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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 부럽지 않은 인기였는데... 왜 갑자기 뒤통수가

미술과 클래식을 주제로 한 인문학 강연을 마치고... 말처럼 행동하는 일의 어려움

등록 2020.11.30 16:44수정 2020.11.3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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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전교생이 110명인 지방의 작은 중학교에 미술과 클래식을 주제로 한 인문학 강연을 하러 갔다. 오전 두 시간은 학생들을 위한 강연이었고, 오후 세 시간은 학부모를 위한 특강이었다. 학생들과 성인은 경험과 정서를 고려해 다른 주제로 강의를 준비하다 보니 나로서도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학생 감동 주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크,1614-1618. 우피치 미술관) ⓒ 우피치 미술관



작년, 양성평등 교육위원회로부터 의뢰받아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와 나혜석 작가의 일생과 그림을 담은 카드뉴스를 만들었는데, 학생들에게 이 자료를 강연 소재로 준비했다.

그리고 콜롬비아 작가인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도 함께 준비했다. 명화를 패러디해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만든 보테로의 작품은 재미도 있거니와 원작 명화를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어 정보와 재미, 두 가지를 다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탈리아의 여성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구약성서의 이야기인 '홀로페르네스 장군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라는 작품을 남겼는데, 참수당하는 장군의 얼굴에 자신을 성폭행했던 타시의 얼굴을, 목을 자르는 유디트의 얼굴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성폭행을 저지르고도 능력 있는 남자에게 너그러운 세상 탓에 타시는 금방 풀려났고, 오히려 비난의 화살은 자신에게 쏠리는 억울한 상황에 아르테미시아는 붓을 들었다. 그리하여 시공간을 초월해 400년이 넘도록 타시의 만행을 만천하에 알린 것이다.
  

자화상(나혜석,1928. 수원 아이파크 미술관) ⓒ 아이파크 미술관



시와 수필, 기행문, 여성주의 소설을 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의 작품과 일생도 나눴다. 나혜석은 여성이 불평등한 세상에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도 '내 후손 여성들은 나보다 나은 세상에 살기'를 바라며 소신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많은 지식인이 친일로 돌아서 호의호식을 누리는 가운데 일본의 감언이설에도 끝까지 친일로 돌아서지 않았다. 무연고 시신을 찾아가라는 관보에 실린 기사가 나혜석의 마지막 운명이었다니, 말하는 나도 울컥했고, 듣는 아이들의 입에서도 탄식이 흘러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인 '중학생 감동 주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학생들이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보테로의 작품에는 명화를 패러디한 재미있는 작품이 많은데, 자연스럽게 원작 명화를 보여주며 탄생 배경도 말해주고 그가 패러디한 그림도 보여주니 시간이 후딱 갔다. 특히 '12세의 모나리자' 그림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났는데, 아이들이 좋아하니 내 마음도 어찌나 뿌듯하던지.
  

12세의 모나리자(페르난도 보테로.1959. 모마 뉴욕 현대미술관) ⓒ 모마(뉴욕 현대미술관)



재밌는 그림뿐 아니라 보테로는 이라크 포로수용소인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벌어진 참상을 그렸는데, 이 그림으로 전시회를 연 그는 타인의 불행을 팔아서 돈을 벌고 싶지 않다며 어떤 작품도 판매하지 않았다. 다만 미국과 연합국 군인들이 벌인,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인격이 말살되는 충격적인 현장을 고발함으로 다시는 그런 참상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제2의 게르니카로 불리는 이 일련의 작품들을 보며 피카소가 했던 말 '그림은 아파트를 치장하려고 그리는 게 아닙니다. 그림은 적에게 맞서서 싸우는 공격과 방어의 무기입니다'란 말을 들은 아이들은 숙연해지기도 했다.

성인 대상 강연은 많이 했지만, 학생 대상 강연은 처음이라 아이들이 지루해할까 봐 걱정했는데, 강연이 끝나자 이효리도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오후에 열린 학부모 대상 강연 사이사이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연습장이나 스케치북을 찢어와 사인을 받으려고 줄을 섰다. 서둘러 줄을 서느라 연습장 찢긴 부위가 너널너덜 달린 채로 있는 모습을 보니 그 순수함에 내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자까님 팬이 됐어요!"

사인을 받으며 내 귓가에 속삭이는 사랑스러운 아이들 덕택에 내 행복 지수는 만렙을 찍었다.

그림 속에는 작가의 각기 다른 사연과 시선과 사회적 배경과 역사가 들어있다. 그림을 모른다고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지만, 우리가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는 일처럼 그림은 일상을 풍요롭게 만든다. 단지 보는 즐거움에서 시작하여 아는 즐거움, 더 깊이 들어가 그의 마음에 공감하게 되니까.

거창하게 불행을 견디게 하는 힘 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학생들이 재미있는 그림을 보고 재밌어 하고, 의미 있는 그림을 보고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그림 속으로 들어가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는 과정은 공감과 사고의 폭을 넓혀주기도 하니까.

뜻밖의 질문에 뒤통수가 부끄러웠다

강연에 참석한 학부모 중에 독서 동아리 회원분들이 있었는데, 내가 쓴 <다락방 미술관>을 지난달 독서 모임에서 읽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했다. 문제가 된 지점은 이카로스의 추락과 순교자 베드로의 암살을 묶어서 쓴 글이었다.

이카로스의 추락은 이카로스가 추락하는 순간 옆에서는 밭을 가는 사람이 보이고, 순교자 베드로의 암살은 베드로가 붙잡혀 암살당하는 순간에도 주변 사람들은 나무를 하고 있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사람들에 대해 나는, 소외는 돌고 돌아 나에게로 향할 수 있다고 썼다.
  

이카로스의 추락(피테르 브뤼헐.1558년경, 브뤼셀 왕립 보자르 미술관) ⓒ 브뤼셀 왕립 미술관

 

순교자 베드로의 암살(조반니 벨리니.1507년경. 런던 내셔널 갤러리.) ⓒ 런던 내셔널 갤러리



열띤 토론의 주제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것이 죄가 되느냐?'였다. 죄고 아니고의 문제를 떠나 나에게 고통이 닥쳤을 때 아무도 손잡아주지 않는다면 삶이 얼마나 힘들어질까를 생각해보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가 명백해진다.

그리고 당연히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오히려 훌륭한 일이지만, 타인의 고통에 감응하는 것 또한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 말하려는데, 문득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잘 아는 나는 내 시간과 노동을 기꺼이 들여 고통을 받는 누군가와 함께한 적이 얼마나 있었나. 나는 열심히 글을 썼고 책을 냈고 강연을 했다. 묵묵히 내 일을 잘했다고 여기저기서 상도 받았는데, 그럼 내 일을 열심히 했으니 죄는 없는 건데, 저 질문에 마음이 철렁하고 뒤통수가 부끄러운 것은 왜일까?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려운 것을 말함으로써 나는 마치 내가 행동한 것처럼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뱉은 말에 내가 부끄럽지는 않고 싶은데, 그러려면 어떡해야 하는지…. 생각과 한숨이 깊어졌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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