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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공포'와 '관보발행'은 전혀 다르다

법률 '공포' 개념을 바로잡기 위한 나의 수난 기록②

등록 2020.12.31 09:48수정 2020.12.3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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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3일 중요한 법률 개정안 하나가 발의됐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나중에 이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기존의 ‘법률 공포일=관보게재(발행)일’은 ‘법률공포일=대통령 서명일’로 바뀐다. 대통령이 법률안에 서명함으로써 ‘법률’이 확정(‘공포’)되고, 이 법률안이 관보에 게재(‘공표’)됨으로써 그 법률의 ‘효력’이 발생하는 법률체계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해외자료조사관(국제관계학 박사)의 공로가 절대적이었다. 그는 지난 2006년부터 10년이 넘도록 잘못된 ‘법률 공포’ 체계를 바로잡는 데 헌신해왔다. 그 과정에서 어이없게도 징계를 받는 등 ‘수난’을 겪어야 했다. 소준섭 전 조사관은 ‘어떻게 처음으로 법률 공포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는지’, ‘법률 공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문제를 제기한 이후 그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세 차례에 걸쳐 증언할 예정이다.[편집자말]

지난 12월 22일에 발행된 <관보>. ⓒ 전자관보

 
프랑스 헌법 제10조는 "대통령은 최종적으로 승인되어 정부에 이송된 법안을 이송일로부터 15일 이내에 공포(promulgue)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독일 헌법 제82조는 "이 기본법의 조항에 따라 성립된 법률은 부서 후 연방대통령이 서명(ausgefertigung)하고 연방법률공보에 공고(verkündung)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 헌법은 "법률은 의회의 승인 후 1개월 내에 대통령이 공포한다. 법률은 공포 후 즉시 공고하고, 공고 15일 후에 효력을 발생한다"고 규정한다. 벨기에 헌법 제109조는 "국왕은 법률을 서명․공포한다(The King sanctions and promulgates laws)"라고 규정함으로써 'promulgate'라는 용어를 명기하고 있다. 중국의 입법법(立法法) 제52조는 "법률의 서명 공포 후 적시에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공보 및 전국적으로 배포되는 신문에 게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률 '공포(promulgation)'와 '관보발행(publication)'의 차이

우리와 비슷한 듯하지만, 결국 다르다. 모두 법률의 '공포'와 '게재(발행)'가 상이한 개념이며, 법률의 '공포' 행위가 발생한 연후에 비로소 공보에 '게재(발행)', 즉 '공표'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세계에서 맨처음 법률상 '공포'의 개념 및 규정을 발전시켜왔던 프랑스의 법률사전에는 "공표(publication)란 공표절차가 실행되는 행위이다. 법률 또는 법적 고지의 발행이 게재되는 공보 또는 신문은 출판물(publication)이라고 칭해진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또한 '공포'의 법률상 개념에 대해서는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은 법률이 정부에 이송된 후 15일 이내에 공포한다. 공포는 법률의 합법적인 탄생을 확인하는 행위이다(Arnauld Salvini, 2003:29)."라고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다.

본래 '공포(promulgation)'의 법률적 의미는 '관보발행'이 아니라 바로 대통령, 혹은 국가 수반(首班)의 법률 서명 절차를 가리키며 법률을 성립(확정)시키는 행위이다. 따라서 '공포'란 관보발행을 의미하는 'publication'(출판)과는 분명하게 상이한 개념이다. 이 점에 대하여 권위 있는 <Catholic Encyclopedia>은 "법률의 공포는 법률의 출판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법률 공포의 목적은 입법자의 의지를 알리는 것인 반면, 법률의 출판은 법률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당사자들에게 제정된 법률에 관한 지식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법률이 정상적으로 만들어졌음을 확인하는 행위와 법령을 일반대중에게 알리는 표시행위는 구별되어야 한다. 확인행위를 독일법에서는 'Ausfertigung'이라 하고 프랑스법에서는 'promulgation'이라 하는 반면, 표시행위는 독일법에서는 'Verkündigung'이라 하고 프랑스법에서는 'publication'이라 한다. 확인행위는 법령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법적 행위로서 특정 법령이 정상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인증하는 행위이고, 표시행위는 시민에게 법령의 존재를 알리는 행위다.


