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들이 이주여성들을 위해 만든 단체

[월간 옥이네] 옥천군 결혼이주여성협의회를 만나다

등록 2021.01.28 16:49수정 2021.01.3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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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여성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고 지역 구성원이 되어 마침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상'이 필요하다. 낯선 언어, 낯선 문화, 낯선 환경 속에서 모든 것을 새로이 시작해야 하는 이주여성에게 일상이란, 때로는 그저 '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질 이들에게 익숙한 언어로 도움을 청할 수 있고, 손을 이끌어줄 친구가 있다면 어떨까. 어쩌면 조금 더 능숙하게 한국이라는 낯선 땅 위에 일상이라는 텃밭을 일굴 수 있지 않을까?

지난해 1월, 충북 옥천군 결혼이주여성협의회는 옥천에 거주하는 결혼이주여성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힘찬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11월에는 여러 차례 일정을 연기했던 발대식을 개최해 많은 이의 응원을 받았다. 이들은 이주여성이 자립하고 자신의 일상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울 뿐 아니라, 그동안 받아온 지역민의 사랑과 응원에도 보답할 예정이다.

월간 옥이네는 이들의 힘찬 출발을 응원하며, 옥천군 결혼이주여성협의회 임원단 ▲ 부티탄화 회장(옥천읍) ▲ 미야꼬 부회장(옥천읍) ▲ 박지현 사회부회장(옥천읍) ▲ 안유정 청산 대표(청산면)을 만나 그간의 활동내용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결혼이주여성, 일상의 목소리를 내다


"이주여성들은 계속 '다른 낯섦'에 부딪쳐요. 이를테면 언어, 자녀 교육, 취업, 비자 문제 같은 것이요. 다문화센터에 사례관리자가 있지만, 더 일상적인 문제를 해결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때 편하게 찾을 사람이 필요해요. 저희는 대단한 역할을 하기보다, 서로에게 일상적인 존재가 되고 싶어요. 언어 문제를 겪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되어주는 식으로요."

부티탄화 회장이 말하는 옥천군 결혼이주여성협의회(이하 협의회)의 설립 취지다. 이주여성과 다문화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이하 다문화센터)가 존재하지만, 일상생활의 모든 문제에 제도적인 도움을 받기는 어렵다. 또한, 다문화 가족의 목소리 주체가 이주당사자가 아닌 배우자 혹은 다문화센터 관리자였다는 점은 다소 문제의 소지가 있다. 소통의 주체가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들이 겪는 문제가 생략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주여성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드물었어요. 다문화센터와 가족들이 많은 부분을 도와주지만, 저희만이 이해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부티탄화 회장)


이들이 자발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또 지역사회에 그 필요성을 알렸다는 점에서 이들의 출발은 의미가 깊다. 이들의 존재 자체가 바로 사회를 향한 하나의 '목소리'인 까닭이다.

"언어, 취업 등 일상의 문제 함께 해결하는 것이 목표"

"이주여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나누고,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아이들 가정통신문을 받았을 때나 교통사고를 당해 보험 처리를 할 때도 당황하지 않도록요." (부티탄화 회장)

이주여성이 겪는 가장 어려운 점은 바로 언어다. 열심히 쓰고 또 익혀도, 낯선 환경에서 다시 마주한 언어는 마치 처음 듣는 말처럼 생경하게 느껴진다. 이력서를 쓸 때도 아이들의 방과 후 돌봄 신청서를 작성할 때도 언어의 장벽은 높기만 하다. 옥천군 결혼이주여성협의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어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계획 중에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서로의 한국어 선생님이며, 때로는 서로의 입이고 귀가 된다. 어려워하는 많은 부분을 함께 상의하며, 누군가 문제에 부딪히면 힘이 닿는 데까지 돕는다.

"저에게는 취업이 가장 어려운 문제였어요. 힘들게 자격증을 따고 대학도 졸업했지만, 취업이 어려웠거든요. 공장이나 식당, 농장일이 아니라면 일자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따라요." (박지현 부회장)

언어 문제뿐 아니라 육아와 문화, 취업 등에서도 여러 어려움이 잇따른다. 현재 간호조무사로 근무하는 박지현 씨와 방문요양보호사로 일하는 미야꼬 씨는 이주여성이 한국에 적응해 삶의 자신감을 높이기 위해 일자리 문제는 꼭 해결해야 할 문제라 말한다.

