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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신문사 주최도 아닌 문학상... 곧 마감입니다

[동네가 세상을 바꾼다] 배움과 창작의 공간, 전주 동네책방 '서점 카프카'

등록 2020.12.06 12:09수정 2020.12.06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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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일지도 몰라.' 5년 전, 허름한 건물에서 'KAFKA'라는 간판을 발견했을 때 그렇게 생각했다.

전주 객사와 남부시장의 중간 지점쯤 되는 허름한 골목,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얼굴이 그려진 밝은 등이 빛나고 있었다. 그냥 카페가 아닌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2층으로 올라가 카프카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색색의 나무판자를 이어붙인 독특한 인테리어에 홀딱 반했다.
 

서점 카프카로 올라가는 문 한옥마을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올해 복원을 마친 전라감영 앞. 식당, 액자점이 이어지는 낡은 건물이다. 2층으로 올라가면 카프카가 있다. ⓒ 김나라

 
'아직 내 촉이 쓸 만하구나' 생각했던 것은 벽에 붙은 안내문을 본 다음이다. '소리 내어 시 읽기 모임'이라는 문구. 여러 읽기와 쓰기 모임에서 함께할 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카프카는 조금 특별한 공간이었다. 그 후로 나도 이 책방 모임에 참여하게 될 만큼. 


책방지기 강성훈 소설가는 '35살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도서관에 다니며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35살인 2013년에 오래된 건물의 한 공간을 얻어 '북카페 카프카'를 열었다. 좁지 않은 내부에 책이 가득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목소리를 낮추기로 약속된 '본격 북카페'였다.

2016년 겨울 카프카는 서점을 겸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고, 2017년에 문학서적을 주로 다루는 '서점 카프카'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현재는 판매용 책을 둔 곳이 내부의 반 정도를 차지하고, 공간을 나누어 따로 헌 책도 두고 있다.

2014년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동네책방이 크게 늘었지만 '서점 카프카'의 정체성은 분명하다. 지난 11월 26일, 강성훈 대표를 만나 서점 카프카만이 가진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책을 보러 왔다가 사람을 읽게 되는 곳
  

서점 카프카의 내부 서점이 된 지금은 책이 잘 보이도록 인테리어가 많이 바뀌었다 ⓒ 김나라

   
- '서점 카프카'는 어떤 곳인가요?
"책과 음료를 파는 공간이고요, 다양한 모임이 있는 곳이죠. 지금은 읽기 모임 5개, 비건레시피공유회, 시 읽기 모임까지 해서 7개네요. 한 달에 한 번 하는 것도 있고 격주로 하는 것도 있는데, 대부분 1년이 넘었어요. 조금씩 읽되 꾸준히 한다는 개념이에요."

- 그 외에도 대관 행사, 수제품 장터 등 정말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문화공간으로서 카프카는 어떤 것을 지향하는지요?
"저희 책방 모임은 책을 읽고 감상을 얘기하는 것보다 '지식을 공유하는 모임'이 됐으면 좋겠어요. 오시는 분들과 '공감'하는 책방은 참 많아요. 저희 책방의 역할은, 오시는 분들이 같이 공부를 하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좀 더 많은 책들을 더 깊게 읽을 수 있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창작 모임인데, 이 공간이 '창작의 공간'이었으면 해요. 여기서 단편소설 쓰기 모임을 하신 분이 신춘문예에 등단하시기도 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올해는 많은 모임들이 불안정했지만 이렇게 1년, 2년 넘게 꾸준히 하는 모임이 카프카를 만들어가는 정체성이라고 생각해요."
 

자본론 읽기 모임 서점 카프카의 읽기 모임 중 하나. 더 깊게 알고 지식을 공유하기 위한 모임이다. ⓒ 김나라

    
- 사람들과 함께 배우고 함께 창작하는 일이 작가님께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나요?
"같이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혼자 공부하고 사유할 때보다 함께 할 때 배움이 더 깊어지고 폭 넓어지는 경험을 해서인 것 같아요. 그리고 함께하는 불편함이 제 안에 갇히지 않게 저를 계속 일깨우는 것 같아요.

카프카는 모임에 큰 영향을 받고 있어요. 책 읽기 모임 중에 "우리 이거 하는데 니체를 좀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해서 니체 읽기 모임이 생기고, 니체를 읽으면서 또 프로이트를 읽게 되는 형태거든요.

