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오류 투성이 안내문, 그대로 두면 안된다

등록 2021.01.14 11:54수정 2021.01.14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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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를 처음 방문하게 되면 가장 먼저 안내문을 찾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접하는 정보라 나 역시 제법 꼼꼼하게 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안내문에 잘못된 내용과 오류가 있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첫인상부터 잘못된 사실을 알려주는 셈이기에 이는 충분히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실제 답사 중 이런 사례를 종종 확인할 수 있었는데, 한번은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신일리에 있는 망산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망산의 입구에는 금표비가 하나 세워져 있는데, 앞쪽에 있는 안내 표석을 보면 철종의 금표비로 소개하고 있다.
 

망산의 입구에 있는 금표비, 안내 표석에는 철종대왕 금표비로 소개하고 있다. ⓒ 김희태

 
실제 망산을 올라가면 태실이 있는 봉우리가 있는데, 입구에 있는 안내문에도 철종의 태실로 소개하고 있다. 당연히 안내문만 봤을 때 이곳이 철종의 태실인가보다 싶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해당 태실의 조성 시기는 금표비의 후면의 명문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여기에는 함풍구년이월일(咸豊九年二月日)이 새겨져 있다. 이를 환산해보면 1859년(철종 10) 2월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 조성된 태실은 <승정원일기>와 <원자아기씨안태등록>의 기록을 통해 철종의 원자 태실로 확인된다.

철종의 원자 태실은 1859년 2월 25일에 강원도 원주부 주천면 복결산(伏結山) 아래 임좌병향(壬坐丙向)에 조성되었다. 따라서 해당 태실은 철종의 태실이 아니라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의 소생의 원자 태실로, <승정원일기>에는 원자의 이름이 융준(隆俊)으로 기록되어 있다. 
 

안내문, 철종대왕 태실비지로 표기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 김희태

태실지의 전경, 태함의 개석이 노출되어 있다. 해당 태실은 철종의 태실이 아닌 철종의 원자 태실로 확인되었다. ⓒ 김희태

서삼릉으로 옮겨진 철종 원자 태실, 전면에 철종왕자태실(哲宗王子胎室)이 새겨져 있다. ⓒ 김희태

 
실제 일제강점기 당시 서삼릉으로 옮겨진 태실 가운데 철종의 태실은 없고, 철종의 왕자 태실이 있다는 점에서 옮길 당시에도 철종의 태실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안내문과 표석 등에는 철종의 태실이라는 잘못된 사실을 알리고 있다는 점은 문제다. 따라서 해당 오류는 시정되어야 하며, 안내문과 표석의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아야 한다.

단종의 태실은 어디에?

경상남도 사천시에는 사천 단종 태실지(경상남도 기념물 제31호)가 있다. 특히 태실이 있던 자리는 사천 지역의 친일파인 최연국의 묘가 있어 과거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여러 방송·언론 매체에도 소개된 곳이다. 지금도 단종 태실을 검색하면 대부분 사천 단종 태실지와 관련한 내용들이 나온다. 그런데 정말 이곳이 단종의 태실일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사천 단종 태실지 사천 단종 태실지 ⓒ 김희태

 
<문종실록>과 <세조실록>을 보면 단종의 태실은 경상북도 성주군에 있었다. 최초 선석산에 있던 단종의 태실은 1451년(문종 1)에 법림산(法林山)으로 옮겨졌고, 이후 1458년(세조 4) 철거되었다. 즉 애초 단종의 태실은 성주에 있었던 것이다. 이는 단종의 원손 시절 태실 석물이 지금도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에 남아 있고, 태실이 옮겨진 법림산에서 연엽주석과 동자석주, 우전석 등 단종의 가봉 태실 석물이 남아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성주 선석산에 있는 단종의 원손 태실 석물 ⓒ 김희태

옮겨진 법림산에 있는 단종의 가봉 태실 석물 ⓒ 김희태

서삼릉에 있는 인성대군 태실, 사천 단종 태실은 일제강점기 때 서삼릉으로 옮겨졌는데, 이때 출토된 태지석을 통해 인성대군의 태실로 확인되었다. ⓒ 김희태

 
결정적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사천 단종 태실지에서 서삼릉으로 태실이 옮겨졌는데, 이때 태실지에서 인성대군의 태지석이 나왔다. 즉 사천 단종 태실지는 단종이 아닌 인성대군의 태실인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를 보여주듯 서삼릉에는 인성대군의 태실만 남아 있다.


그렇다면 왜 인성대군의 태실이 단종의 태실로 알려진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종의 복위 과정을 살펴보면 좋은데, 영월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던 단종은 1698년(숙종 24)에 복위되었다. 즉 왕의 지위를 회복했기에 기존에 묘로 불리던 무덤은 장릉(莊陵)으로 높여졌고, 유배지였던 청령포에는 금표비가 세워졌다.

이 과정에서 단종의 태실에 대한 개수가 있었는데, 문제는 성주에 있던 단종의 태실은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던 중 사천에 있던 인성대군의 태실이 단종의 태실로 오인된 결과 인성대군의 태실이면서, 동시에 단종의 가봉 태실 석물이 있게 된 것이다.
 

사천 단종 태실지의 안내문, 명칭 뿐 아니라 안내문의 오류를 시정해야 한다. 사천 단종 태실지의 안내문, 명칭 뿐 아니라 안내문의 오류를 시정해야 한다. ⓒ 김희태


따라서 이곳을 사천 단종 태실지라고 부르는 전제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정확한 명칭이라고 한다면 '전 단종 태실지'로 부르거나 '인성대군 태실과 단종 가봉 태실 석물'로 고쳐 불러야 한다. 또한 이 같은 내용을 안내문에도 기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명칭과 안내문은 시정되지 않고 있으며, 특히 해당 문화재의 경우 많은 이들이 찾는 장소이기에 잘못된 내용에 따라 오류의 확대 재생산이 우려가 된다. 따라서 이러한 명칭과 안내문의 오류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사천 단종 태실지 #단종 태실 #안내문 #안내문 오류 #철종 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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