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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주의를 끝장내기 위해 바이든이 해야 할 일

[주장] '의사당 난동' 초유의 사태... 미국은 어쩌다 극단으로 갔나

등록 2021.01.09 12:02수정 2021.01.0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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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DC 연방 의회의사당에 난입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상원 본회의장 밖 복도에서 의회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상ㆍ하원은 이날 합동회의를 개최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를 인증할 예정이었으나 시위대가 의사당에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로 회의가 6시간 중단됐다가 재개됐다. ⓒ 연합뉴스=AP


지난 6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미 연방의회 의사당에 침입해 난동을 부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해 11월 대통령 선거 결과 각 주에서 확보한 선거인단의 투표를 연방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확인하는 자리였다. 역사적인 회의 도중 시위대가 갑자기 의사당 유리창을 깨고 침입한 것인데, 이는 미국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워싱턴 정가 및 세계 모든 민주 국가들이 한 목소리로 이성을 잃은 트럼프 지지자들을 비난했다. 물론 그들의 뒤에서 시위를 선동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임기 말에 이르러 마지막 실착을 범한 것처럼 보도됐다. CNN을 비롯한 언론뿐 아니라 민주당과 일부 공화당원들까지 트럼프를 최대한 빨리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높아졌다.

트럼프의 이같은 광폭한 행동의 이면에 숨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언론은 2024년 대선에 트럼프가 재출마할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그의 지지세력을 계속 묶어두기 위한 장기적 포석이라고 진단하는 정도다.

그러나 4년 후에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서 일부러 현재 대통령 선거 결과를 두 달 동안이나 부정하면서 저토록 싸우는 것일까. 조금이라도 트럼프가 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주장과 해석은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4년 후라면 아직 먼 이야기이며, 그 전에 공화당 내 지형뿐 아니라 미국 및 세계의 정치적 판도도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6일 의회에서 선거인단의 투표 결과를 집계해 차기 대통령을 인증하는 절차를 거부하라고 펜스 부통령에게 압력을 넣었다. 국민의 투표 결과를 뒤집기 위한 마지막 투쟁에는 공화당 상원의원 12명과 하원의원 140명까지 합세했다. 선거인단 투표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난달 CNN 방송은 공화당 지지자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선거를 도둑 맞았다는 트럼프의 말을 믿는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었다. 그들은 정말로 두 달 전 선거가 사기와 부정으로 얼룩졌다고 믿고 있었다.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의 심리는 과연 무엇인가. "선거를 도둑 맞았다"면서 싸우는 저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즉 선거는 불만족스럽지만 정당성을 부정할 만큼 괴상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분노하면서 싸우는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 것인가.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스스로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진정한 믿음이 과연 없겠는가.

사실 그들의 정치적 신념은 신실한 신앙과 같이 굳건해 보인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트럼프주의(Trumpism)이라고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트럼프 교회(Trump's Church)라고도 할 수 있는 신념에 기초한다. 그만큼 종교적 신앙과도 같이 트럼프'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분노가 정당하다는 강한 신념에 사로잡혀 있다.


트럼프주의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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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을 이틀 앞둔 지난해 11월 1일(현지시간) 조지아주 롬의 리처드 B 러셀 공항에 마련된 유세장에서 '4년 더'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환호하는 지지자들 앞에 두 팔을 활짝 펴고 있다. ⓒ 연합뉴스

 
트럼프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고자 노력했던 2016년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트럼프주의는 기본적으로 레이건 전 대통령의 공화주의 (Republicanism)에서 비롯된다. 세금을 낮추고, 정부 규제를 완화하고, 문화종교적으로 보수주의를 주창하면서, 애국심을 내세워 해외로 떠나간 미국 기업들을 불러오는 동시에 중국 등 대미 무역흑자국들에게 경제전쟁을 벌이는 것 등을 포함한다. 1980년대에 레이건이 '강한 미국'을 내세우면서 1970년대 말에 오일 쇼크로 휘청거리던 미국이 부흥하고 그에 맞섰던 공산권이 붕괴했던 역사를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후 레이건주의에 기초해서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치면서 세계적으로 각종 규제는 철폐되고, 무역장벽은 무너졌다. 국제 자본은 국경선에 관계없이 각국을 종횡무진 휘몰아쳤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미국의 무역적자는 개선되지 않았고, 누적된 경제적 모순은 새로운 경제공황을 불러왔다.

2000년 닷컴 버블과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신자유주의의 파급력이 얼마나 근거가 없는지, 또 그 결과로 얼마나 세계적인 양극화가 진행됐는지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게 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열린 다보스 포럼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기존 자본주의 시스템이 더 이상 올바로 작동되지 않으며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보수주의 세력 역시 겉으로는 이런 발언에 동의하면서도, 여전히 다시 한번 레이건주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다만 이번엔 미국 엘리트층이 아니라 양극화 과정에서 소외됐던 미국의 중저소득층 백인들이 그 신념을 따랐다.

신자유주의의 폭풍이 30여 년간 몰아친 후 디트로이트를 비롯한 미국 중서부 지역, 소위 러스트 벨트에는 경제적 피폐의 자취가 넘쳐흘렀다. 한때 미국과 세계를 호령했던 산업이 거의 붕괴하고, 기업들은 해외로 떠난 상황이었다. 시카고 출신의 오바마가 8년이나 대통령직을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양극화에 의한 상대적 박탈감은 여전히 증가했다.

