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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학교에서 온 알림톡, 날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온라인으로 초등학교 마지막 수업을 하게 된 아이... 우린 '상실'을 경험하고 있다

등록 2020.12.23 19:54수정 2020.12.23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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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 pixabay

 
미처 몰랐다. 이렇게 갑작스레 마지막이 찾아올 줄은.


통보를 받은 것은 정확히 12월 22일 오후 4시 32분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이는 이날 등교를 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했다. 오전엔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수업을 했고, 오후엔 학교에서 제공한 동영상을 보고 과제를 제출하며 학교 시간표대로 하루를 보냈다. 학교 가는 기분을 낸다며 점심 시간을 우리끼리 '급식 시간'이라 부르며 지낸 날이었다.

수업을 마친 아이는 다음 날 학교에서 있을 '천사놀이' 선물에 넣을 카드를 정성스레 쓰고 있었다(아이의 학교에서는 매년 12월 한 달 동안 한 친구의 비밀 천사가 되어 몰래 돕다, 크리스마스 전에 작은 선물을 교환하는 '천사놀이'를 해왔다). 그때였다. 학교에서 알림톡이 왔다.

"12월 28일부터 2021년 2월 9일까지 전교생 원격수업을 실시합니다."

직전까지만 해도 겨울방학 전 아이의 등교 날짜는 12월 23일, 2021년 1월 4일이었다. 1월 8일부터 3주간 겨울방학을 하니 개학 후엔 상황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도 하고 있었다. 겨울방학을 마친 2월 초 단 며칠이라도 학교에 정상적으로 등교해 친구들과 초등학교 생활을 잘 마무리하길, 6년간 함께 했던 선생님들과도 진한 인사를 나눌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통보하듯 날아든 문자는 이런 희망마저 꺾어버렸다.

아이의 졸업식이 2월 9일로 예정되어 있었으니 알림톡의 내용대로라면 졸업식마저 실제로 거행하기 힘들다는 것 같았다. 12월 23일이 아이의 마지막 등교일인 셈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아이는 마지막 등교일을 맞고 말았다. 


사라진 일상은 왜 이렇게 애틋할까 

나는 아이에게 알림톡 내용을 이야기해주었다. 아이는 "코로나 상황인데 어쩔 수 없지" 하더니 컴퓨터를 켜 학급밴드의 알림장을 확인했다. "선생님도 내일이 등교 마지막 날이라고 보조가방 가져와서 짐 다 싸가라고 올리셨어"하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태연한 아이의 모습에 내 마음은 더 먹먹하기만 했다. 마음을 달래고자 6년을 함께 해온 학부모들의 단톡방에 들어가 봤다. 단톡방엔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우리 애는 소식 듣자마자 급 우울해졌어요. 친구들하고 진짜 내일이 마지막이냐고."
"너무 갑작스럽게 이별이네요."
"지금 우리 OO이는 울먹울먹해요."
"애들 너무 짠해요."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닌 듯해 위안이 되면서도 눈물이 핑 돌았다. 돌아보면 그랬다. 올 한 해 우리는 '상실'을 배웠다. 매일 보며 함께 식사를 하던 직장 동료들을 만나지 못했고, 가족 행사 때마다 번거롭다 하면서도 반가운 마음으로 마주했던 친척들을 만난 지도 오래다.

작은 내 방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홀로 업무를 처리하는 시간의 지루함과 고립감에 비하면 지긋지긋했던 출퇴근 시간의 러시아워는 답답한 것도 아니었던 듯싶다. 사라진 일상은 왜 이리 애틋하게만 느껴지는지. 
  

아이는 더이상 초등학교에 갈 수 없게 됐다. ⓒ 송주연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2월 말 대구를 덮친 코로나 바이러스로 갑작스레 개학이 연기됐고, 새로운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의 이름을 온라인 공지를 통해 알았다. 담임선생님과는 전화통화로 인사를 나누었고, 새 친구들의 얼굴을 본 건 그로부터도 한 달 뒤. 그것도 온라인을 통해서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한동안 아이는 편안해 하는 것도 같았다. 모처럼 여유로운 아침 일상에 아이가 자유로워보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딱 한 달을 보낸 지난 3월 말. 아이는 대뜸 이렇게 말했었다.

"엄마. 이제 진짜 학교 가고 싶다. 집에만 있으니까 뭘 해도 재미가 없고 학원에라도 좀 갔으면 좋겠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학교 가는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알겠네."

잃고 나면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말을 아이도 실감하고 있었다.

그렇게 간절히 빌었건만 

그 후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잠시 수그러들자 아이는 학교에 갔다. 여름방학 무렵 이 곳 대구의 코로나는 상당히 잠잠해졌고, 학교에서 급식도 먹고 올 만큼 아이들의 생활이 조금씩 정상화되고 있었다. 그러자 스멀스멀 기대감이 올라왔다.

"다른 6학년 형들이 했듯이, 우리도 졸업여행도 갈 수 있지 않을까?"
"학교 오케스트라 하는 친구들은 연주 연습하던데 이대로 가면 연주회도 할 수 있겠지? 그 친구들은 진짜 오래 준비해왔는데 안 하면 너무 아쉽잖아."


아이들의 이런 대화가 귀에 들어올 때마다 간절히 기도했었다. 제발 이대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수그러들어서 초등학교 마무리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이다.

여름과 가을 사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2차 유행이 있었을 때도 대구는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확진자 0명을 찍은 날도 많았고, 그럴 때마다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그 때만 해도 오케스트라를 하는 친구는 12월에 연주회 날짜를 잡았다며 기뻐했고, 아이는 꼭 가서 응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3차 대유행이 닥치고야 말았다. 바이러스는 다시 이곳 대구도 야금야금 침범해 들어왔다. 명실상부한 겨울 날씨가 되면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세력을 더욱 확대했다. 아이들의 기대에 찬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학교 측에선 현장학습을 비롯해 잡아 놓았던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오랫동안 연습한 오케스트라 동아리 친구들의 연주도 무관중으로 진행됐다. 친구들은 텅 빈 관중석을 앞에 두고 연주를 했고, 우리는 동영상으로 연주를 보며 응원 메시지를 남겼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일주일에 두 번이라도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거였다. 아이는 집에만 있으면 소화도 잘 안되고 답답한데 학교 가는 날은 밥도 맛있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이마저도 끝이 났다. 아이는 23일 아침 "이제 학교 교실에서 친구들 만나는 것도 내 책상에 앉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네"라며 가방을 메고 손에는 친구에게 줄 선물을 들고 학교에 갔다.

초등학생으로서 등교하는 마지막 아이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짠하게 느껴졌다. 아이는 친구들과 어떤 대화를 했을까? 아니 대화도 거의 못 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눈길을 주고 받았을까?

어쩌면 몇 번 만나보지도 못한 채 헤어진 초등학교 6학년 친구들이지만, 이 지독한 코로나 바이러스와 상실을 함께 겪어낸 동지들이기에 더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지 않을까. 아이들이 "그 때 말이야~" 하면서 즐겁게 추억하는 날이 빨리 올 수 있기를 마음 다해 바라본다.

부디 아이들이 이 갑작스런 이별을 잘 견뎌내길! 마지막 등교를 이미 마친, 아니면 곧 마지막 등교를 하게 될 모든 졸업하는 아이들을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코로나19 #등교중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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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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