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인 제자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

[아이들은 나의 스승 215] 과도한 능력주의 사회가 의사와 검사를 괴물로 만들었다

등록 2020.11.30 17:27수정 2020.11.3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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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 검찰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이날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감찰 결과와 관련해 긴급 브리핑을 열어 윤 총장에 대한 징계청구·직무배제 방침을 밝혔다. ⓒ 연합뉴스

  
'검란'이란다. 검찰총장의 직무를 배제한 법무부 장관의 조처에 맞선 검사들의 집단행동을 언론은 그렇게 표현했다. 언뜻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는 정의로운 검사들의 의연한 결단처럼 느껴진다. 모름지기 검사란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는 수호자 아닌가.

그런데 스스로 불의를 일삼았던 검찰의 과거 행적 탓에 그들의 결기가 오기처럼 느껴진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줄만 알았지, 성찰하는 법을 잊어버린 괴물 집단이라는 조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검사스럽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연일 모든 언론의 1면을 장식하고 있는 그들 소식을 접하며, 얼마 전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진료 거부 사태를 떠올렸다. 대상도, 요구하는 바도 다르지만, 끌어주고 밀어주며 한목소리로 똘똘 뭉치는 모습이 닮았다. 둘 다 우리 사회 최고의 권력 집단이라는 점도 공교롭다.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 한 이유
 

순간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사로 임용된 제자들이 있는지 주소록을 뒤적였다. 진료 거부 사태 때 전공의, 의대생 제자들과 통화했던 것처럼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다. 주소록엔 몇몇 제자의 연락처가 남아있었으나 차마 통화 버튼을 누르진 못했다.

뭐랄까. 좀 두려웠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에겐 무례하다 싶은 질문도 거침없이 해댔는데, 아무리 제자라지만 검사 앞에선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길거리의 교통경찰 앞에서조차 바짝 긴장하는데, 경찰을 통솔하고 지휘할 권한이 있는 검사임에랴.

진료 거부 사태로 인해 전공의와 의대생 제자들과의 관계가 순식간에 서먹해졌다. 그들이 내건 주장을 이해할 수 없었고, 내 질문에 대한 그들의 답변은 설득력이 부족했다. 대화와 타협, 토론 등과 같은 민주주의의 절차를 무시하는 듯한 행태에 분노가 일기도 했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건, 그들의 '일사불란함'이었다. 진료 거부에 약 90%가 동참했다는 뉴스를 보고 처음엔 오보일 거라며 믿지 않았다. 그런 통계가 나올 리 만무하다는 생각에서다. 여론과 동떨어진 수치라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항명으로 맞선 검사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보수언론이 보도한 내용을 보면, 마치 일선 검사들 대부분이 동참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대놓고 '검란'이라고 명명할 정도이니, 국민이 보기에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보수언론이 통계를 부풀렸든, 자극적인 제목을 붙였든, 항명 검사의 수가 적지 않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직위에 상관없이 동참하고 있는 것 또한 그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행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장관과 총장의 갈등을 넘어 법무부 대 검찰의 힘겨루기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검사인 제자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
   
검사 제자에게 꼭 묻고 싶었던 게 하나 있다. 최근 언론에서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말이 '검찰주의자'라는 용어다. 견문이 적은 탓인지,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 전까지는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사자후로 인해 생겨난 신조어 아닐까 싶다.

공익의 대표자라는 검사가 공공연히 '검찰주의자'로 불리는 데도 왜 분노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다. 말 그대로 사람이 아닌, 조직에 충성한다는 불손한 뜻 아닌가. 이는 곧 다양한 사회적 가치가 충돌할 때 검찰 조직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과거 검찰의 흑역사를 보건대, 검사들 대부분이 '검찰주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범죄 행각에는 무딘 칼조차 들이대길 주저하면서, 추미애 현 법무부 장관에겐 집단행동을 서슴지 않는 그들의 행태를 통해 증명된다.

추미애 장관이 검찰 출신 선배였어도 그렇게 대응했을까. 그랬다면 그는 애초 검찰 개혁의 기치를 꺼내 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 역시도 여느 검사들처럼 '검찰주의자'라는 DNA가 몸속에 똬리를 틀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역대 정권의 법무부 장관이 왜 그토록 검찰 출신이 많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검사들의 집단행동을 보면, 언뜻 검찰총장의 홍위병 역할을 자임하는 듯한 모양새다.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 배제 결정을 외부 세력의 검찰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는 것 같다. 막강한 검찰 권력을 약화시키는 게 검찰 개혁의 본령임을 그들이 모르진 않을 것이다.

알다시피, 과거 군사정권 시절엔 헌법보다 국가보안법이 상위법 노릇을 했다. 당시는 공안 검사의 전성시대로, 헌법적 가치를 무력화시키는 데 앞장선 조직이 검찰이었다. 이를 문제 삼는 경우가 아예 없진 않았겠지만, 이른바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소수의 양심적인 검사의 입조차 틀어막았다.

'검사동일체의 원칙'이란, 검사들이 검찰권을 행사할 때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상명하복의 유기적 조직체로서 움직여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검찰권의 통일성과 공정성을 기하기 위한 것이라 밝히고 있다. 말하자면, 각 검사는 검찰 조직의 톱니바퀴가 되어야 한다는 언명이다.

법보다 가까운 원칙이 서슬 퍼런 상황에서, 검사라면 태생적으로 한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통일성과 공정성이 강조될 때 조직 내 다양한 견해와 주장은 원천적으로 배척된다. 검사에겐 가톨릭 사제들의 종교적 순명보다 더 강고한 상관에 대한 복종의 의무만 있다는 이야기다.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둬 임용된 검사라면, 명실공히 대한민국 1%, 아니 0.1%라 할 만하다. 그들의 학습 능력은 '검사동일체의 원칙'이라는 조직 논리가 덧씌워져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으로 거듭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성향은 권력의 크기와 정확히 비례한다.

한 제자는 그들이 진료 거부에 90%가 동참한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의대생 제자들 중 유일하게 진료 거부 결정에 반대했던 아이다. 그는 '튀면 다친다'는 불문율에다 선후배 위계질서가 엄격해 자신의 생각을 함부로 입 밖에 낼 수 없는 곳이 전공의와 의대생 집단이라고 했다. 이번 검사의 집단행동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한다면 억측일까.
 
특권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았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되었으니, 특권을 인정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요?"

지난 전공의와 의대생 제자들과의 대화 중 가장 서글펐던 말이다. 그들은 예외 없이 성적에 따른 차별을 합리적이며 공정하다고 여겼다. 아마 검사들 역시 그럴 것이다. 검찰 권력의 기저에는 당당히 실력으로 획득한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 본다.

믿기지 않겠지만, 아이들 중엔 무지렁이 장삼이사들에게 선출된 권력보다 공정한 경쟁시험을 통해 얻은 권력이 더 강해야 한다고 믿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시장이나 국회의원도 시험을 통해 선출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들에게 시험은 공정의 유일한 잣대다.

요컨대, 우리 사회의 과도한 능력주의야말로 특권 의식에 길들어진 의대생들과 숱한 '검찰주의자'들을 길러낸 토양이다. 그들의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라곤 정치뿐인데, 검찰 출신 정치인이 득시글한 마당이니 난감할 따름이다. 돈키호테처럼 투박하고 저돌적일지언정 내가 추미애 장관을 응원하는 이유다.
#검란 #추미애 #윤석열 #진료 거부 사태 #능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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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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