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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는 일, 잘 듣는 일이 이렇게나 중요합니다

[에디터만 아는 TMI] 홍승은 지음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에서 찾은 읽기의 중요함

등록 2020.12.02 20:03수정 2021.05.1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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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라이프플러스 에디터만 아는 시민기자의, 시민기자에 의한, 시민기자를 위한 뉴스를 알려드립니다.[편집자말]
지난 기사에서 매일 글을 평가하는 일의 어려움을 말했다.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는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듣고 있으면 배가 아프다는 투정도 부렸다. 너무도 피가 되고 살이 되고 감동이 되는 말들이라서. 그 말이 정확하고, 세련되고, 아프지만 약이 되는 말들이라서, 오디션에 나온 가수들에게 꼭 필요한 말들이라서 배가 아팠다고 썼다. 나도 그들처럼 시민기자들에게 정확하고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나 되돌아 보게 된다고 썼다.

그런데 이런 내 투정이 당연하다고, '한 사람이 삶으로 써낸 글을 글쓴이의 눈 앞에서(비록 내 눈앞에 시민기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읽고 그 감상을 표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만났다. 나아가, '그 어려운 일을 통과해야 기를 수 있는 시선이 있다. 사회적 맥락과 글쓴이의 맥락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는 눈 같은'이라고, 응원까지 해주는 사람을.


잘 읽는 것의 중요성을 알려준 사람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겉표지 ⓒ 어크로스

 
그는 바로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라는, 내가 매일 한 번쯤 하는 말을 책 제목으로 삼은 홍승은 작가다(나는 새로운 시민기자의 좋은 기사를 볼 때마다, 이분이 계속! 꾸준히! 글을 썼으면 좋겠다는 말을 거의 반사적으로 내뱉곤 한다).

그는 '개인의 삶이 어떻게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는지 자신의 경험을 통과한 작법들을 낱낱이 알려준다. 그 어떤 말이나 시선에도 주눅들지 않고 너도 쓸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책 내용 중에 '감히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 안전한 글쓰기 공동체 만들기' 부분은 완전히 나를 염두에 두고 쓴 것처럼 읽혔다. 잘 읽는 것이 왜 중요한지, 어떻게 하면 잘 읽을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서 특히 그랬다.
 
"쓰는 이의 뼛속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힘은 잘 읽고 듣는 공동체에 있다. 나는 어떻게 잘 읽는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게다가 글을 잘 쓰기 위해서 잘 읽어야 한다는 사실은 많은 작가가 말하는 쓰기의 비법이기도 하다. 좋은 문장과 좋은 사유를 읽으며 곱씹다 보면 어느새 내 몸에 글이 배고, 세상을 보는 관점을 길러낼 수 있고, 같은 내용을 보다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식을 익힐 수 있으니까." - 240p

나는 작가가 말하는 '안전한 글쓰기 공동체'가 <오마이뉴스>이고, '잘 읽고 듣는' 건 내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는이야기를 읽고 편집하는 일이, '좋은 문장과 좋은 사유를 읽으며 곱씹다 보면 어느새 내 몸에 글이 배고, 세상을 보는 관점을 길러낼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으니까. 작가는 이런 말도 했다. 
 
"어떻게 글을 읽을 것인가. 글을 읽자마자  '그래서 결론은? 요지는? 하고 싶은 말은?' 같은 판단이 아닌, 행간에 스며든 망설임과 고민과 침묵을 예리하게 파악하는 일, 삶을 통째로 꺼내놓은 글 앞에서 공감과 더불어 필요한 부분을 조심스레 제안하는 과정은, 쉬워 보여도 막상 실천하기 까다롭다." - 242p

이 부분에서는 홍 작가와 의견이 갈렸다. 당연하다. 그와 내가 글을 대하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사는이야기를 기사의 관점으로 보는 사람이다. 나에게 <오마이뉴스>로 들어오는 모든 글은 '그래서 결론은? 요지는? 하고 싶은 말은?' 이걸 반드시 따져야 한다. 기사가 되는 글인지 판단해야 한다. 

글쓴이가 하고 싶은 말이 지금 필요한 내용인지, 아니면 얼마나 새로운 내용인지, 혹은 누구나 혹은 소수자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인지에 따라 메인 화면에 썸네일이 달린 기사가 되는지, 아닌지가 나눠지니까. 

그러니 잘 읽어야 한다.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들은 노래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 이어폰을 끼고 듣거나 가수의 표정에서 감정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오로지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고 듣는 것처럼 나도 잘 읽기 위해 의자를 당겨 자세를 고쳐 앉거나, 모니터를 얼굴 가까이 끌어 가까이 보고 읽으려고 한다. 소리 내 읽어도 본다.