"일자리를 얻게 되면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 구성원 역할을 하고 살아갈 수 있게 돼요. 그 자체가 일상을 끌어가는 자신감이 되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일을 시작하고 더 자신감이 생겼고요. 경제적 자립뿐만 아니라 이주여성의 자존감을 위해서라도 취업은 중요합니다." (미야꼬 부회장)

지현 씨와 미야꼬 씨는 "같은 분야의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정보를 나누고, 공부도 기꺼이 돕고 싶다"고 말한다. 경제적 자립과 삶의 성취감을 위해 취업이 얼마나 절실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을 하고 싶어도 어디에서 어떻게 일자리를 구해야 할지 모른다는 현실에 있다. 일자리가 있어도, 정보 얻는 법을 몰라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부티탄화 회장이 다문화센터나 관련 기관의 교육 프로그램, 일자리 정보 등을 꾸준히 협의회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유하는 이유다. 다양한 언어로 공유한 일자리 정보를 통해 이주여성 상당수가 일자리를 얻는 데 성공했고, 지역 교육 프로그램의 혜택을 누리기도 한다.

언어와 지역을 넘어 하나의 마음으로

협의회 회원은 103명, 그중 임원직을 맡는 이들만 20명이다. 국가별, 지역별로 나뉘어 임원진이 구성됐기 때문이다.

"지역별 임원은 회원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자주 돌보고 그들의 상황을 살펴요. 알려야 하는 사안이 있을 때 모두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고요. 그 과정에서 언어가 다르거나 정서적인 공감이 어려워 깊은 소통이 불가능하면 현실적인 도움이 되기 어렵기에 국가별로도 임원을 구성했습니다." (안유정 청산 대표)

이들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의 공식적인 소통 공간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한국어와 영어를 비롯해 베트남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소식이 공유된다. 이 소식의 번역 역시 대부분 임원이 맡는다. 이주여성이라는 공통점 아래, 소외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덕분에 이들의 공식적인 활동은 늘 높은 참여율을 자랑한다.

그간 받아온 사랑에 '응답하는 사람' 되고자

"저희는 다문화 가정이라는 이유로, 또 이주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의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어요. 이제는 사랑을 나누는 단체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어렵다고 말하는 이에게 손을 내밀고, 또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되고 싶어요."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다양한 활동을 하지는 못했지만, '일손 도움 봉사'만큼은 많은 이가 참여했다. 베트남 등 농촌 일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나라의 입국이 어려워져, 농번기 농가의 어려움이 커졌던 것이다. 이들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농가에 찾아가 사과를 따고, 복숭아를 따고, 오이 잎을 솎는 등 지속적인 봉사활동을 펼쳤다. 그들은 힘든 이들을 찾아가 일손을 돕고 대화를 나누며, 지역의 일원이 되어감을 느낀다.
 
"저희는 베트남, 필리핀, 중국, 일본, 네팔 등 각기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옥천군의 일원으로 이주여성이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자립하고, 다문화 가정의 긍정적인 인식개선과 옥천군 복지에 이바지하고자 협의회를 설립했습니다.

많은 분께서 다문화 가정에 나눠주신 사랑을 이제 저희가 나누고자 합니다. 작은 발걸음이지만, 함께 걷는 이들로 인해 큰 걸음으로 첫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멀리서 시집오는 내 고향의 언니와 동생을 위해 손 내밀어주시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소통하고 협력할 것입니다. 결혼이주여성이 지역사회에 당당하게 적응하고, 옥천군의 다문화 가정 모두가 함께하는 지역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할 것입니다."

-2020년 11월 28일 협의회 발대식
부티탄화 회장 개회사 중에서
 
"코로나 사정상 모든 회원이 발대식에 참석할 순 없었지만,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게 반가웠어요.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겠다'는 관심과 응원도 반가웠지만, 이제는 우리가 받았던 도움을 돌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부티탄화 회장)

이들의 설립 취지와 계획을 듣고 안내와 안남, 더 먼 마을에 거주하는 이들도 함께 활동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발대식을 통해 비로소 이들의 시작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셈이다.

"옥천의 모든 이주여성이 밝게 웃고 또 활기차게 생활하면 좋겠어요. 모든 다문화 가족이 '자존감'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참여하고 동참할 기회가 열려있으니, 함께 행복하게 생활합시다." (미야꼬 부회장)

"앞으로 자원봉사활동에 꾸준히 참여할 거예요. 아직 시작이라 실수가 있더라도, 믿고 잘 지켜봐 주시면 사회에 돌려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박지현 부회장)

짧게는 5년, 길게는 25년 전 옥천으로 이주한 이들이지만, 이제야 모든 것이 본격적인 시작을 맞이했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부티탄화 씨를 비롯한 협의회 임원진은 "그동안 다문화 가정이라는 이유로, 이주여성이라는 이유로 받아온 관심과 사랑을 지역에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힘찬 포부를 밝혔다.

월간 옥이네 2021년 1월호(통권 43호)
글·사진 서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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