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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숙 "너절한 연애는 진실... 50대 지도층이 외면"

[교제살인 - 그 후 ①] 교제폭력 피해자 보호하는 가정폭력 처벌법 개정안 대표 발의

등록 2020.12.22 16:42수정 2020.12.2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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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교제살인 기획을 통해 최소한 열흘에 한 명이 교제 상대에게 죽음을 당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이 비극적인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입법·사법·행정 각 분야에 걸쳐 대안을 제시합니다. 물론 정답은 아닐 수 있습니다. 의미있는 변화와 마주하는 그 순간까지 보도를 이어나가려고 합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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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남소연


"누울 자리 보고 발 뻗는다, 이게 정답입니다. 여성이 보호되지 않는 다양한 논리가 있으니 교제폭력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겁니다. 해도 되니까 하는 거죠. 성차별이 심한 사회일수록 잔혹한 범죄가 일어나는 게 자명하죠."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교제폭력 신고가 증가추세인 것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경찰청 집계 교제폭력 신고 건수는 2019년 1만 9940건으로 2017년 1만 4136건보다 41.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제폭력을 '해도 되는' 사회에서는 교제살인 역시 빈번히 발생한다. <오마이뉴스>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발생한 '교제살인' 판결문을 분석해, 3년 동안 적어도 108명의 여성이 교제살인으로 살해당했다는 기획 보도를 내놓은 바 있다.

권 의원은 "폭력적인 연애를 한다는 걸 보통 이해를 못 한다,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연애 관계에서는 상대가 밥을 몇 번 사줬다, 이런 게 다 참아야 하는 이유와 명분이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결혼으로 얽히지 않아도 결혼 이상의 모습을 띨 수 있다, 가스라이팅에 자존감 무너트리기, 경제력과 힘의 차이, 임신, 낙태까지 겹치면 더 정신 차리기 힘든 교제관계에 얽히게 된다"라며 "관계 속 집착·지배를 헤쳐 나오기 너무나 힘들다는 걸 사회가 이해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교제폭력·교제살인은 사회적 의제로 대응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권 의원은 가정폭력 처벌법이 보호하는 '가정구성원'에 '교제 관계에 있는 자' 문구를 추가하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교제폭력도 가정폭력처럼 거주지 접근금지·정보통신망을 활용한 접근금지(임시조치) 등이 가능해진다.

권 의원은 "가정폭력 처벌법을 통해 가정구성원을 보호할 수 있는데 교제폭력은 보호의 예외에 놓여있다"라며 "'친밀한 관계' 내 폭력도 보호할 수 있게끔 개정안을 마련했다"라고 설명했다. 권 의원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기 때문에 교제폭력을 대하는 경찰의 대응 방식도 바뀔 거"라고 내다봤다.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이 사회가 교제폭력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첫걸음이 되는 셈이다.

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권 의원을 만났다.


여성폭력 컨트롤타워 역할 '지자체'에게... "관련 법 검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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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남소연


권 의원은 교제폭력이 발생한 그 후에 대한 고민도 함께 했다. <오마이뉴스>는 권 의원에게 교제폭력으로 경찰 수사·검찰 기소·재판 등이 이뤄져 공권력이 위험을 인지한 경우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권 의원은 "피해가 발생하면 누가 체크하냐 '그 후'에 대한 이야기다, 그걸 명확히 하기 위한 방안"이라며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으로 의미 있는 발전이 될 수 있다"라고 평했다.

지자체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 4조에 '지자체는 여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지원 등을 위해 필요한 종합적인 시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그 책무를 다 할 수 있도록 명확한 역할을 부여하자는 제안이다.

이는 미국 '둘루스 모델'의 국내 적용을 위한 단초이기도 하다. 둘루스 모델은 경찰과 시민단체, 법률·의료 사회서비스 기관, 검찰, 법원 등 관계 기관이 서로 유기적으로 협업하도록 설계된 가정 폭력 개입 프로그램을 말한다. 가정폭력에 개입한 경찰이 작성한 보고서는 관계 기관과 공유된다. 관계 기관을 연결해주고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DAIP(Domestic Abuse Intervention Programs, 다이프, 가정폭력 개입 프로그램)는 8년 동안 가해자 관련 정보를 추적·관리한다.