근대 시기에 이르기까지 왕이나 황제 등 국가 수반(首班)의 법률 반포, 즉 공포 행위만으로써 법률은 이미 충분히 그 법적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었으나, 근대 이후 인쇄와 출판이라는 수단이 마련된 뒤부터는 법률의 효력 발생 시점을 법률을 출판, 발행하여 국민들이 법률 공포 사실을 인지한 때로부터 적용시키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도 근대 시기에 이르기까지 법률공포 행위만으로써 법률은 이미 충분히 효력을 발생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황제 나폴레옹의 서명과 동시에 법률의 효력이 발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근대 이후에 법률의 공포 사실을 수범자(受範者)인 국민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는 근대 민주법치주의의 기본 정신을 살리기 위하여 법률의 효력 발생 요건을 국민들이 법률 공포 사실을 인지한 시점부터 적용함으로써 '출판일자'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실종돼버린 법률 '서명일자'

법률에는 중요한 '일자'가 두 개 있다. 하나는 법률이 언제 만들어졌는가, 즉 언제 탄생되었는가의 '법률 출생일자'이다. 독일, 프랑스를 비롯하여 미국, 스페인, 러시아 등 서방 모든 국가의 법률은 "0000년 00월 00일의 '×××× 법률'"이라고 칭해진다. 여기에 기록되는 일자는 이른바 '법률일자'로서 법률공포권자가 법률에 서명한 서명일자와 동일하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법률의 생일을 가리키며, 이 일자가 바로 '공포일자'이다.

또 하나의 일자는 법률을 관보에 게재한 '발행(출판)일자'이다. 원래 출판인쇄가 없었을 때는 이 일자가 존재하지 않았으나 대중들에게 법률이 만들어진 사실을 '출판'을 통하여 알리는 절차가 중요해지면서 발행(출판) 일자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특정 법률을 지칭할 경우 일반적으로 앞뒤의 일자와 번호는 언급하지 않은 채 '××× 법률'이라고만 부른다. 따라서 우리의 법률에는 법률이 언제 만들어졌는지의 출생 일자를 알 방도가 없다. 마치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출생 신고를 동사무소에 하는데, 신고일자만 남고 정작 출생일자는 없어져 버린 것과 마찬가지 결과가 된 셈이다.

'법률 공포'라는 확인행위는 확인권자가 대상 법령에 서명을 하고 그 날짜를 기재하는 행위로 구성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이 "법률 서명일자"가 실종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대통령이 국회에서 이송되어온 법률안을 서명하면서 관보 발행일자와의 혼선을 방지하기 위한다는 이유로 인하여 정작 그 서명일자를 쓰지 않고 있으며, 그 대신 이후 관보를 발행할 때의 그 발행일자를 대통령 서명 아래에 쓰는 것을 관행으로 하고 있다.

사실 일반인들이 차용증을 서로 주고받을 때나, 부동산 계약서를 작성할 때도 반드시 그 일자를 쓰고 난 뒤 비로소 서명이나 날인을 한다. 만약 여기에서 그 일자가 없다면 그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일자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법률에 서명하는 절차에서 일반적인 문서 작성에 있어서 적용되는 기본요건조차 갖추지 않고 있다. 일종의 '가(假)서명' 상태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문서 성립의 완결성 자체에도 커다란 하자인 것이며, 특히 이것이 국가 최고수반인 대통령이 국가제도의 근간인 법률의 확정을 서명하는 절차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018년 첫 국무회의. ⓒ 청와대 제공

 
대통령의 법률공포권 침해

'법률 공포'의 확인행위는 그 인증적 성격에 의하여 대상 법령의 형식적 실체적 적법성에 대한 심사권한 문제와 연관된다. 대통령의 이 법률공포권은 권력분립의 원칙상 일정한 의미를 가지고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권한이다. 하지만 지금의 잘못된 공포 개념으로 이것이 제약받게 된다. 지금처럼 공포일자를 미리 앞당겨 기재하게 되면 대통령의 법률안에 대한 심사기간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공포를 요식적이고 행정적인 절차 정도로 간주해온 우리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법률공포권의 의미는 대단히 중대하다. 권력분립 원칙상 법률의 제정은 국회가 하지만 그 법률에 집행력을 부여하는 것은 대통령이다. 즉, 법률은 대통령에 의해 공포됨으로써 비로소 집행력을 부여받고 시행할 수 있는 생명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법률 공포는 법률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대통령의 국법행위로서 엄중하고 정밀하게 처리되어야 한다. 국가의 골간인 법률을 제정하는 문제에 있어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지점에서 실수하는 것은 우리의 국격(國格)을 손상하는 일이다.

