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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세권 청년주택 살 만 하냐구요? 여길 보세요!

[탐방기] 공공과 민간주택 뒤섞은 '서교동 청년주택'

등록 2020.12.01 08:46수정 2020.12.01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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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역세권 청년주택 '서교동 효성해링턴타워' 입주자 서민영씨가 11월 28일 오후 자신의 방(17㎡)에서 팔 벌려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손병관

 
"보증금 3200만 원에 월세 4만3000원 내고 서울 한복판에서 저만의 공간을 얻었어요. 저만 이런 혜택을 누려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예요."

3년 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서민영(27)씨는 이른바 '역세권 청년주택' 입주자다.

지난 2016년 3월 서울시는 2030세대를 위한 역세권 청년주택 계획을 발표했다. 만 19세 이상 39세 이하의 무주택 청년 및 신혼부부들을 위해 대중교통이 편리한 역세권에 임대주택들을 마련해 최대 4500만 원까지 임대보증금을 지원하고, 입주자에게 빌트인 가전제품과 다양한 커뮤니티 공간을 제공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러나 발표 직후부터 입주자를 받을 때까지 역세권 청년주택에 대해 온갖 우려와 비판이 쏟아져나왔다. 청년주택 주변이 슬럼화되면 인근 주민들이 반발할 것이다, 학자금 대출과 실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적정한 임대료 책정이 가능하겠냐, 유주택자에 대한 역차별이다 등등의 온갖 시비거리가 생겼다.

이 같은 논란 속에도 서울시는 올해 1만1000호의 인·허가를 마치고, 내년에는 1만5000호를 공급한다. 계획대로라면 2022년까지 8만 호(청년 5만6000호, 신혼부부 2만4000호)를 공급하게 된다.

기자는 역세권 청년주택의 입주 환경을 알아보기 위해 28일 오후 마포구 서교동의 효성해링턴타워를 방문했다.

지난 4월부터 문을 연 이곳은 지하 5층, 지상 24층 규모의 공공지원민간임대형 아파트로 913가구가 입주해있다. 주거 형태는 17㎡(5.1평)의 원룸과 37㎡(11.2평)의 아파트형으로 나뉜다. 공공 162호와 민간 751호가 뒤섞여있는데, 서민영씨는 17㎡형 공공주택 거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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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교동 효성해링턴타워 37B형의 모습. 방 2개에 부엌을 공유하는 구조다. ⓒ 손병관

  
서씨는 "진주에 있는 대학교를 다녔는데 지금 얻은 방보다 절반 크기의 원룸을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으로 얻었다. 지방이라고 해서 집값이 결코 싸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임대 거래를 잘 못 해서 손해 보는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에 청년주택이 많아야 한다는 문제 의식을 갖게 됐다. 진주시에도 대책을 마련하라는 제안을 많이 했는데, 기초 지방정부의 재원이 넉넉하지 않고 원룸 임대업자들 눈치를 살펴야 하는 형편이라서 진척이 쉽지 않아 보였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한 뒤에는 회사 사택에서 2년 6개월가량 관리비만 내고 머물렀지만 사생활 보장에 아쉬움이 있었다.

서씨는 옮길 방을 알아보던 중 마포구에서 청년주택 임대인을 모집한다는 현수막을 봤다. 서씨와 엇비슷한 조건의 직장 동료 5명이 지원했는데 운 좋게도 서씨만 입주권을 얻었다. 지난해 11월 청년 대상의 17㎡ 공공임대주택 입주자 모집은 142.5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서씨는 보증금 3200만 원에 월세 4만3000원을 낸다. 보증금은 이자율 1.2%의 중소기업청년대출을 받아서 마련했다. 인근 지역에서 동거하는 직장동료 두 명이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100만 원(합산)을 부담하는 것에 비해서는 1/10의 임대료를 내고 자신만의 공간을 얻은 셈이다.