집중이 영 안 될 때면 시간을 두고 다시 읽어도 본다. 조금이라도 더 잘 읽으려고. 글쓴이의 표정까지 읽을 수는 없지만 작가의 말대로 '그 글을 쓰기 위해 시간을 들였을 글쓴이의 망설임을 가늠하면서 문자, 여백, 감정 하나하나에 섬세해지려고 노력'하려 애쓰는 거다.

'글쓰기 공동체를 일구기 위해서는 잘 쓰는 열 사람보다 잘 읽는 한 사람이 중요해요'라고 잘 읽는 사람의 역할을 강조한 작가의 글에서 내 시선을 붙든 내용이 하나 더 있었으니, 그건 바로 글에 대한 평가를 '듣는' 사람이 한 말이었다.

홍 작가의 글쓰기 강의에서 합평이 끝난 후 소감을 묻는 자리에서 '합평은 무조건 서로의 글을 냉정하게 비판하는 거라고 생각했다'던 참가자가 말했다.  
  
"여기서는 표현 자체가 다르더라고요. 일단 글쓴이의 심정을 공감하면서 표현하고, 그다음에 보충되었으면 하는 부분을 '저는 이 부분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궁금했어요. 조금 더 추가되면 더 잘 와 닿을 것 같아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방식이잖아요. 서로를 존중하면서 나아가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아요." - 243p
  
내가 이 문장을 숨을 고르며 읽었던 것은 처음 듣는 말도, 내용이 새로워서도 아니다. 이 말을 잊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해서다. 일하다 보면 이런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놓치게 될 때가 많으니까.

내 의견을 전달하는 태도와 마음. 그것이 상대방의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 글을 더 쓰게 할 수도, 더 쓰지 않게 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다. 무조건적인 친절, 감정노동을 기끼어 감내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그보다는 해야 할 말, 필요한 말을 상대에게 잘 전달하는 세련되고 노련한 기술(?)을 연마하고 싶은 마음에 가깝다. 

'서로가 잘 듣는' 글쓰기 공동체가 되었으면

며칠 전 쪽지를 하나 받았다. 자신이 쓴 기사가 포털에 걸렸는데, 악플지옥이 아니라 '이 글을 읽으니 계속 글을 쓰겠다, 나도 글을 쓰고 싶다'라는 댓글이 달려 기분 좋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댓글 내용과는 반대로) 누군가에게 작지만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이 올해 제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인 것 같다'며 아래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 선물은) 글 쓰라고 계속 격려해주신 기자님 덕분입니다. '막 달리시다가 다시 멈춤?'이라고 써서 보낸 쪽지 아직도 기억합니다. ㅋㅋ."

그가 글 속에서 웃고 있어서 나도 웃었다. 그는 내가 '이분이 계속! 꾸준히! 글을 썼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사람 중 하나였다. 처음은 처음이라 열심히 열정을 갖고 쓰지만, 사실 그 꾸준함을 유지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글, 이게 뭐라고. 쓰고 싶지 않으면 안 쓰면 그만이니까.

그래도 나는 궁금하다. 내가 계속 썼으면 하고 바란 사람들이 다음에 어떤 글을 써올지. 그래서다. 있는 용기를 끌어모아 안부의 쪽지를 보내고, 격려의 마음을 내비치는 것은. 그런 마음으로 저런 쪽지를 보냈다. 멈추지 말라고, 계속 꾸준히 쓰라고. 지금 충분히 잘 쓰고 있다고. 

결국은 '안전한 글쓰기 공동체'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가 잘 듣는 게' 아닌가 싶다. 작가가 북토크에서 만난 강사가 말한 내용이 뭔지 너무 잘 알 것 같았다. 강사인 '저'를 시민기자로, '여러분'을 나로 바꿔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서다.  
  
"저는 북토크 내용이 매번 바뀌어요. 만약 여러분이 이렇게까지 저를 수용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면 오늘 준비한 부분만 말하고 갔겠죠. 그런데 너무 잘 들어주니까 믿음이 생기는 거예요. 내 치부, 치부라고 생각한 것들을 말해도 되겠다 싶은 믿음이.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오늘 제가 한 얘기들을 절대 꺼내지 못했을 거예요." - 240p

그러니 저도 잘 읽고 듣겠습니다. 홍 작가도 말한 것처럼 '잘 듣는 이와 함께 하는 합평은 진솔하게 쓸 용기를 주니까요'.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 나와 당신을 돌보는 글쓰기 수업

홍승은 (지은이),
어크로스, 2020


"모든 시민은 기자다! '뉴스게릴라들의 뉴스연대'가 바로 오마이뉴스입니다.
#에디터만 아는 TMI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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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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