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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비를 통해 배운 가벼움의 철학

내려놓을 줄 알게 된 비... 그에게서 매력이 느껴졌다

21.01.18 17:45최종업데이트21.01.1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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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명실상부 2000년대 초반 가장 빛나는 스타였다. 그는 1998년 6인조 그룹 '팬클럽'으로 데뷔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후 2002년 <나쁜 남자>를 통해 솔로 가수로 가요계에 복귀한 뒤 <태양을 피하는 방법>, < It's Raining >을 연달아 히트시켰다.

185cm의 큰 키와 길쭉 길쭉한 팔다리에 근육으로 다져진 몸매를 가졌으면서도 유연성이 뛰어나 절도 있으면서도 화려한 춤을 보여줬다. 동시에 < I do >, <널 붙잡을 노래>와 같은 감미로운 발라드도 소화하는 등 매력적인 음색과 가창력을 지녔다. 또한 2003년 <상두야, 학교가자>를 시작으로 배우로도 활동해 <풀하우스>와 같은 히트작 뿐만 아니라, 박찬욱 감독의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도 출연하기도 했다. 
 
2008년은 비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해였다. 15만장 이상 팔린 < Rainism >은 대중적 영향력도 커서 여러 연예인들이 따라했다. 2016년 방탄소년단이 커버할 정도였으니. 무엇보다 박진영의 프로듀싱에서 벗어나 비가 작사하고 작곡에도 참여해서 성공시켰다는 점에서 비의 자신감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해 비는 할리우드에도 진출해 <스피드 레이서>에서 단역을 맡고 <닌자 어새신>의 주연까지 꿰찼다.
 

비가 헐리우드에 진출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닌자어쌔신>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월드스타로서 자의식이 강했던 비에게 흥미를 잃다 

역설적으로 나는 오히려 그때부터 비에 대한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자신이 가난 속에서 얼마나 갖은 노력을 다해 성공했는지를 얘기하는 모습에서 요새 말로 '라떼'의 향기가 나서였다. 특히나 할리우드에서 이동용 전세기까지 제공하고 제작비 1억 달러 영화의 주인공을 맡았다는 얘기에선 월드스타라는 자의식이 마구 발산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닌자어쌔신>의 순제작비는 4000만 달러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느낌은 제대 후 2014년 발표한 정규 6집 < Rain Effect >에서 더 강해졌다. <깡>으로 재조명되었지만 비가 가사를 쓴 <차에 타봐>는 폭력적인 건 둘째치고 너무 못썼고 괴상할 정도다. "지금 어디야 XX놈아 내 전화 빨리 받아라", "나 못 참겠어 어떻게든 너를 때려야겠어", "차에 타봐 일단 맞아야 돼" 등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그러나 비는 자꾸만 월드스타의 자의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2017년 미니앨범 < MY LIFE愛 >에는 가사, 노래, 춤 모든 것이 수준 이하인 <깡>이 담겨있다. 'Magic Mansion'이라는 예명을 쓴 리쌍이 작사, 작곡했다고 하나 여러모로 비의 영향이 커 보인다. 이 노래에는 "허세와는 거리가 멀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왕의 귀환 후배들 바빠지는 중!", "수많은 영화제 관계자 날 못 잡아 안달이 나셨지", "섭외 받아 전세계 왔다 갔다"와 같은 내용에선 2008년 과거의 영광만을 되새기는 비의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비가 주연을 맡은 2019년 영화 <엄복동>은 제작비를 150억 원이나 들이고도 관객 수가 17만 명일 정도로 폭망했다. 네티즌들은 엄복동의 영문 앞 글자를 따서 '17만 = 1UBD'라고 희화화 하기도 했다. 동시에 2019년 상반기부터 '깡'에 대한 희화화도 늘어났다. 
 
쓸데없는 게 연예인 걱정이라고 하고 한평생 돈 걱정 없을 만큼 자산도 많겠지만 이제 연예인으로서 비의 수명은 다한 것 같았다. 동시에 젊은 시절 추억의 스타가 놀림의 대상이 된 게 속상하기도 했다.
 
예전의 비라면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난 정말 월드스타였어, 난 아직도 춤 잘 추고 노래도 뒷받침 되어서 지금의 아이돌보다 더 잘할 수 있어, 자기 관리도 철저하단 말야, 너희들이 무시할 사람이 아니야'라고 대응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용의 가사가 담긴 노래를 발표했을 수도 있고.

