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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처음으로 '법률 공포' 문제에 주목하다

법률 ‘공포’ 개념을 바로잡기 위한 나의 수난 기록①

등록 2020.12.30 14:41수정 2020.12.3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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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3일 중요한 법률 개정안 하나가 발의됐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나중에 이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기존의 ‘법률 공포일=관보게재(발행)일’은 ‘법률공포일=대통령 서명일’로 바뀐다. 대통령이 법률안에 서명함으로써 ‘법률’이 확정(‘공포’)되고, 이 법률안이 관보에 게재(‘공표’)됨으로써 그 법률의 ‘효력’이 발생하는 법률체계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해외자료조사관(국제관계학 박사)의 공로가 절대적이었다. 그는 지난 2006년부터 10년이 넘도록 잘못된 ‘법률 공포’ 체계를 바로잡는 데 헌신해왔다. 그 과정에서 어이없게도 징계를 받는 등 ‘수난’을 겪어야 했다. 소준섭 전 조사관은 ‘어떻게 처음으로 법률 공포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는지’, ‘법률 공포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문제를 제기한 이후 그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세 차례에 걸쳐 증언할 예정이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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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7일 발행된 대한민국 관보. 국유재산법 시행령 개정안의 관보발행일도 7월 27일이고, 대통령의 공포일(서명일)도 7월 27일이다. ⓒ 전자관보

 
내가 '공포'라는 법률 개념에 주목하게 된 것은 2006년 무렵이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던 국회도서관의 각국 담당 조사관들에게는, 각자 담당하는 국가의 법률을 정리하면서 그 '공포일자'도 표기하는 업무가 주어져 있었다. 당시 국회도서관도 가입해 있고 국회도서관의 홈페이지에도 공식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GLIN<세계법률정보망>이라는 법률정보 사이트가 있었다.

이 GLIN<세계법률정보망> 사이트에는 각국의 법률의 '공포일자'와 '출판일자'가 표기되어 있었다. 그런데 유럽 모 국가 법률의 '공포일자'의 경우 계속 그 GLIN의 해당 국가 법률 '공포일자'와 상이하게 표기되었기 때문에, 나는 이의 시정을 요청하게 되었다. 기관에게 시정을 요청하는 만큼 철저한 정확성을 담보해야 했으므로 불철주야 연구와 조사에 몰두하게 되었다.
 

지난 9월 8일 제45회 국무회의 ⓒ 청와대 제공

 
연구조사를 위해 몇 개국 언어를 배우다

10년이 넘게 내가 연구해온 법률상 '공포(公布)'의 개념에 대한 문제 제기는 사실 한국 법조계와 법학계에서 전혀 주목되지 않은 채 '완전한 공백 상태'에 있던 분야에 대한 연구 범주였다. 특히 (뒤에 후술하겠지만) 주변이 온통 '적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 작업이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므로 이와 관련된 연구와 조사는 한 치의 오차와 한 올 터럭의 착오조차도 있어서는 안 될 중차대한 일이었고, 그래서 가장 정교해야 했고 가장 고도의 긴장과 노력이 요구됐던 상황이었다.

'공포'의 법률적 개념이 세계적으로도 처음으로 정립, 잘 정리되어 있는 프랑스를 비롯해(국회도서관 프랑스담당 조사관이었던 유현영 박사의 시종일관한 도움과 격려가 없었다면 내 작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독일의 관련 문헌을 샅샅이 연구 조사하였고, 나아가 러시아와 미국 그리고 일본과 중국의 문헌도 자세하게 살피고자 하였다. 나중에는 스페인이나 남미 국가 사례까지 조사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각국의 헌법 해설서를 비롯해 각종 문헌과 관련 법률 조문, 판례 등을 정확하게 연구 조사해야 했고, 그 때문에 초보적이나마 각국의 언어도 익혀나가야 했다. 고교 때 잠시 배웠던 독일어를 다시 학습하고, 프랑스어와 러시아어까지 조금씩 독학해나갔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고, 고도의 인내력과 집중력이 요구되었던 작업이었다.

