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서울로 돌아가고만 싶더라고요"

[차 한잔의 인터뷰] 23년째 고금도에서 유자농사 짓고 있는 '서울댁' 진복순씨

등록 2020.11.29 17:12수정 2020.11.2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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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도신문


"완도요? 여행한번 와 본적 없었어요. 고금도라는 섬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서울서 태어나 38년을 서울서만 살았던  진복순씨(61). 생전 농사일 한 번 해본 적이 없던 그녀는 남편 하나만 믿고 그렇게 낯선 고금도에 덜컥 내려왔다고 했다. 

"그때는 연육교가 없었어요. 마량항에서 고금도 배를 타야 했어요. 서울서 일찍 출발해도 마량항에 도착하면 해질녘이 되었는데, 마량항에서 바라보는 노을이 눈물 나도록 아름다워 한 눈에 반해 버렸어요." 

신혼 때는 섬에서의 결혼생활도 아름다운 풍경 같을 것만 같았단다. 그러나 평생을 서울서만 살던 여성이 낯선 고금도에서 시부모님과 시동생까지 모시고 한번도 해보지 않은 농사일하며 큰살림을 꾸려 나갔으니 그 고된 삶이야 묻지 않아도 짐작이 갈만 했다. 

"처음 몇년은 우울증으로 힘들었어요. 그저 서울로 돌아가고만 싶더라구요. 지금처럼 연육교라도 있었음 돌아갔을지도 몰라요." 

그런 그녀를 다시 살게 한 것은 생활지원사를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그때는 생활관리사라고 했어요. 완도에 처음 도입됐을 때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13년이나 됐네요." 홀로계신 어르신들을 방문하며 말벗 해드리니 것이 일이었다. 홀로계신 어르신들과 자신도 같이 치유되는 느낌 이였단다.

"고단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어요. 늦은 나이에 결혼해 마흔에 금쪽같은 아들 하나 낳았는데, 금이야 옥이야 귀한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 뇌출혈로 쓰러져서 1년간 광주 조대병원에 입원, 그 후 5년을 재활을 해야만 했어요. 내 몸 힘든 건 견딜 수 있었는데 자식이 아픈 건 정말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 

지금은 건강하게 장성해서 현재군복무 중이다. 

지금은 시부모님이 하시던 유자농사를 물려받아 7000평이 넘는 유자 밭을 가꾸고 있는 그녀. 

힘들 법도 할텐데 "성실하고 가정적인 남편과 착실하고 건강한 아들이 곁에 있으니 더 이상 무얼 바랄까요? 이렇게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하죠"라는 말이 돌아온다. 

고금에 내려와 마량항에서 봤다는 노을처럼 익어가는 그녀의 삶이 아름답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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