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사진전, 아직 못 봤다면 기회가 남았습니다

‘퓰리처상 사진전 앵콜전시’, 2월 28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등록 2021.01.02 17:17수정 2021.01.03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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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수없이 많은 사진을 남긴다. 사진은 한순간을 포착할 뿐이지만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선사한다. 그것이 아픔과 씁쓸함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 자체는 정적이지만 동적인 속성을 지녔다.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진을 기념하는 상이 있다. 그 스스로 저널리스트였던 조지 퓰리처가 설립한 퓰리처상이 바로 그것이다. 퓰리처상은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보도·문학·음악상으로, 1917년 퓰리처의 유언으로 제정됐다. '공공봉사, 공공 윤리, 미국 문학, 교육 진흥을 장려하는 것'이 퓰리처상의 정신이다. 현재 보도사진 부문은 1942년에 시작해 속보 사진과 특집 사진 두 분야로 나누어 수상한다.


작년 12월 25일부터 올해 2월 2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퓰리처상 사진전 앵콜전시'가 열린다. 지난해 여름, 사회적 거리두기로 관람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다시 개최했다. 수상작은 1942년부터 전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특히 2019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김경훈 사진기자의 수상작이 포함돼 그 특별함을 더한다.

셔터를 누른 순간, 알았다
 

2019년 퓰리처상 수상작. 로이터 통신 소속 김경훈 기자가 촬영한 '장벽에 막히다'(Up Against The Wall). ⓒ Reuters Press Staff

 
"셔터를 누르는 순간, 이 사진이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 짐작했다,"

로이터 통신 소속의 김경훈 기자의 말이다. 그는 중남미에서 미국으로 대규모 이민을 떠나는 카라반(Caravan)의 절박한 모습을 찍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사진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다.

사진 속 인물은 온두라스에서 왔다. 그들은 멕시코를 지나 미국 샌디에이고 인근의 국경 지대에 도착했다. 국경 경비원들이 이민자들을 향해 최루탄을 던지자 엄마는 아이들을 붙잡고 황급히 몸을 피했다. 그 순간을 김경훈 기자가 포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카라반을 마치 갱단으로 묘사해 이주민 수용을 완강히 거부했지만 김경훈 기자가 경험한 현실은 달랐다.


그는 "사진 속에 있는 건 갱단의 폭력을 피해 아이들에게 밝은 미래를 주기 위해 먼 길을 떠나온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카라반의 실상을 알린 이 사진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2018년 말, 온두라스에 온 그 가족은 미국 난민으로 받아들여졌다.

자유의 상징, 혐오의 도구로
 

'퓰리처상 사진전 앵콜전시' 홍보 포스터 중 일부 ⓒ 제이콘컴퍼니

 
수상작에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서로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1975년 7월 미국은 인종차별을 극복하려는 작지만 큰 걸음을 내딛었다. 미 연방 대법원의 판결로 처음으로 흑인과 백인 학생이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항과 시위도 있었지만 9만 명의 학생이 577대 통합버스를 타고 함께 등교했다. 지금껏 다른 세계를 살아온 이들은 교실에서 마침내 친구가 되었다. '루이빌에서의 버스 타기'는 학교에서 제도적으로 인종차별을 철폐하려는 위대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화합과 공존의 이면에는 갈등과 분열이라는 그림자도 있었다. 1976년 4월 보스턴 시청에서 백인 학생 200명이 인종차별을 철폐하는 교육제도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시청으로 오고 있던 한 흑인을 붙잡고 성조기 깃대로 그를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경찰관들은 현장을 못 본 체 했다. 이 날 장면을 촬영한 스탠리 포먼 기자는 그날을 이렇게 기록했다. '자유의 상징이 인종 혐오의 도구로 전락한 날' 지금도 이 갈등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흑백 사진이 칼라 사진으로 바뀌었을 뿐.

되풀이 되는 전쟁

많은 수상작은 폭력적이고 씁쓸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이는 사진들이 역사적인 사건을 다루는 일이 많고, 역사는 종종 아름다움보다는 피로 기록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전쟁의 현장을 담은 사진이 특히 그렇다.

6·25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AP통신 소속의 종군기자 맥스 데스포가 한국에 상륙했다. 1950년 11월 25일, 중공군이 북한군을 지원하기 위해 물밀 듯이 국경을 넘어오자 UN군은 몇 주를 버티지 못한 채 평양을 버리고 후퇴했다. 그도 군대와 함께 군사용 간이 다리를 이용해 대동강을 넘었다.

강 반대편에 도착하자 한 장면이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수많은 피난민들이 폭격으로 파괴된 다리에 매달려 강을 건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피난민들의 절박한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비인도적이라는 이유로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무기가 있다. 그 이름은 네이팜탄. 닿는 무엇이든 들러붙어 불 태워버린다. 베트남전에서 흔하게 사용됐다. AP통신의 베트남 출신 사진기자 닉 우트는 1972년 6월 8일 사이공의 서쪽에서 벌어진 '트랑 방' 전투를 취재했다.

어느 날 베트남군 비행기 한정이 실수로 민간인 구역에 네이팜탄을 투하했다. 마을은 불길에 휩싸였고 한 여자 아이가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네이팜탄으로 옷은 불타 없어지고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아이는 "너무 뜨거워요. 제발 도와주세요"라며 울부짖었다.

두 사진은 되풀이 되는 전쟁에서 가장 고통 받는 사람은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2005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여성 사진기자 안야 니드링하우스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처럼 말이다.

"분쟁의 본질은 같다. 영토, 권력, 이념을 위해 싸우는 양 진영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

일상 속의 아름다움

사진전은 전쟁, 평화와 같은 거대 담론뿐 아니라 우리들이 마주하는 아름다운 일상도 엿볼 수 있다.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지의 사진기자 매니 크리소스토모는 디트로이트의 사우스웨스턴 고등학교에서 40주를 보냈다. 그는 고등학생의 진정한 모습을 취재하고 싶었다.

흑인, 백인, 히스패닉, 아랍계 등 다양한 인종이 모여 있는 사우스웨스턴 학생은 대부분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직장이 없는 부모가 많은 데다 범죄율도 높은 지역이었다. 하지만 기자가 마주한 학생들은 여느 청소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 눈치를 보고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어 했고 미래를 불안해 하면서도 희망을 꿈꾸고 있었다.

거리를 거닐다보면 우리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사진들이 있다. 멈춰 선 곳에, 깊은 여운이 몰려온다. 사진기자 에드워드 T. 애덤스는 좋은 사진은 "당신을 웃거나, 울거나, 가슴 아프게 (한다)"고 말한다. 퓰리처상 사진전에는 그런 사진들이 있다.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에 미소 짓기도 하고 전쟁의 참상을 보며 가슴 아파하기도 한다. 우리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덧붙이는 글 퓰리처상 사진집 '슈팅 더 퓰리처'를 참고했습니다.
#퓰리처상 #사진전 #전시회 #사진 #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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