트럼프는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이미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서 큰 인기를 누렸던 오바마 그리고 그 이전부터 워싱턴 정가의 강력한 지도자였던 힐러리 등 민주당 본진에 대항하면서 공화당은 당내에서 변변한 인물을 찾지 못한 채 결국 트럼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부동산 재벌이었던 트럼프는 미국의 경제적 후퇴 문제뿐 아니라 이민자 이슈를 크게 부각하면서 이번에야말로 다시 한번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웠다. 그는 자신의 인기를 높이기 위해 민중이 함께 손가락질 하고 싶은 '적'을 필요로 했는데, 그 대상이 이민자들이며 중국과 같은 대미 무역흑자국이다. 기후온난화 같은 환경 문제 또는 국제적 무역 협약 등은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는 것일 뿐 미국 제일주의에 적합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했다.

트럼프는 오바마나 힐러리와 민주당이 가장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이슈들, 이민과 환경 같은 이슈들을 과감히 집어던지고 반대 길을 제시하면서 레이건 시대와 같은 환영을 미국민에게 내세웠다. 트럼프는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거대한 장벽을 세우고, 환경 개선을 위한 국제 조약에서 탈피했다.

환경 등에 쓸 예산으로 미국을 재건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벌어진 경제적 향연에서 찬밥 신세가 됐던 저소득 저학력 미국 백인들에게 메시아적 메시지처럼 보였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주식을 비롯한 자산시장은 민주당이 주도한 무제한 지원으로 크게 부흥했지만, 교육 수준이 낮고 소득이 높지 않은 백인 보수주의자들에게 열매는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무제한 양적완화를 통해 금융위기를 벗어나고 있었던 오바마 시대에 그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심해졌다. 그 앞에 나타난 이가 트럼프였다.

그들은 정말로 트럼프가 메시아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미국을 세계 최고로 재건하고, 자신들에게 물질적 축복도 내려주면서, 공화당이 추구했던 전통적 가치들 - 감세, 작은 정부, 소중한 가정을 비롯한 복음주의적 기독교 가치, 힘에 기반한 외교와 세계 통치, 미국의 특권주의 등 - 되살릴 수 있는 지도자, 그가 바로 트럼프라는 믿음 말이다.

트럼프주의의 발전

마땅한 지도자가 없는 공화당은 2016년 대선에서 어쩔 수 없이 희망을 포기한 채 트럼프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게 됐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당연히 패배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트럼프는 되살아났다. 

보수적인 전통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면서 경제적으로는 어두운 그늘에 가려졌던 백인들을 중심으로 트럼프에 대한 희망이 급속히 솟아올랐다. 그 희망이 트럼프를 믿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변질되면서, 그를 옹위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생겨났다. 그들은 트럼프를 가짜로 믿는 '척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트럼프를 사모하고 그를 존경하는 진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 믿음을 자신감있게 내보이고 전파하고자 노력해왔다.

이방인 같았던 트럼프의 공화당 내 입지는 더욱 강화됐고, 그를 따르는 상하원 의원들은 불어났다. 공화당원들과 보수 유권자들의 지지가 없다면 선거를 통해 다시 의회에 돌아오지 못하겠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이 불안은 트럼프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변했다. 그들의 눈엔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미트 롬니나 매코넬 상원 원내총무들은 공허하게 '공화주의'만 입에 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의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들과 복음주의적 기독교인들이 온통 트럼프주의의 휘장 아래로 몰려든 것은 현실적 힘의 논리 때문이었다.

미국적 민주주의 제도 아래서 완전한 독재자나 폭군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전횡은 오히려 애국적 행동으로 보였다. 이는 공화주의자들을 열광시켰다.

그러나 광적인 믿음은 부작용을 낳았다. 트럼프주의자들이 대선 결과를 믿지 않는 게 대표적 사례다. 트럼프가 '선거는 사기고, 가짜이며, 도둑 맞은 것'이라고 말하는 걸 그대로 믿었다. 

트럼프가 몰락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골수 트럼프주의자들은 버틸 것이다.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미쳤구나'라고 말해도 소용 없어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이 미친 게 아니라, 트럼프를 짓밟고 진실을 왜곡한 세상이 미쳤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주의의 종말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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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4일(미국 현지시각) 미국 대선 선거인단 투표 결과가 공식 발표된 이후 보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AP

 
미 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 이후 민주당은 트럼프 탄핵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연방수사국(FBI)은 의사당을 침입한 시위자들을 조사할 것이다. 트럼프는 마지막 전투에서 패배함으로써 재기 불능이 될 수도 있다.

본질적으로 트럼프주의는 미국 서민의 심리학적 동요에서 비롯됐다. 수십 년간 경제적으로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던 그들이 트럼프의 입을 통해 울분을 달랠 수 있었다. 그들은 미국 도시 엘리트 그룹이 통제하는 세계적 양극화 과정에서 상대적 피해자들이었으므로, 기꺼이 트럼프를 자신들의 지도자로 인정하고 따랐다.

트럼프는 종교적 메시아와 같이 무릎을 꿇지 않고 십자가 위에서 못 박히는 패배를 꿈꿀지도 모른다. 그래야만 그를 따르는 '광신자들'도 계속 힘을 낼 수 있다. 그래야만 그 힘을 바탕으로 다음 선거에 나설 수 있다. 지금에 와서 트럼프가 백기를 든다면? 그건 트럼프주의의 몰락이다. 트럼프주의의 몰락은 저학력 저소득 백인들의 희망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수십 년간 쌓인 상대적 박탈감과 울분을 달랠 빛이 사라지는 것일 수도 있다.

바이든에게 주어진 시급한 과제가 있다. 그가 자신의 말대로 모든 국민을 포용하려면 21세기 신형 자본주의에 의한 양극화를 막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제2의 트럼프가, 제2의 트럼프주의자들이 등장할 것이다.
#트럼프주의 #트럼프 #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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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턴 옆에서 조용히 사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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