로 촬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어른들과 똑같이 모두의 공연을 함께 보며 리액션을 하는 모습이 종종 잡혔다. 대기실이라고는 하지만, 영상 촬영이 되는 것을 아는 상황에서 편히 쉬는 것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며, 본인들의 공연 이외에도 촬영 시간이 매우 길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굳이 초등학생의 출연을 고집하고, 초등부 팀을 마련할 것이라면, 차라리 이들만을 위한 배려와 장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스트롯2> 초등부에 출연한 어린이들이 매우 선정적인 의상을 입거나 진한 화장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 어린이가 벨리댄스를 하는 모습이 불편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목과 손목까지 살색으로 처리된 의상을 입었다. 어린이 출연자 대부분은 비교적 연한 화장을 했고 깜찍한 수준의 의상을 입었다. 그러나 오디션이 과열되면 앞으로 어떤 무리수가 나올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앞으로 어린이 출연자들의 의상이나 화장, 안무 등에 있어서 보다 유의해야 한다.
 
2012년 <조선일보>에 실린 '6~14세 아이들 서바이벌까지 봐야 하나'라는 기자 칼럼이 있다. 기사에서는 엠넷의 새 프로그램 <보이스코리아 키즈>에 대한 우려를 전하면서 "방송도 사업인 만큼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기획을 하고 궁리를 하는 일 자체를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방송은 공기인 만큼 지켜야 할 선과 도리가 있는 법이다. 아직은 인성 교육과 학교 교육이 더 필요한 아이들을 시청률을 위해 상품화하지 않는 일이 바로 그 선이고 도리이지 않을까"라고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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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 실린 '어린이 서바이벌' 관련된 비판 기사. ⓒ 조선일보

 
맞는 말이다. 공감한다. 2012년 <조선일보>의 글을 2021년 TV조선이 정독하길 바란다. 방통위는 실제 방송제작 현장에서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현장 체크리스트'도 함께 발표했다. 여기에는"아동 청소년의 학습권, 건강권, 휴식권 등 인권보호장치가 마련되어 있나요?", "제작진 중 아동 청소년 출연자 보호문제를 상의할 담당자가 정해져 있나요?"라는 항목이 있다.

앞으로는 어린이가 출연하는 경연 프로그램을 만들 때, 기획 단계에서부터 섬세하고 촘촘하게 교육적 효과를 고려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한다. 방송을 구성하는 단계부터 교육 전문가, 아동 심리학자 등 전문가가 참여해 구성과 심사과정 등 방송의 규칙에 대해 사전 조율하면 좋겠다. 피디 및 작가, 출연진, 그리고 멘토로 선정된 연예인까지 모두가 함께 전문가로부터 교육적 측면에 대한 유의사항을 교육받는 자세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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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시민연합의 회원 모니터 활동을 시작으로 모니터부장, 협동사무처장, 사무처장을 하면서 오랫동안 언론개혁 운동을 해왔습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민언련 공동대표를 사임하고, 뭉클 미디어인권연구소와 유튜브 <노으른자>를 통해 소소한 소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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