내려놓을 줄 알게된 비에게서 배운 가벼움의 철학   
 

아침마당에 출연해 신곡을 선보이는 비의 모습 ⓒ kbs

 
그렇게 놀림이 극에 달하고 연예인으로서 바닥을 치고 있을 때 비는 월드스타라는 자의식을 버리기 시작했다. 2020년 5월 <놀면 뭐하니>에 출연해 본인 입으로 "1일 3깡은 기본이며 10깡도 한다"라며 쿨하게 인정하고 뮤직비디오에 달린 댓글을 읽으며 웃는 등 자학개그를 선보였다. 또한 SNS에도 '연예인은 광대이니 자신을 사용해 맘껏 즐겨 주시길 바란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내려놓으니 오히려 대중들의 악의적인 놀림도 의미가 없게 되었다. 우스꽝스럽고 정말 못 만든 깡은 이제는 재미난 노래가 되어 리메이크가 되고 오랜만에 CF도 찍게 되었다.
 
나에게 흥미로웠던 지점은 그렇게 재기한 이후의 모습이었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으니 이제 여러 예능에도 나오고 그럴싸한 노래를 가지고 나오겠구나 싶었는데 웬걸 비는 유튜브 채널 <시즌비시즌>에만 주력했다. 이 채널의 콘셉트는 시즌은 제작자가 원하는 것, 비시즌은 비가 원하는 걸 하는 방식인데, 길거리에서 홍보 전단지를 뿌리며 채널을 알리지만 아는 사람이 없는 굴욕적인 장면들을 내보내는 등 비를 놀리는 프로젝트들이 많다. 하지만 비는 개의치 않고 귀엽게 칭얼대고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제작진과 채널 구독자가 시키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한다.
 
그렇게 호감을 쌓아가던 중 얼마 전엔 옛 스승인 박진영과 듀엣을 결성해 <나로 바꾸자>란 노래도 발표했다. 역시나 비의 음색과 춤 등 장점을 극대화해주는 건 박진영이라는 생각이들 정도로 완벽했다. 복고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요새 노래의 세련된 느낌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잘 만든 노래고 잘 부르고 잘 췄다. 뮤직비디오도 유머러스하지만 때깔나게 잘 뽑았다.
 
이후 비와 박진영은 <아침마당>에 나가 한복을 입고 춤을 추고 <가요무대>에 나가 원로 선배들과 노래를 불렀다. <놀면 뭐하니?> 유산슬의 홍보 전략을 벤치마킹한 걸 수도 있지만 가볍게 내려놓음을 진정 즐기게 된 것 같다. 비와 박진영이라면 이룰 건 다 이루고 재산도 두둑해 재미로 활동하는 거 아니냐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요새 젊은 아이돌도 버거울 법한 체력소모 많은 고난이도의 춤을 추면서도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라이브를 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진심으로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완벽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계속 자기관리를 해왔던 과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38세 비와 49세 박진영이 가랑이를 쫙 찢으며 엔딩을 하는 모습을 보면 어느 누가 저 나이에 저렇게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를 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경외감까지 든다.
 
아마도 예전 비라면 내가 하루에 반나절은 체력관리를 위해서 운동을 했으며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며 몸 관리를 했고 이 노래가 얼마나 대단한지 어깨에 힘을 주고 얘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무게를 잡지 않는다. 그리고 그 지점이 비를 매력적이게 만들었다. 

동시에 이런 비의 모습을 보며 새해벽두 새로운 다짐을 해본다. 나 역시 올 한해는 한없이 가벼워지기로. 비단 화려한 업적을 남긴 비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묶여있다. '라떼는 말이지'는 꼭 나이든 사람한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스스로 규정해버린 무게, 나는 이러 이러한 사람이야라는 고정된 생각, 그동안 이런 걸 해왔으니라는 관성과 본전 생각, 남들이 나를 이렇게 볼거야, 남들한테 이런 모습으로 보여야지라는 외부로 쏠린 시선 등 그 모든 것이 중력만큼이나 불필요하게 어깨를 짓누른다.

사실 사람들은 타인에 대해 관심이 없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오히려 그 무게를 털어버리고 가벼워지고 각자가 짊어진 삶의 고통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냈을 때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또한 새해가 좋은 건 의식적으로라도 모든 것을 리셋해서 새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없이 가벼워져야겠다.
가벼움 내려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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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및 사회적경제 연구자, 청소년 교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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