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TV를 볼 때 자꾸 '재방이냐?'고 묻는 이유

등록 2020.12.17 09:32수정 2020.12.1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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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서는 조용히 각자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매너지만, 집에서 TV를 볼 때는 다르다.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는 큰소리로 깔깔거리고, 드라마를 볼 때면 악역에게 욕을 하기도 한다. 함께 보는 가족과 어떤 상황인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감정은 더욱 커지고 몰입하게 된다.

하지만 부모님과 TV를 함께 보는 것은 뭔가 불편할 때가 종종 있다. 함께 보기 부끄럽고 민망한 장면뿐만이 아니다. 부모님은 언제부터인가 질문이 많아지셨다.

"쟤는 누구니? 뭐 하는 애야? 이름이 뭐야? 그때 거기 나왔던 걔 아니니?"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볼 때면, 혹은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와서 열심히 보고 있을 때면 솔직히 귀찮다. 그런 질문들은 나의 집중력을 방해하고 재미를 반감시킨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엄마의 질문에 새로운 것이 추가되었다.

"지금 하는 거니?" 
"어?"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었다.

"본방이야, 재방이야?"

자주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아니고서야 지금이 본방인지 바로 판단하기 어렵지만, 보통 리모컨 한두 번 눌러보면 현재 방영되는 프로그램 정보를 알 수 있다. 이를 확인한 후 (재)라고 뜨면, 엄마에게 "재방송이네"라고 답을 한다.

하지만 가끔은 헷갈린다. 분명 지금이 본방 시간이 아닌 것 같은데 (재)라는 표기가 없고, 심지어 화면 한 구석에 본방이라고 떡하니 보일 때도 있다. 아마 그 채널에서는 처음으로 방영하는 본방이라는 뜻이겠거니 추측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조금은 번거롭다. 금방 정보를 얻으면 쉽게 답할 수 있지만 가끔은 나조차도 모르겠기에 이럴 때면 더 말이 뾰족하게 나간다. "잘 모르겠어"란 말에 뾰로통함을 한껏 담아서 말이다.

며칠 전에 엄마는 또 물었다.

"이거 본방이야?'

직장에서 안 좋은 일로 스트레스를 한껏 받았던 나는 약간 화를 내듯 물어봤다.

"왜? 그게 중요해? 엄마는 왜 그걸 매번 물어봐?"

그제야 나는 엄마의 질문에 담긴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엄마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아……. 연예인들 입은 옷이나 패션 스타일 보면서 요즘 저런 게 유행이구나 알 수 있고, 드라마 속 인테리어 보면서 트렌드도 읽을 수 있고, TV보면서 이것저것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잖아."

맙소사! 머리가 띵했다. 아차 싶었다. 나는 그것이 집이든 아니든, 꾸미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TV를 볼 때는 그저 스토리만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본방인지 재방인지는 전혀 의미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보고 또 보고 반복했고, 그렇기에 내가 예전에 봤던 것은 재방인가보다 하는 정도이지 그것이 언제 만들고 언제 방영되었던 프로그램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른 것은 말하면 입 아플 만큼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태어난 후 모든 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해 온 엄마에 대해 이렇게 모르고 있었다.

가끔은 다른 누구보다 엄마에 대해 모른다고 느낄 때가 있다. 엄마를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내 엄마로만 보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로서 나에게 맞춰주고 내 위주로 할 수 있게 배려해주신 것만 당연시하고, 엄마에게도 취향이 있고 호불호가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앞으로는 좀 더 열심히, 친절하고 부드럽게 엄마에게 답하고 싶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래서 대화를 해야 한다고, 대화가 필요하다고. 다만 그 대화의 시작이 "대체 왜 본방 재방을 물어보냐?"는 내 짜증 섞인 물음이라는 것이 부끄럽지만 말이다.

부모님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지 자식들은 잘 모른다.
사춘기 아이들 마냥 엄마는 왜 내 마음을 모르냐고 언제까지 투덜대기만 할 수는 없다.

엄마의 질문 하나하나가 사소한 것이라고 미리 단정 짓지 말자. TV프로그램은 언제든지 다시보기 할 수 있지만, 부모님과의 시간은 생각만큼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TV #엄마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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