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백마탄 왕자-예쁜 여자... 1930년대 로맨틱코미디엔 없었다

[리뷰] 영화 <로맨틱 코미디> 로맨틱 코미디 장르 팬을 위한 바이블

20.12.01 15:09최종업데이트20.12.01 15:09
원고료로 응원

영화 <로맨틱 코미디> 포스터 ⓒ (주)안다미로

 
로맨틱 코미디는 언제나 행복하고 사랑스럽다. 기분이 울적해질 때 찾아보는 나만의 천연 처방제로 탁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태어났지만 유년 시절부터 할리우드 중심의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시청해왔다. 사실 선택지가 별로 없었고, 자연스럽게 로코(이하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익숙해졌다. 밝고 경쾌한 분위기와 감동의 클리셰를 사랑했다. 언젠가 나도 영화 속 주인공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괜한 상상에 빠지게 되었다. 로코가 곧 사랑의 정체성이 된 것이다. 중심 서사를 따라 사랑이란 원래 쉽지 않기에 고난을 극복하고 단단해진다는 것을 믿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로맨틱 코미디>를 관람하며 두 가지를 확인했다.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오직 영화 속에서만 일어난다는 것, 그리고 백인 중산층 이성애 중심의 이야기만 봐온 '로코 편식자'라는 것을 말이다.
 
영화 <로맨틱 코미디>는 사랑이란 형태와 모양이 다양하지만 오로지 한 가지 방식만이 전부라 믿어온 사람들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준다. 가히 로코 백과사전이라 할만하다. 장르가 생겨난 이후 할리우드에서 이 장르가 유행하고 변주되었는지 정리해 주는 다큐멘터리다. 거기에 스스로 로코 덕후인 감독 엘리자베스 샌키의 취향도 한껏 반영되어 있다. 어느 날 로코를 N차 관람하던 중 분명 같은 영화인데 다른 느낌을 받은 자신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좋아하는 로코 100여 편을 재관람하고, 다양한 직종의 친구들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다양성을 주제로 로코 탐험을 시작했다. 그 결과 편협한 생각의 틀을 깨주고, 우리가 사랑했던 로맨틱 코미디를 한 번에 섭렵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탄생한 것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결말은 항상 '결혼'
  

영화 <로맨틱 코미디> 스틸컷 ⓒ (주)안다미로

 
'로코'에서는 항상 여성이 꽃이고 남성은 그저 들러리일 뿐이다. 여성 주인공은 태생부터 완벽하지 않다. 많이 먹어도 살찌지 않는 체형이거나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남성을 만나 드디어 완벽해지는데, 그 과정은 언제나 코미디다. 전문직 여성도 남성 앞에선 우당탕탕, 그래도 백마 탄 왕자님이 구원한다. 실수하지 않는 강하고 지적인 여성들은 두려움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마녀, 악녀가 대표적이다.
 
왜 이러한 여성 캐릭터가 사랑받은 걸까. 이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의 권력자 때문이다. 카메라 뒤 권력을 쥔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관을 여과 없이 따르는 것이다. 1930년대 여성 캐릭터는 당당했다. 로절린드 러셀, 캐서린 헵번 등의 진취적인 캐릭터가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변모하게 된다. 남성은 전쟁이 나가고 여성은 가족과 집안일을 하며 하염없이 기다린다. 이런 시대상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있었다.
 
따라서 여성은 항상 사랑 표현과 욕구에 수동적이다. 남성이 먼저 대시할 때까지 기다린다. 성적 만족감은 절대로 드러내서는 안 되는 금기다. 여성의 행복은 남성을 통해서만 채워진다는 고정관념이 지배하고 이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반면 남성은 공격적이고 집요한 성향을 보이며, 막무가내로 열과 성을 다한다. 남성은 사랑도 일도 뭐든 밀어붙이면 된다는 생각이 커진다.

선녀의 옷을 훔치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믿는 나무꾼이 많았다. 이런 경향은 2000년대 초반까지도 이어졌는데 최근에서야 전형성을 벗어난 로코가 등장하게 되었다. 아시아인의 사랑을 다룬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이나 배우 쿠마일 난지아니의 실화를 다룬 <빅 식> 사랑에 빠진 인간애를 다룬 <신의 나라>를 대표적으로 소개한다.
  

영화 <로맨틱 코미디> 스틸컷 ⓒ (주)안다미로

 
영화 <로맨틱 코미디>는 로코를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다.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하듯 연애나 자기 표현에 솔직한 여성, 일도 사랑도 관계도 열심히 하는 여성 캐릭터를 기대하는 애정이 반영되어 있다. 또한, 피부색, 성별, 취향에 매몰되지 않는 로코가 많아지길 바란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누구나 사랑받길 원하는 욕망을 반영한다면 로맨틱 코미디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랑받을 것이다.
 
그동안 판타지란 미명 아래 많은 여성이 현실성 없는 연애, 결혼을 꿈꿨는가. 로코의 결말은 언제나 결혼이다. 영화는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지만, 현실에는 얼마 못 가 이혼하는 일도 잦다. 어디까지나 연애와 결혼은 다른 장르임을 잊고 의견이 충돌한다. 따라서 사랑이란 다른 둘이 만나 서로서로 완성하는 존재로 그려야 한다. 로코의 끝은 항상 결혼일 필요도 없고, 영원하지도 않으며, 누구나 완벽하지 않은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로맨틱 코미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보고 쓰고, 읽고 쓰고, 듣고 씁니다. https://brunch.co.kr/@doona9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