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통념적 언어에서 달아나라

[초보자를 위한 삶의 주인공 되는 글쓰기 비법] 3장

등록 2021.01.27 15:00수정 2021.01.2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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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날만 있었을까

등산을 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어떠셨나요? 그러면 대부분 좋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조기 축구를 한 사람에게도 물었습니다. 어떠셨나요? 그러면 또 대부분 오늘 좋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질문을 바꿔 등산을 한 사람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무엇을 보았나요? 꽃과 나무와 바위 등을 봤습니다. 조기 축구를 한 사람에게도 다시 물었습니다. 무엇을 보았나요? 축구공, 같이 축구하는 사람을 봤습니다.

요즘에는 아동 인권의 문제 때문에 따로 일기 검사는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좀 연식이 있는 분이라면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내준 일기 과제를 수행했던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어떻게 쓰셨나요? 오늘 아무개랑 놀았다. 참 재미있었다. 이거나, 오늘 엄마가 자장면을 사주었다. 참 맛있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참'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등산을 한 사람, 조기 축구를 한 사람, 일기를 쓴 사람이 참 좋았다고 이야기합니다. 미국을 여행한 사람, 캐나다를 여행한 사람, 일본을 여행한 사람, 중국을 여행한 사람도 어땠냐고 물으면 참 좋았다고 대답합니다. 무엇이 다를까요? 통념화된 사고의 감각을 깨지 않으면 우리는 달을 여행해도 은하계 행성 어디를 여행해도 그저 참 좋았다로 귀결할 것입니다.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 실전편>을 보면, 대중은 통념적 언어에 갇혀 산다고 말합니다.
 
"실제 경험이나 관찰이 새롭다 하더라도 낡은 문장을 사용하는 한, 저라는 사람은 새로운 경험도 낡은 생각문장으로 담아내는 사람입니다,라는 정보를 드러낼 뿐이다. 생각문장까지 바뀌어야 한다. 생각문장만큼은 바뀌어야 한다. 문장이 바뀌면 여행을 가지 않아도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지만, 문장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여행을 다녀도 상투성만 강해질 뿐이다." (115p)
 
세상을 낯설게, 더 감각적으로 바라보는 문장이 바로 생각 문장입니다. 누군가 우스갯소리 삼아 말하는 유행어도 아니고, 유명인의 명언도 아닙니다. 세계에 직접 부딪쳐서 얻은 보석 같은 문장이어야 합니다.

문장을 바꾸자는 말은 글쓰기에서 방법론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말이라도 표현을 달리 생각해보고, 더 구체적인 말, 더더 구체적인 말을 찾으려는 작가의 고민이 깃들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고민이 없는 글에서는 본인조차도 진정성을 느낄 수 없습니다. 당신의 삶을 투명하게 들여다 보고, 그것을 서술하려는 의지가 바로 글쓰기의 가장 기초적인 마음입니다.

괜찮은 날?

오전 2교시, 초등학교 4학년을 대상으로 신문활용교육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집에서 자가용으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학교였습니다. 신문과 우리 지역 역사를 함께 아이들과 공유하고, 자신의 생각, 친구의 생각 등을 인터뷰하여 기사로 작성하는 것이 이번 수업의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학교로 출발하기 전, 프레젠테이션을 다시 확인하고, 수업 시간에 사용할 프린트물 등을 점검했습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자기 체면도 걸었습니다. 나름 마음 채비를 마친 것이죠.

오월의 볕은 초등학교 운동장 펜스부터 얼굴을 보였습니다.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운동장 모래를 보며, 오늘도 신나는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도 생겼습니다. 교무실에서 담당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자분자분한 음성이 듣기 좋은 분이셨습니다. 친절한 안내로 교실에 도착했습니다.

교탁에서 바라본 아이들 표정에 생기가 없었습니다. 그날 일교시부터 아이들은 능력평가를 위한 시험이 있었습니다. 이 시험이 담임 선생님 주도하에 아이들의 학습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시행한 것인지, 학교 단위 시험인지, 전국단위 시험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 눈에는 아이들이 많이 지쳐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나눠준 프린트물을 싫어했습니다. 아마도 프린트물은 전 시간에 본 시험과 같은 이미지로 받아들이지 않았나 짐작 합니다. 자신이 사는 지역이 기사화된 신문 내용을 읽는 것도 버거워했습니다. 재미없다는 말을 놀고 싶다는 말로 바꿔 말했습니다. 오늘은 신문을 가지고 노는 거야라고 말하며, 신문을 찢기도 하고, 낱말 빙고도 했지만 아이들은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수업을 마쳤을 때, 저는 제 역할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아이들의 특성, 학교의 상황을 충분히 감안하지 못하고 수업 준비를 한 제가 미워졌습니다. 하필 내 수업이 아이들 시험 직후인 것이 못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볕에 반짝이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올 때, 비구름이 신발에 걸리는 듯해 마음이 질퍽질퍽 해졌습니다.

아이들 중간 놀이 시간까지 포함하여 진행한 수업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저 때문에 놀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귀가하여 그날 수업에 대해 정리하면서, '저 때문에'라는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별것 아닌 것일 수도 있는데, 하루의 시작이 잘못된 것 같았습니다. 그 기분은 종일 이어졌습니다. 상황이 곱씹어지고, 다음에는 이런 상황을 감내할 만큼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우울함이 증폭됐습니다.

'무언가 잘하려고 했던 날, 뜻대로 되지 않았던 날'이라 문장을 썼을 때, 떠올릴 수 있는 감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불쾌, 우울, 속상함, 불만족, 화남, 짜증남 등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상황에 대해서도 우리가 인식하는 감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아침에 학교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만반의 수업 준비가 됐다고 득의양양한 괜찮은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났을 때는 어땠나요?

삶에 소소한 부분일지 모르겠지만, 당신의 삶을 한번 세밀히 보시길 바랍니다. 육아를 하는 어머니라면? 회사로 출근하는 직장인이라면? 컴퓨터 게임을 하는 중학생이라면? 자기소개서를 쓰는 취업준비생이라면? 정말 괜찮은 날이었다고 하더라도, 그저 하루를 괜찮다고만 말하기에는 개인 서사가 무궁무진 있지 않나요? 몸이 감각하는 통증이 있을 것이고, 마음에 이는 바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파헤치는 작업이 바로 글쓰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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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전공 석사수료.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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