제 관심사도 그분들을 통해서 많이 달라져서, 책을 갖다 놓을 때 '안 팔리면 나중에 내가 읽지' 하면서 책도 더 다양해져요. 카프카의 방향은 여기 오시는 분들과 저의 관계에서 대부분 만들어지고, 저는 그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속적인 관계와 경험이 남는 공간이었으면

- 참여하셨던 행사나 활동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면요?
"작년에 했던 '첫 독자가 되어 주세요' 행사의 경우는 제가 기획해서 사람들을 모집하고, 전주에서 등단한 작가들과 동네 독자들을 연결해 주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사람들을 모아서 강연하고 파티도 하는 형식이었는데, 그건 정말 재밌게 했던 것 같아요.

기관과 같이 하는 행사들은 지원금이 있어서 풍성하게 개최할 수는 있지만, 다음 사업 시작점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연계가 잘 되지 않고, 오시는 분들하고 관계 형성도 잘 안 돼요. 그래서 지금 하는 모임들이 제일 좋아요. 모임이 7개가 되다 보니까 모든 모임을 다 참여하는 분은 한 달에 7번을 보는 거잖아요. 모임 시작 때부터 같이 하신 분은 6년 정도 서로 본 것 같아요. '찐단골'이고 많이 친해졌죠."
 

제1회 동네책방문학상 전주의 7개 책방이 함께 주최하고 심사하는 문학상. 응모작은 12월 10일까지 이메일로 접수받으며, 거주 지역에 관계없이 응모 가능하다. ⓒ 김나라

 
- 12월 10일까지 열리는 '동네책방문학상'은 올해가 제1회인데요, 기획하게 된 배경이나 취지가 궁금해요.
"처음에는 4개 책방 주인들이 모여서 '시나 도서관 사업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끼리 재밌는 걸 해 보자' 하고 의기투합했어요. 그리고 올해 초에 '전주 동네책방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7개 책방이 참여하게 됐어요. 4개 책방이 예심을 하고 다 같이 심사해요. 책방들이 '서점 카프카 상' '책방 토닥토닥 상'처럼 각 책방 이름으로 상을 하나씩 주는 거예요. 그 외에 1편을 대상으로 뽑으니 총 8편을 뽑는 거죠.

보통 문학상은 출판사나 신문사를 끼고 하는데, 저희는 서점하고 작가, 독자만 놓고 하는 거예요. 아직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텀블벅(예술, 문화 컨텐츠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을 이용해서 책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 전주라는 소도시의 동네책방 주인으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책방은 하향 산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이 안에서 뭔가 계속 이루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판매 장소보다는 서로 공유하고 접촉하는 공간이 됐으면 해요. 사람들하고 같이 책 사러 와서 사람 만나고 차 마시고, 이런 경험들은 온라인으로는 얻을 수 없으니까요. 오프라인에는 사람을 형성하는 뭔가 아주 중요한 게 있어요. 이 공간이 그런 부분을 채워주는 공간이었으면 좋겠고, 모임들을 계속 만들어나가는 게 여기가 살아남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어요."
  
시 항아리에서 꺼내보는 몇 줄의 마음
 

시 필사 테이블 꽂혀 있는 시집을 읽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눈에 띄면 종이에 적어서 오른편의 시 항아리에 담아둔다. 유리항아리에 든 쪽지 중 하나를 펴 본다. 손글씨가 펼쳐진다. 카프카에 방문한 누군가가 공유하기 위해 적어둔 시구이다. ⓒ 김나라

 
카프카에 가면 '시 항아리'가 있다. 시집 책장에서 시집을 꺼내 읽다가 마음이 가는 구절이 있으면 쪽지에 적고, 다른 사람을 위해 항아리에 넣어두는 것이다. 서로 얼굴도 모르는 방문객들이 시를 느끼는 마음을 나누도록 배려한 책방지기의 수완이 신선하고 따뜻하다.

나무 바닥이 삐걱대는 소리와 지나치게 밝지 않은 채광, 신중히 선곡한 조용하고 감각적인 음악. '공간만이 주는 경험'이 마음껏 몽상에 잠기고 싶은 방문자에게 바깥과는 다른 세계에 있다는 암시를 건다. 카프카는 서점, 카페, 복합문화공간인 동시에 사람들이 각자의 예술을 만들어가는 곳이다.

코로나19 시대는 우리에게 우리 주변의 가치, 지역성에 눈 돌릴 것을 요구한다. 수도권이나 대도시에 살아야 문화예술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는 생각도 서서히 낡은 것이 되었으면 한다.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과 즐기는 사람의 소통도 가까운 곳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을 되새겨 본다. '첫 독자가 되어주세요', '동네책방문학상' 등을 기획해 나가는 서점 카프카의 시도들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동네책방 #독립서점 #전주 #서점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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