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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넓은 평수에 여유자금까지... 내놓기 무섭게 팔린다"

캐나다, 코로나19 이후 '탈 도시' 인기... 도시 종말의 전조라는 해석도

등록 2021.01.01 12:35수정 2021.07.1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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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집'이라는 공간이 지니는 의미와 기능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집을 좀더 안락하고 편리하게 '호텔'같은 공간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증가했다. 카페 등의 다중이용시설 이용을 자제하게 되면서 집은 '홈카페' 역할도 겸해야 했고, 재택근무를 하게 된 이들에게는 독립된 '사무실' 기능도 추가되어야 했다.

온라인 수업을 듣는 아이가 있다면 '교실'의 기능도 빼놓을 수 없다. 풍광 멋진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없으니 집에서 '홈캉스'(홈과 바캉스를 합친 단어로 집에서 보내는 휴가를 뜻함)를 즐기려는 이들도 늘어났다.

집은 이제 단순히 가족과 시간을 공유하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을 넘어 보다 다층적 의미를 지니는 '복합공간'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추세를 타고 '집 꾸미기' 열풍이 불고 인테리어 업체가 호황을 누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 현대 리바트, 한샘, 이케아 코리아 등의 실적 고공행진이 이를 증명한다.

특히, 온라인 집들이 콘텐츠에서부터 쇼핑과 시공에 이르기까지 인테리어 전반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 집'은 누적 앱 다운로드 수 1400만 돌파, 누적 투자유치 880억원 등 화려한 실적을 경신하며 코로나 시대의 변화를 입증하고 있다.

한국은 집 꾸미기, 캐나다는 도시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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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토론토 풍경 ⓒ pixabay

 
집을 바라보는 인식과 시선에 변화가 생긴 건 캐나다도 마찬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이곳에서는 그것이 '도시 이탈'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15퍼센트의 캐나다인들이 부동산 시장 조사에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눈을 돌리는 곳은 적은 예산으로 더 큰 공간을 얻을 수 있는 교외나 시골 마을이다.

'도시 이탈' 현상을 주도하는 건 주로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굳이 대도시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진 사람들이다. 재택근무를 실시한 후 많은 기업들이 긍정적 결과를 얻었고, 전자 상거래 업체 '쇼피파이(shopify)' 및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의 기업들은 팬데믹이 끝나더라도 상당수의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하게 될 것이라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일과 교육, 쇼핑 등 일상의 많은 부분들이 온라인 중심으로 옮겨가는 현상은 팬데믹이 앞당겼을 뿐 이미 진행되고 있던 예견된 변화라는 데에 전문가들은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재택근무가 일시적 현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렇게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등으로 집 공간의 구획화가 절실해지고, 온가족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더 넓은 집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나아가 가족과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마당이 얼마나 넓은지, 감염의 위험이 적은 산책 등을 즐길 수 있는 공원이 가까이 있는지, 주변이 자연친화적 환경인지가 집 선택의 중요 요소가 되었다.

재택근무를 하니 통근거리와 시간은 고려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 게다가 다양한 음식과 풍부한 문화생활 등 대도시가 제공하던 이점들이 반감된 지금, 훨씬 낮은 가격에 더 넓은 공간을 얻을 수 있는 소도시와 지방의 주택들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팬데믹 이후 '도시 탈출'을 실행해 옮긴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종 뉴스화되곤 한다. 토론토에서 마케팅 전문가로 일하던 존 코프는 재택근무를 하게 된 후 무려 4300 킬로미터나 떨어진 '솔트 스프링 아일랜드'(Salt Spring Island, BC주 걸프아일랜드에 속한 섬 가운데 가장 큰 섬)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태평양을 바라보면서 재택근무를 하고, 항구마을을 산책하며, 해질녘이면 나무가 늘어선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삶이 가능해졌다. 11월 18일자 CBC 기사 '교외에서 솔트 스프링 아일랜드까지, 팬데믹 한가운데서 이주하는 토론토인들. 탈출은 계속될 것인가?'라는 기사에서, 그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가만, 토론토에 살기 위해 드는 비용으로 내가 실제로 얻고 있는 게 뭐지? 과연 그럴 가치가 있는 걸까?"

토론토는 콘서트와 바, 맛있는 음식 등으로 매력적인 환경을 이룬 곳이지만, 그것들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된데다 앞으로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의 이용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솔트 스프링 아일랜드에서 오랫동안 꿈꿔왔던 삶을 살고 있다.

