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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키다리 아저씨, 자신과의 약속 지킨 마지막 기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5000여만원 기부... 10회 걸쳐 10억3500여만원 익명 기부

등록 2020.12.24 09:15수정 2020.12.24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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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키다리 아저씨가 자신과의 약속을 마무리하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직원에게 5000여만 원의 수표와 메모지를 건넸다. ⓒ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난 2012년부터 익명으로 기부해 온 '대구 키다리 아저씨'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10년간의 나눔을 마무리했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지난 22일 키다리 아저씨로부터 "시간 되면 저녁 한 끼 같이 하자"는 전화가 걸려왔다.

키다리 아저씨는 공동모금회 인근 한 식당에서 모금회 직원을 만나 5000여만 원의 수표와 메모를 넣은 봉투를 건넸다.

그가 쓴 메모에는 "저도 이번으로 익명기부는 그만둘까 합니다. 저와의 약속 10년이 되었군요"라며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또 "나누는 즐거움과 행복함을 많이 느끼고 배우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적었다.

키다리 아저씨는 자신이 기부를 하게 된 사연도 설명했다. 경북에서 태어나 1960년대 학업을 위해 대구로 왔지만 부친을 여의고 일찍 가장이 돼 가족을 돌보기 위해 직장을 다닐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혼 후 3평(약 10㎡)도 안 되는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지만 키다리 아저씨 부부는 근검절약하며 수익의 3분의 1을 소외된 이웃들에게 나누는 삶을 살아왔다고 말했다.

이후 작은 회사를 경영하면서 지난 2012년 1월 공동모금회에 1억 원을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매년 1억 원 안팎의 거액을 기부해 왔다.


키다리 아저씨는 위기를 겪을 때마다 기부를 중단하자는 직원의 권유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수익의 일부를 떼어놓고 "이 돈은 내 돈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나눔을 이어왔다.

같은 해 12월 1억2000만 원을 다시 기부하자 공동모금회 직원들은 '키다리 아저씨'로 부르기 시작했고 이후 2018년까지 매년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익명으로 기부금을 건넸다.

작년 12월에는 2000여만 원을 전달하며 "나누다 보니 적어서 미안하다"는 메모를 전했고 올해 5000만 원을 기부하면서 자신과 스스로 한 약속을 마무리한 것이다.

키다리 아저씨가 그동안 기부한 금액은 모두 10회에 걸쳐 10억3500여만 원에 이른다.

그의 부인은 "첫 번째와 두 번째 기부할 때는 남편이 키다리 아저씨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며 "어느 날 신문에 난 필체를 보고 남편이라는 것을 짐작해 물어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키다리 아저씨는 "나 혼자 노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면서 "더 많은 키다리 아저씨가 탄생해 함께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는 말을 남겼다.

공동모금회 관계자는 "자녀들도 자신의 아버지가 키다리 아저씨임을 다 알고 있고 자녀와 손주까지도 일상생활 속에서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고 전했다.

이희정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처장은 "오랜 시간 따뜻한 나눔을 실천해 주신 키다리 아저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보내주신 소중한 성금을 기부자님의 뜻에 따라 꼭 필요한 곳에 늦지 않게 전달해 시민 모두가 행복한 대구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키다리 아저씨 #기부 #익명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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