서울시가 당초 약속한대로 빌트인 냉장고와 세탁기 등이 구비되어 있어서 가전제품을 따로 장만해야할 부담도 많이 덜었다. 아직 20대인 서씨는 2년 주기로 계약을 갱신해서 최장 6년 동안 입주가 가능하다.

서씨는 "이곳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은 곳곳에 CCTV가 있고 외부인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는 안전성"이라며 "아파트 공동체 활동을 해보니 비슷한 처지의 2030 청년들이 많이 입주해있더라"고 전했다.

서교동 청년주택에는 신혼부부가 주로 입주하는 37A형(1.5룸)과 37B형(2룸 쉐어형)도 있다.

쉐어형의 경우 민간 기준으로 1인당 보증금 6120만 원에 월세 36만 원(임대보증금 비율 40% 기준)을 내야 한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무이자 대출 프로그램(최대 4500만 원)을 이용할 수 있고, 민간 쪽은 조건이 다소 완화돼서 형제자매나 친척들도 입주가 가능하다.

다만, 혼자 살 경우에는 보증금 1억3760만 원에 66만 원, 보증금 3060만 원에 108만 원의 월세를 내야 한다. 이 같은 입주조건은 인근 마포한강푸르지오2차(보증금 1000만 원, 월세 105만 원)나 명지한강빌드웰(보증금 1000만 원, 월세 75만 원)에 비해 임대료가 다소 높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서교동 청년주택이 입주민들에게 제공하는 편의시설의 질을 생각하면 턱 없이 높은 임대료라고만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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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8일 오후 이상진 서교동 청년주택 임대관리센터장이 효성해링턴타워 방마다 설치된 ‘스마트홈’ 서비스를 설명하고 있다. ⓒ 손병관


일단, 모든 주택을 발코니 확장형으로 공급했기 때문에 공간 이용에 여유가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가전제품들을 작동시키고 엘리베이터를 미리 호출하고 현관 방문자들을 모니터로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홈' 서비스도 고가아파트의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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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교동 효성해링턴타워 입주자 전용 피트니스 클럽의 모습 ⓒ 손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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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교동 효성해링턴타워의 '작은 도서관'. 3600권의 장서를 구비하고 있다. ⓒ 손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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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교동 효성해링턴타워의 도서관. 도서관 한 켠에 개인 공부방으로 쓸 수 있는 '집필실'이 마련되어 있다. ⓒ 손병관

 
작은도서관, 피트니스센터, 옥상정원, 코인세탁룸도 따로 조성됐다. 3600권의 장서를 갖춘 도서관 한 켠에는 개인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라이팅룸'(1인실)들이 갖춰졌다.

아파트 내부에 160석 규모의 블랙박스형 다목적 공연장을 갖춘 것도 서교동 청년주택만의 특징이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잠정 휴관상태지만, 11월 6~7일 '2020 서울인디뮤직페스타'를 열어 홍대 인디씬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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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교동 효성해링턴타워 지하에 있는 160석 규모의 블랙박스형 다목적공연장 ‘서교스퀘어’. 11월 4일 개관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대관 일정을 잡지 못한 상태다. ⓒ 손병관


500가구 이상의 공동주택에 어린이집을 의무설치한다는 법령에 따라 운영되는 부설 국공립어린이집이 입주자 자녀들에게 우선권(정원의 70%)을 부과한 것도 서교동 청년주택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공공과 민간을 9 대 41의 비율로 섞어서 공공임대주택에 붙은 '낙인' 효과를 불식시키려고 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호수나 층수로는 공공과 민간주택을 구분하기 어렵고, 입주자들에 대한 혜택도 거의 동일하다.

이상진 서교동 청년주택 임대관리센터장은 "'보증금 1억3760만 원에 66만 원 내고 살 만한 공간이냐'는 질문이 많은데 같은 조건으로 이 정도의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곳은 없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역세권청년주택 #효성해링턴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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