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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전환을 바라는 트렌스젠더, 그들을 바라보는 법

[리뷰] 영화 <걸> '라라'로서의 '라라'로...

21.01.13 10:29최종업데이트21.01.1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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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라라. 청량한 노랫말처럼 들린다. 그녀의 이름이다. 라라는 발레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다리를 뻗고 발가락을 매만지며 벽에 기대 몸을 늘어뜨린다. 이름처럼 유연한 그녀의 몸은 언뜻보면 건장해보이고 또 다시 보면 가녀려 보인다. '그녀'와 '그' 사이 어딘가에 라라는 있다. 그녀는 완벽한 성전환을 바라는 트랜스 젠더다.
 

영화 <걸> 스틸 ⓒ 더쿱

 
얇은 손목과 발목으로 발레를 하는 소녀들 사이, 라라가 있다. 라라는 신체적인 특징 때문인지, 그녀의 부족한 능력 때문인지 발레리나로서의 미래는 밝지 않아 보인다. 잘 하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몸은 기꺼이 따라주지 않고 발가락이 붓고 피가나는 정도로 노력을 해야 그나마 조금씩 나아질 뿐이다. 같이 발레하는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들 사이에 끼어 밥도 먹고 수다도 떤다. 언뜻 보기엔 자연스럽게 친구들 사이에 섞여들어간 것 같지만 사실 라라는 무척이나 외롭다. 그녀에 대해 물어봐주는 사람도, 트랜스 젠더가 아닌 그녀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친구도 없다.

자신 때문에 아빠와 남동생이 다 같이 이사를 왔다. 어린 6살 남동생은 학교를 옮겼고, 아빠는 일터를 옮겼다. 자신이 기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가족들 또한 각자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야 했다. 하지만 라라가 익숙해지지 않는 건 그녀의 몸뿐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원하던 발레 학교에 입학 허가를 받았음에도 학교 생활은 쉽지 않다.

그녀를 둘러싼 의미심장한 타인의 시선들. 그녀가 여학생들과 함께 탈의실을 쓰는 게 불편하면 이야기 하라는 선생. 같이 어울려 노는 것 같지만 그녀에게 몸을 보여달라 종용하는 친구들까지. 어디를 가도 라라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게 낯설다. 그리고 그녀에게 있는 것 중 가장 낯선 것은 그녀의 몸. 몸에 있는 무언가를 잘라내고만 싶다.

호르몬 약을 먹고 성전환 수술을 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견딘다. 라라는 날이 갈수록 체력이 약해지고, 수술을 앞두곤 체력이 가장 중요할 시기에 발레 연습에 매진한다. 조금씩 실력이 늘어가는 것 같지만 또 무언가 부족한 부분이 생긴다. 수술은 계속 미뤄지기만 한다. 나아지지 않는 것 같은 상황에 그녀는 무력해진다.

남자의 몸을 하고, 여자의 몸과 시선을 가지고 싶다고 꿈꾸는 그녀는 새로운 사랑 또한 해보고 싶다. 모든 게 무력하지만 자신을 애정적으로 아껴 줄 사람을 찾고 싶은 마음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남학생과 어설픈 노력으로 친해지지만 막상 그와 잠자리를 하려는 순간 그녀는 옷을 여민다. 헐레벌떡 뛰쳐나가는 그녀의 굽은 어깨가 도드라져 보인다.

감정적인 짐을 나누고 싶지만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 가족에게도 더는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게 무섭다. 라라는 성기에 테이프를 붙였다 떼는 행위로 자신이 혐오하는 부분을 숨긴다. 남들의 시선과 외로움 때문에 스스로가 싫어진 라라. 그녀는 잘라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혐오스럽고 수치스러운 것을.

라라는 손수건을 물고, 바지를 내리고, 가위를 가져다 댄다. 굵은 비명이 들리고 다음 장면에서 그녀는 병실에 누워있다. 그 후 머리를 단발로 자른 그녀의 뒷모습이 나오고, 역사 안을 걸어가는 그녀의 앞모습이 나온다.

라라는 자신이 바라는 라라가 되었을까. 여자가 되는 것이 머리를 기르고 귀를 뚫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단발로 자른 그녀의 머리카락이 이름처럼 청량해보였고, 옅은 미소에서 그녀 자체로서의 '라라' 향기가 폴폴 풍겼다.

트랜스 젠더에 대해 아직 잘 모른다. 이전에도 관심은 계속 있었고 이것저것 알아보려 노력도 했었다. 그럼에도 난, 그들을 다 안다고 말 할 수 없다. 그들이 이 사회에서 느끼는 외로움이나 긴장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없었으니까. 그들을 대할 땐 왠지 내가 더 긴장하고, 더 유념하면서 대해야한다고 막연하게만 생각했으니까.
 

영화 <걸> 스틸 ⓒ 더쿱

 
내가 애초에 그들을 그저 나와 다른 사람으로 바라봤더라면 또 다른 느낌의 긴장감을 가질 필요가 있었을까. 내 안에도, 익숙하지 않고 나와 비슷하지 않은 존재에 대한 부담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을 차별하고 멀리하고 싶다는 게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노력은 사실 편견에서 나온 틀을 뛰어 넘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이 처한 상황이 어느 정도까지 무력할지 알 수 없으니까. 아니 어쩌면 그들 중엔 무력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텐데, 지레짐작해서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무지하기에 그들의 삶에 대해 안다고 자부할 순 없지만 라라의 삶을 보면서 무지하다는 것 또한 하나의 핑계에 지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지하면 안 되는 것도, 사람에겐 반드시 있다.

세상의 모든 라라가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어주기 위해 삶을 살지도, 누군가의 편견을 뛰어 넘기 위해 부러 노력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자신이 가진 이름 그대로, 라라 그대로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이게 내가 그들을 향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온전한 마음이라고, 현재는 생각 중이다.
영화 루카스 돈트 트랜스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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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기사와 문학 그리고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저의 부족한 생각과 관찰을 통해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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