헌법은 법률안이 정부에 이송되어 15일 이내에 공포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15일의 기간 중에 관보 게재에 필요한 시일까지 포함될 경우에는 그만큼 대통령의 재의 요구 판단을 위해 필요한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현재 실무상 관보 게재는 발행일 3일 전까지 요청하도록 되어 있다. 결국 대통령의 재의요구를 위한 심사기간은 12일 정도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관보 발행이 기술적인 요인이나 어떤 실수로 늦어지게 되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법률이 관보 발행과정에서의 기한 초과로 인하여 대통령이 해당 법률을 거부한 것으로 되는 경우도 발생할 가능성조차 있다.

또한 지금처럼 '공포'를 '관보 게재'로 '간주'한다면, 대통령의 법률안 서명 실무가 뒤틀리게 된다. 즉, 현재의 실무에서 대통령이 법률안에 서명함에 있어 서명일자 대신 아직 발생하지 않은 장래에 있을 관보발행일을 예상하여 그 날짜를 '공포일'로서 미리 기재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문서에 1월 1일에 서명하면서도 일자는 1월 4일로 기재하는 것은 서명일자는 1월 1일로 그대로 하되 관보게재일은 1월 4일이라고 따로 기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 있는 일이다. 이렇게 하여 대통령의 국법행위가 문서 작성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는 채 이루어지고 있다.
 

12월 22일에 발행된 <관보>의 일부. 관보발행(게재)일이 법률 공포일로 돼 있다. ⓒ 전자관보

 
잘못된 '공포' 개념은 일제 잔재

'공포'라는 법률 용어가 우리 사회에서 지금처럼 '널리 알리다'의 의미로 굳어지게 된 것은 일본 방식을 그대로 적용한 데로부터 비롯됐다.

우리 헌법 제53조 제7항에는 "법률은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공포한 날로부터 20일을 경과함으로써 효력을 발생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일본의 공식령(明治40년칙령제6호)을 보면, 제11조에 "황실령, 칙령, 각령(閣令) 및 성령(省令)은 별도의 시행시기가 있는 경우 외에 공포일부터 기산하여 만 20일을 경과하면 이를 시행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나아가 우리 헌법 제130조 제3항은 "헌법개정안이 제2항의 찬성을 얻은 때에는......대통령은 즉시 이를 공포하여야 한다"라 규정되어 있는데, 일본국헌법 제96조 제2항은 "헌법 개정에 관하여 전항의 승인을 얻을 때에는 천황은......즉시 이를 공포한다"라 규정되어 있다. 일본 헌법은 1946년에 제정되었고, 우리 헌법은 1949년에 제정되었다. 뿐만이 아니라 관보에 서명일자를 명기하지 않고 관보발행일자를 표기하는 것이나 "***법률을 이에 공포한다"는 표현까지도 우리나라의 경우와 일본 방식은 동일하다.

또 일본은 천황 칙령 6호 공식령 제12조에 "법령의 공포는 관보로써 한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1946년 일본 신헌법이 시행되면서 이 공식령이 폐지되었다. 우리는 이 또한 그대로 "법률의 공포는 관보에 한다"라 하여 시행 중이다. 정작 일본에서도 사라졌지만 그대로 적용시키고 있는 상태다.

일본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인 데 반하여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경우 헌법 규정상 천황에게 법률에 대한 서명․공포 권한이 주어져있지만 현실적으로 이 권한은 총리에게 위임되면서 사실상 본래적 의미에 있어서의 '법률 공포 행위'가 실종되었고, 애매한 상황에서 공포 절차를 관보 발행으로써 대체하고 있는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가 일본의 경우와 상이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법률상 '공포' 관련 개념과 규정에 있어 아무런 검토 없이 일본의 방식을 고식적으로 관행화시켜왔던 것이 그간 우리나라에서 공포 관련 규정이 혼선을 빚게 된 주요한 원인이다.

'공포'와 '서명', '관보발행'과 '공표' 개념의 올바른 사용법

결국 '공포'라는 헌법전의 용어를 해석하고 구체화함에 있어 'promulgation'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근대시기 일본에 의하여 그 번역어로 채택된 '공포'라는 용어의 사전적 의미에만 집착해왔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잘못된 관행이 계속되어온 것이다.

다시 한 번 결론을 말하자면, 대통령의 법률 '공포'는 '서명'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고, 그 후에 별도로 '관보 게재(발행)'를 통해 '공표'되는 것이다.

[관련기사]
대통령 서명 법률안에 왜 '서명일'은 없나? http://bit.ly/2LlndY
법률공포 주체는 대통령인가 행안부 장관인가? http://bit.ly/sZ58X
#소준섭 #법률 공포 #관보게재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 #강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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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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