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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절대 모르는 엄마의 새벽 시간

코로나와 함께 시작된 오전 6시 반 기상... '나만의 시간'이 준 일상의 에너지

등록 2021.01.06 10:49수정 2021.01.0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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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6:30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눈이 떠진다. 딱히 새벽이라고 할 수는 없는 시간이지만, 겨울이라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이다. 새벽에 일어나는 맛이란 해뜨기 전의 어둠을 만끽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모두들 아직 잠들어 있는 시간에 홀로 집안의 적막을 즐기는 시간.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부터였다. 정확히 '요이 땅!' 하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는데 등교가 중지되는 초유의 사태를 접하고서 하루하루의 뉴스가 궁금할 무렵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문앞에 배달되어 있는 신문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으로 하루를 열었다. 미증유의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 세상 궁금한 게 많았다.

속보로 뜨는 뉴스 말고 대체 이 코로나가 무엇인지 알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사를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다. 덕분에 수많은 칼럼, 전문가의 시각, 지금 이 때를 예견한 듯한 영화들까지 섭렵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랬는데, 일년이라는 시간은 아직 코로나라는 녀석을 완전히 알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나보다. 우리는 지금도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덕분에 새벽에 일어나는 일에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 연속극 드라마를 기다리는 것 만큼이나 다음날 신문이 배달되는 일이 기다려졌다.

그러나 오로지 신문을 기다기는 것만이 새벽 기상 습관에 도움이 된 것은 아니었다. 새벽에 일어나는 일에 불을 지핀 것은, 모르긴 몰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나의 강한 욕구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루종일 아이들과 부대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홀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딱 그 새벽시간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새벽에 일어나는 일에 재미를 붙이자, 새벽에 하는 일이 늘어났다. 먼저 커피 끓이기. 캡슐커피를 마시지 않는 탓에 조금 더 번거롭게 커피를 준비해야 했지만 새벽에 핸드드립을 준비하는 일은 나름 재미가 있었다.

일단 원두 봉지를 열 때 향긋하게 퍼지는 커피 향에 기분이 좋아졌다. 요즘은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대세라지만 나는 '뜨죽따'(뜨거워 죽어도 따뜻한 아메리카노)족이다 보니 한여름에도 따뜻한 커피를 내렸다. 원두 커피가 지겨워지면 가끔 가루 커피를 타기도 했지만 새벽에 퍼지는 커피향을 포기 못해 귀찮아도 핸드드립 커피를 만들었다.
 

스트레칭을 위한 발레바 유아를 위한 발레바가 아닌, 중년을 위한 발레바 ⓒ 은주연

 
커피를 타서 신문만 읽기에도 빠듯했던 시간이 점점 여유있게 남기 시작했다. 물론 시간이 남기를 바라고 더 일찍 일어난 탓인지, 아이들이 점점 늦잠을 자는 탓인지 모르겠지만 남는 시간에 뭔가가 자꾸만 더 하고 싶어졌다.

혼자만의 시간을 더 값지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에 나가서 뛰어볼까? 라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불행히도 새벽부터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은 나에게 불가능했다. 아무리 좋은 것도 나와 맞지 않으면 약이 아닌 독이 될 수도 있는 법. 나는 차선책으로 홈트용 기구를 몇 개 준비했다. 가벼운 아령과 밴드. 그리고 발레바까지.

매트를 하나 사서 깔면 공간도 차지하지 않고, 요가도 할 수 있고, 거기에 명상과 단전호흡까지 가능했을텐데 내가 식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발레바를 고집했던 것은 매트보다 더 손쉽게 스트레칭을 할 수 있다는 기능성 측면이었다.

굳이 매트를 펴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과정을 생략해야지 아침에 스트레칭을 하겠다는 나의 의지를 습관화 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무리 작은 습관을 하나 만드려고 해도 진입장벽이 높으면 끝내 실패할 것이 아닌가. 식구들은 지금도 쓰지 않는 발레바가 자리만 차지한다고 성화지만, 늦게 일어나는 그들은 모른다. 발레바가 나의 새벽과 매일 함께 했음을.
 

기도로 여는 새벽 눈 비비고 일어나 묵주부터 잡는다. 가만가만 기도문을 외고 있으면 눈 끝에 달린 잠이 어느새 사라지고 집중이 된다. ⓒ 은주연

 
그렇게 차츰 완성되어가는 나의 새벽 일과에 화룡점정을 찍은 것은 새벽기도였다. 처음에 미미하게 시작했던 기도는 신문과 커피, 스트레칭을 뛰어넘는 나의 가장 소중한 일과가 되었다.

요즘엔 일어나자마자 커피를 끓이고 신문을 들여오기에 앞서 기도책을 펴고 묵주알을 잡는다. 길어지는 코로나에 각지에 퍼져있는 가족들이 건강하길, 아이들이 이 겨울을 무사히 보내길, 인간이 어찌 할 수 없는 모든 일에 신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도한다. 그렇게 차분해진 마음으로 여는 새벽은 또 하루만큼의 힘을 내게 준다.

새벽이 있는 하루는 내가 중년에 시작한 가장 의미있는 습관이 되었다. 새벽잠이 없어지면 나이가 든 것이라는데, 이런 나이듦은 정말로 환영이다.

내 인생에 새벽 일과가 생긴 것만으로도 좋은데, 얼마전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마시는 따뜻한 차와 명상, 그리고 체조가 장수를 향한 첫 걸음'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비록 명상과 차 대신 기도와 커피로 여는 새벽이지만, 이러다 나 장수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새벽 #새벽습관 #새벽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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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고 글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따뜻한 사회가 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따뜻한 소통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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