같은 기사에 오드라 윌리안스의 사연도 실렸다. 그녀는 도시 외곽 지역으로의 이사를 신중히 고려하던 차에, 아예 여러 선택지들을 쉽게 비교 분석할 수 있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Ninety Minutes From Toronto(토론토에서 한 시간 반)'라는 이름의 이 웹사이트에는 토론토에서 한두 시간 내에 위치한 중소도시들의 인구통계, 주택 가격, 주변환경, 마을 문화 등 상세자료들이 올려져 있다.

서비스 개시 후 8월 한 달 동안에만 페이지뷰가 23만을 넘어섰고, 1천 건의 뉴스레터 신청과 150개의 감사 이메일을 받았다. 얼마나 많은 토론토인들이 '도시 탈출'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인구가 적거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비교적 잠잠한 지역을 찾아 주를 넘어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 <글로벌 뉴스(Global News)>는 지난 10월, 뉴브런즈윅주(New Brunswick)로 이주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캐나다에서 가장 코로나 확진자가 많은 주 가운데  하나인 온타리오주에 살면서 늘어가는 불안과 염려에 시달리던 테럴 가족은 코로나19 확진자도 비교적 적고 주택 가격도 저렴한 뉴브런즈윅주로의 이주를 결심했다.

온타리오주의 집을 팔아 뉴브런즈윅주에 새집을 마련하면서, 테럴 가족은 새로운 직장을 찾을 때까지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여유자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2020년 캐나다 부동산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온타리오주의 평균 주택가가 59만 4천 달러(약 5억 7백만원)인 반면, 뉴브런즈윅주의 평균가는 18만 3천 달러(약 1억 5천 6백만원)다.)

테럴가족의 경우처럼 재택근무가 아니더라도 또다른 이유로 도시를 떠나는 이들도 있다. 높은 집값과 번잡함 때문에 이전부터 도시를 떠날 꿈을 품고 있었거나, 집을 소도시로 옮긴 뒤 생긴 여유자금으로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은퇴 후 삶을 즐기려던 이들이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그 계획을 앞당기는 경우다.

"중소도시 주택, 내놓기 무섭게 팔려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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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단독주택(자료사진) ⓒ flickr

 
이러한 '도시 이탈' 붐을 타고 토론토 외곽의 소도시 심코(Simcoe)의 경우 작년 대비 65퍼센트 이상 주택판매량이 증가했다. 토론토 북부의 작은 항구마을인 콜링우드의 부동산 중개인들도 팬데믹을 맞아 전에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토론토에서 두 시간 가량 떨어진 중소도시 런던 역시 집을 내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가는 바람에 심지어 직접 집을 보지 않고 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위에 언급한 뉴브런즈윅주의 도시들도 이런 추세를 제대로 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른바 '판매자 시장(seller's market)'이 형성되는 중소도시들이 늘고 있다. 공급은 한정돼 있는데 외부에서 유입되는 수요가 늘다보니 필연적으로 주택가격 상승이라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부지런히 새로 집을 짓기도 하지만 수요의 증가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최근 대형 부동산 기업 RE/MAX가 내놓은 보고서 '2021 주택시장 전망'에 따르면 노스베이, 킹스턴, 멍크턴, 광역 밴쿠버 등 교외의 많은 주택 시장이 도시에서 이주하려는 이들로 넘쳐나 구매자들의 경쟁과 가격상승이 촉발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는 2021년에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팬데믹이 도시 종말의 전조가 될 것인지에 대한 논쟁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대도시가 제공하는 인프라의 편리성과 다양한 직업선택의 폭, 그리고 유학생과 이민자들의 지속적인 유입 등을 감안한다면 도시의 종말을 논하기엔 이르다. 그보다는 부동산 업체 리얼로소피(Realosophy) 회장의 의견이 보다 현실성있게 다가온다.

그는 대도시를 떠나 외곽의 소도시나 작은마을을 찾는 이러한 트렌드가 계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많은 일자리와 사회지원망 같은 토론토 다운타운의 유혹은 팬데믹 이후 되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가 바라는 것은, 지금의 트렌드가 새로운 주택공급원을 향한 문을 열어 대도시의 주택가를 낮추고 사람들이 도시 밖의 선택지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 걸쳐 많은 것들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집'이라는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그중 하나다. 그 변화된 시선이 중소도시들을 '극도의 판매자 시장'으로 밀고가는 또 다른 위험이 되지 않기를, 대도시와 중소도시의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계기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코로나 #집 #캐나다 #도시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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