둘루스 모델을 적용한 지역 내 가정폭력 가해자의 68%는 8년간 재범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내 교제폭력 재범률은 76.5%(2005~2014년, 치안정책연구소)에 달한다.

이 모델을 국내에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여성폭력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경찰은 여성 폭력 발생 시 이를 지자체에 고지하도록 해야 한다. 권 의원은 "경찰이 피해·가해 정보를 지자체에 넘겨주게 해서 '정보 교류' 프로세스를 만들기 위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 개정을 고민해 보겠다"라고 말했다. 이미 아동학대는 지자체와 경찰 간의 정보 교류 체계가 마련돼 있다.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지자체는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경찰서장에 자료를 요청할 수 있고 경찰은 아동학대 의심 사유가 있을 때 지자체에 통보하도록 돼있다.

이에 착안해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을 개정하는 것에 대해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권 의원은 "가해자를 어느 정도까지 지속적으로 감시할 수 있을지, 피해자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더 고민해 보겠다"라고 말했다.

"교제폭력 해결하려면 '너절한 연애' 직시해야"
    
인터뷰 도중 권 의원은 2014년 뉴욕 방문 당시를 떠올렸다. 

"미국은 친밀한 관계 폭력, 여성 폭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성폭력이 그 논의 안에 다뤄집니다. 성폭력에 대한 접근부터 이뤄지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다르죠. 친밀한 관계의 폭력에 대응하는 것이 삶의 더 근원적 요소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저지르는 폭력에 대해 사회적 지원이 폭넓고 깊게 들어가지 않으면 이 모든 문제들이 절대 해결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 의원은 미국과 우리의 이 같은 차이가 "사회적 의제를 결정하는 50대의 사람들이 '관계'의 진실을 외면하기에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구는 연애를 삶의 일부로 생각해 이로 인해 경험하게 되는 마약·섹스·임신·폭력·알코올 등 전반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서 "반면 우리는 '20대 내 딸이 연애는 해야하지만, 가방에서 콘돔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연애가 결혼과 비등하게 복잡함이 얽혀있는 관계라는 걸 직시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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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남소연

 
그는 "사회적 의제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외면하니 아이들에게도 적절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는다, 이런 게 20대 중후반까지 이어진다"면서 "그러다 보니 젊은 사람들조차 너절한 연애, 교제폭력 등의 현실을 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생긴 거 같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권 의원은 "여전히 순결 이데올로기가 강하고 이런 관점의 한계가 현실을 가리는 가림막이 될 수 있다"라며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순진한 피해자'를 탐하는데 교제폭력도 마찬가지다, 성과 연관 있는 문제는 깊게 보려 하지 않기 때문에 외면돼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권 의원은 "데이트를 '분홍빛 사랑'으로만 바라보는 시선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교제를 낭만화만 할 게 아니라, 연애로 겪게 되는 다양한 피해와 어려움, 감당하지 못할 것들이 많음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절한 연애를 제대로 직시해야 적절한 대응과 보호체계가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관계의 진실을 외면하면 교제폭력은 늘어날 수밖에 없죠.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문제로 우리 사회가 싸안고 감당해야 합니다. <오마이뉴스> 교제살인 기획은 여성 폭력 대응의 비어있는 부분, 우리가 문제로 바라보려 하지 않은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입니다. 108명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현실입니다."

사회적 의제를 설정할 수 있는 50대로서, 권 의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난리 법석을 떠는 것"이라고 했다.

"교제폭력은 당사자들이 정체성을 갖기 어려운 문제라 나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언론의 적극적인 문제 제기가 있어야 할 테고, 저는 가정폭력 처벌법 등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을 열심히 설득하는 수밖에 없죠.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는 명분에 동의하지 않기 쉽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설득에 노력을 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권 의원은 "법안이 통과된다면, 가정폭력 대응이 훨씬 진보할 것"이라며 "교제폭력부터 엄격히 다루다 보면 가정폭력은 어찌 됐건 그 기준보다 상위에서 처리될 거다, 사회적 논의의 수준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가정폭력 처벌법 개정안, 여성폭력방지기본법 개정안 통과가 우리 사회가 여성폭력을 더 폭넓고 더 깊게 다루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독립편집부 이음 : 이주연 기자, 이정환 기자
☞ <오마이뉴스> 교제살인 기획 다시 보기 클릭!
#권인숙 #교제폭력 #교제살인 #가정폭력처벌법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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