특히 한국에서 이 법률 '공포' 개념은 아무도 연구한 적도 없고 그래서 단 한 편의 논문도 없었으며 한 편의 기고문 심지어 관련 기사가 한 줄도 없는 철저한 공백 상태의 분야였다. 그 탓에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나 혼자 연구하고 조사해야 했다(이는 2019년 김동훈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이 <법률신문>에 기고한 "법률 공포에 관한 우리의 오래된 오해" 글에서 '우리의 한 학자가 이 문제에 관해 쓴,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한 논문과 기고문'으로 나 소준섭을 언급하고 있는 데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하루하루 새로운 지식을 깨달아가고 '진리'에 접근한다는 성취감의 희열과 함께 사명감을 느꼈던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매일같이 새벽 5시면 출근해 열심히 '연구, 조사'했다.
 

소준섭 전 조사관이 지난 2017년 6월 <법률신문>에 기고한 글 ⓒ 법률신문 홈페이지

 
기고문을 쓰고, 국내외에 관련 논문을 발표하다


먼저 이 문제를 널리 알리기 위해 <법률신문>의 논단에 "서명․공포일과 관보발행일은 분리돼야"라는 제목으로 기고를 하는 등 각종 일간지와 주간지 그리고 온라인매체들에 최대한 자주 게재하고자 노력했다.

나는 이 문제가 결국 학술적 차원으로 접근해야 타당할 것으로 생각하였고, 또 직접 대한민국의 경우를 다루기보다는 먼저 우회적으로 전공 분야인 중국부터 다루기로 했다. 그 결과 몇 달 연구 끝에 중국에서 나타나는 '공포' 개념의 혼동 문제를 논술한 한양대학교 중소문제연구소에서 간행되는 <중소연구>에 "중국 법률에서의 '공포(公布)' 개념과 그 법률적 보완에 관한 고찰"이라는 논문도 발표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외대 중국연구소에도 관련 논문을 냈으나, 오히려 "'공포' 개념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 글을 썼다"는 심사자 견해로 인해 실리지 못하였다. 나는 재차 이의서를 제출했으나 끝내 게재되지 못하였다. 한국 법조계와 법학계 전체가 혼동하여 오용하고 있는 문제를 너무 시대에 앞섰고 독창적으로 제기했던 것이 원인이었으리라.

그리고 2011년에 이르러 이제 대한민국 '공포' 개념 문제를 정식 논문으로 작성해야겠다고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본격적인 논문 저술에 들어가 "각국 법률상 '공포' 개념 고찰을 통한 우리나라 '공포' 규정의 개선 방안"이라는 제목으로 국회 소속인 입법조사처의 학술지 <입법과 정책>에 제출했다. 이 논문은 엄격한 심사과정을 통과하여 2011년 7월초에 발표되었다.

심사과정에서 법학교수로 구성된 심사자들은 이 논문에 대하여 "그동안 법학계에서 주목하지 않은 분야에 대하여 외국입법례 등을 들어 개념의 재고를 촉구하는 목적으로 쓰여진 것이어서 내용이 참신하고 법률의 효력발생과 관련된 입법절차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문제에 관하여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주제를 다룬 논문이 국내에 흔하지 않아서 차후에 입법과 관련하여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사료된다" 등의 평을 하였다.

나의 논문 발표는 비단 국내 차원에만 머물지 않았다. 2011년 5월, 중국 상하이에 소재한 상하이교통대학의 학술지인 <上海交通大學學報>에 "중국 법률의 '공포' 개념과 그 법률적 결함(中國法律中的'公布'槪念及其法律性缺陷)"이라는 제목의 학술 논문을 중문으로 게재하기도 하였다.

중국 역시 일본 영향을 받아 '공포'의 법률적 개념이 혼동되어 있고, 특히 중국 사회에서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리다"라는 의미를 지닌 '공포(公布)'라는 용어는 우리의 경우보다 훨씬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 의미가 혼동되어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쓴 해당 논문은 한국과 달리 몇몇 중국 법학자들에 의해 인용이 되면서 현재까지 계속 내 논문으로 인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소준섭 전 조사관이 지난 2011년 6월 국회입법조사처의 <입법과 정책>에 발표한 논문. ⓒ 국회입법조사처

 
상식과 관행에 대한 '무모한 도전'이었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적부터 이미 "법률의 공포일은 관보발행일이다"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공포'는 곧 '관보발행'이라는 것을 아무 의심 없이 믿으면서 '상식'으로 그리고 '진리'로 생각하게 되었고 모두들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것은 증명조차 필요 없는 일종의 '공리(公理)' 차원까지 등극한 개념이었다. 그 누구도 손댈 수 없고 건드릴 수 없는 경지에 오른 진리였던 것이다.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이 문제는 도저히 성공할 수 없다며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진리'이고 '왜곡된 상식'이었다.

