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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호 여성 프로파일러가 밝힌 '아동학대치사사건'의 내막

[인터뷰] 이진숙 경위 "강력범죄, 오로지 개인만의 문제는 아냐"

등록 2020.12.01 16:07수정 2020.12.0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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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경위 ⓒ 이진숙 제공

  
"강력범죄 피의자의 죄가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오롯이 개인의 문제라고 볼 수도 없어요. 사회가 책임져야 할 문제가 분명 있거든요."

지난 11월 12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진숙(49) 인천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범죄심리분석관(경위)은 강력범죄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2006년 범죄심리분석관 특채 1기로 부임해 국내 여성 1호 프로파일러로 활동 중이다. 15년간 강력범 300여 명을 만났다. '화성 연쇄살인'의 용의자 이춘재와 전남편 살해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된 고유정을 면담했다. 최근에는 회고록 <오늘도 살인범을 만나러 갑니다>를 출간해 강력범죄 피의자 사례를 소개하고 우리 사회의 숨겨진 이면을 조명했다.

분노와 동시에 안쓰러움이 들었던 이유
  

이진숙 경위와 그의 동료들이 수사에 열중하고 있다, ⓒ 이진숙 제공

   
이 경위는 지난 2019년 '아동학대치사사건'의 피의자 A를 면담했다. 20대 미혼모였던 A는 밥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딸 B(3)양을 폭행해 숨지게 했다.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자 A를 향한 사회적 공분이 일었다. 언론 보도에 달린 댓글에는 "아기만 가엽게 됐다", "사람은 윤리와 도덕 관념이 있어야 한다. 욕망에 흔들리지 마라", "학창 시절부터 언행이 안 좋았을 것이다" 등 아이를 불쌍하게 여기는 댓글과 함께 A의 과거 행실을 유추하는 댓글이 다수였다.
   
하지만 A를 면담한 이 경위의 반응은 네티즌과 사뭇 달랐다. A의 속사정을 들어보니 분노와 동시에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상은 이랬다.

이 경위는 "A는 지적장애 3급으로, B양은 성폭행당해 낳은 자식이었다. 본인 외에 발달장애가 있는 지인 3명도 B양을 폭행했다. 이 중 1명은 동거남 C였는데,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결정적 주범이었다. 하지만 A가 C를 사랑한 나머지 그의 죄까지 자신이 받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C가 A의 장애·보육 수당 등 113만 원을 받아 사비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수사관은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범인을 속단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죄인을 보고도 못 본 척 넘어가는 건 더더욱 하면 안 된다. C는 이 애매한 선에 있었다. 동거남은 A와 만나기 전에도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미혼모와 동거한 사실이 있었다.
  
"C가 구속되지 않아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어요. 다만 그때 수사가 끝나고 또 다른 미혼모를 물색해 현재도 수급비에 의존해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2의, 제3의 피해자 예방을 위해서라도 꼭 잘못을 밝혀야 했는데, 아쉬움이 듭니다."

A가 보호자임에도 아이를 보호하지 못한 것은 분명 지탄받아야 하지만, 이 경위는 발달장애인과 아동을 위한 우리 사회의 배려가 충분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발달장애인은 아동발달 과정을 이해 못 해요. 아이가 불쾌한 부분이 있어 운다는 것을 모릅니다. 가해자들은 우는 이유를 찾지 못해 답답한 나머지 손찌검을 하게 됐고, 그 강도가 세지면서 폭행으로 이어졌다고 말합니다. 10대 미혼모도 이런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양육 전 부모교육을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보완되어야 합니다. 초·중·고에서 미취학 아동발달 과정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교양 과목으로 편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미혼모 등 취약계층을 위한 정부의 경제교육도 역설했다.

"가령 장애·보육 수당 등 각종 지원비를 받으려면 정해진 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하는 과정이 신설되었으면 좋겠어요. 지원금 지급 후에도 돈을 어떻게 관리하고 지출해야 하는지 등 올바른 경제 관념을 심어주는 복지서비스가 필요합니다."

미흡한 정부 대책
 
 

이진숙 경위가 어느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 이진숙 제공

 
실제로 발달장애인 부모교육의 현주소는 열악했다. 현재 발달장애 부모의 교육은 한국장애인개발원 산하 발달장애지원센터가 담당한다. 센터가 매년 공모를 통해 수행기관을 선정하는 식이다.

2020년 기준 전국 110개소가 선정돼 운영되고 있지만, 직영 센터는 시·도에 한 곳씩 전국 18곳에 불과하다. 복지부 산하 부모교육의 대표적 기관인 중앙육아종합지원센터(100여 곳)와 한국건강가정지흥원(196곳)도 있다. 중앙육아종합지원센터는 서울 25개 자치구 모두에 지역센터가 있지만, 정작 이들 기관은 비장애인 부모교육만 시행하고 있다. 육아센터 관계자는 "신혼부부 위주의 부모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발달장애인이나 미혼모 등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은 없다"라고 말했다.

숨겨진 아동학대 사례를 발굴하는 데도 기존시스템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은 아동학대 위험군을 조기 발굴하려 2018년에 도입됐다. 장기 결석, 영유아 검진 및 접종, 병원 진료기록 등 42가지 빅데이터 지표를 이용해 학대받는 아동이 신고되지 않더라도 자동으로 지자체에 통보하는 식이다. 하지만 아동 데이터가 부족해 실효성이 떨어진다. 빅데이터 지표 중 '개인정보 보호법'에 반하는 항목이 있어 데이터 수집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유관기관 간 아동학대 피해 사례를 공유하려 지난 2019년 개인정보보호법을 개정했다. 현지 아동복지법 제 25조 3항을 보면 '아동의 보호를 위한 목적인 경우에 한해 비밀 유지 의무, 즉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학교(교육부), 아동보호(복지부), 미혼모(여가부) 등 책임 소관이 달라 정보 공유가 어려운 상황, 이를 벤치마킹 할 필요성이 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해당 시스템을 통해 분류된 학대 의심 아동은 17만 4078명이었고, 현장조사는 82%인 14만 2715명에 대해 이뤄졌다. 하지만 이 중 실제 아동보호전문기관이나 경찰에 신고된 아동은 96명에 불과했다.
  
'경찰의 대응이 부실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 경위는 "아이 훈육에 대한 첫째 권한은 '부모'에게 있다"며 "아동학대 가해자 현행 체포 기준은 이렇다. 부모가 명확히 훈육 차원이었다고 주장하거나, 학대로 인해 생긴 상처라는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으면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폭력을 당한 아이도 부모와 떨어지기 싫어 쉼터에 가지 않으려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답했다.
  
"제 식구 감싸려는 게 아니라 체포 기준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아동학대 가해자로 의심받는 부모를 수사나 체포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말에는 동감합니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올해 3분기 0.84명으로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매년 출산장려 정책에 쏟아붓는 세금만 수억 원이지만, 정작 낳은 아이를 향한 관심과 지원은 '새 발의 피'다. '과연 한국에서 태어난 아동은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저출산율에만 신경 쓸 게 아니에요. 낳은 아이도 잘 키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아이가 죽어가는 현실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아동학대뿐 아니라 갓난아이가 버려진 채로 발견된 사례도 있어요. 버려진 아이는 보육원에 맡겨져 양육되거나 국외로 입양되기도 하죠. 이러한 부분은 분명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어른들이 명심해야 합니다."
#프로파일러 #이진숙 경위 #인천지방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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