나의 문제 제기는 이렇듯 한국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알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기본 상식'과 '공리(公理)'로 되어버린 '공포'라는 법률 개념에 대하여 예리한 논리와 시각 그리고 각국 법률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 근거하여 제시한, '결코 평범하지 않은' 학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지극히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다.

몇 년 전, 교수 출신이 국회도서관장으로 재직하던 때였다. 내가 이 문제를 제기하자 그 도서관장은 국회도서관에서 관련 학술세미나를 개최하도록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발표를 하고 몇몇 대학의 헌법학 전공 교수들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그런데 그 교수들은 테러리즘의 '공포' 문제를 토론하는 줄 알았다고 말하는 등 아무 사전 준비도 없었고, 발표를 듣고 토론을 하면서도 시종일관 끝까지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고 심지어 관심조차 없었다. 우리 시대 학자들의 척박한 지적 풍토의 여실한 반영이었다.
 

'법률공포일=관보게재일'이 "법률성립의 절차적 하자"라는 문제를 처음 제기한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 본인제공

 
문제제기는 징계로 돌아오고, 법은 잘못 바뀌다

본래 잘못된 상식과 오랜 관행으로 인해 오용되고 있는 법률 '공포' 개념을 바로잡고자 나선 나의 문제제기는 상을 받아야 마땅할 일이었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막무가내식 관료주의의 유착 관행과 척박한 지적 풍토의 사슬에 의하여 거꾸로 징계와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들은 나의 입은 철저히 틀어막고 자신들의 귀는 닫고 눈은 감은 채 오직 나에게 "잘못을 범해 처벌을 받은 자"라는 주홍글씨 낙인을 찍기 위해 '검사동일체' 원칙을 연상시키는 '직원동일체'인양 혼연일체로 움직였다. 이러한 일련의 행태들이, 국가 입법을 관장하고 올바른 법률 개념을 특별히 중시해야 할 국회 안팎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엄중하다고 본다.

더구나 당시 나는 대한민국 법률상 '공포' 개념을 실제로 바로잡기 위해 의원실을 통해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상기한 '혼연일체의 행태'들과 잘못된 상식, 무능과 관행이 결합되어 오히려 더욱 잘못 '개악'되고 말았다.

개정 이전에는 "대통령이 서명한 후 대통령인을 날인하고 그 일자를 명기하여 국무총리와 각 국무위원이 부서한다"로 규정되어 있었으나, 여기에서 '그 일자'가 '그 공포일'로 개정됨으로써 대통령이 법률에 서명한 후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행위인 공포"의 일자를 미리 명기한다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법률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의원실에서 제안자인 내 의견은 믿지 않고 관행에만 젖어있던 법제처의 견해를 받아들여 추진했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한국 사회의 오랜 관행과 철통같은 상식, 무능 그리고 관료주의에 '무모하게' 맞선 나의 도전의 결과는 고스란히 수없이 많은 시련과 상처로 내게 돌아왔다. 이 과정은 실로 오늘 현실의 모습이 역설적으로 너무도 정확하게 투영된 한 편의 다큐멘터리다.

갈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할지라도, 결코 쓰러지지 않고 기필코 나아가야 할 참된 '진리'와 '올바름'의 목표지점이 나에겐 있었다.

[관련기사]
대통령 서명 법률안에 왜 '서명일'은 없나? http://bit.ly/2LlndY
법률공포 주체는 대통령인가 행안부 장관인가? http://bit.ly/sZ58X
#소준섭 #법률 공포 #관보게재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 #강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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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학 박사, 국회도서관 조사관으로 근무하였고, 그간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해왔다. <이상한 영어 사전>, <변이 국회의원의 탄생>, <논어>, <도덕경>, <광주백서>, <사마천 사기 56>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의 심각한 기후위기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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