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이사 거의 다 했는데.... 낡은 집에 남겠다는 엄마

[두 여자가 다시, 같이 삽니다] 제주살이 2주차를 넘기며

등록 2020.12.02 20:05수정 2020.12.02 20:05
2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91세 엄마와 51세 딸이 다시 고향에서 함께 사는 이야기를 씁니다.[기자말]
지리산의 집을 파는 게 결정되고 나서 지난 9월에 전셋집을 알아보러 제주에 내려왔다. 제주행을 결정한 후 어머니에게 전화할 때마다 내가 전셋집을 구해서 어머니랑 같이 살려고 한다는 말을 계속 했다. 어머니 지금 사는 집이 너무 낡아서 거기서 계속 살기는 어려우니 내가 전세를 구하겠다고. 어머니 역시 동의했다. 그래, 이 집은 태풍이라도 불면 이젠 불안하다며.

25년 전, 부모님은 은퇴를 몇 년 앞두고 그동안 어찌어찌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자그마한 땅을 사고 아마도 당시 최고로 싼 재료로 조립식 주택을 지었다. 그곳에서 내 할머니는 10년간을 사시다가 104세에 자신의 방에서 돌아가셨다.

마침 육지에 살던 우리 형제들도 제주에 내려가 있던 상황이었다. 밖에 나가 있어서 죽음의 순간을 지켜보지는 못하였으나, 소식을 듣고 집으로 갔을 때 할머니의 손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내 인생에서 '죽음'이란 걸 처음 피부로 느꼈던 곳이 바로 그 집이었다.

할머니도 아버지도 살다 가신 집
 

어머니의 기억의 공간 이사를 오기 전 25년간 살았던 이 집에는 곳곳에 부모님의 손길이 닿아있다. 그래서 많이 낡았지만 익숙하고 편안한 곳이었다. 우리 둘 모두에게 낯선 지금 이집 역시 앞으로 우리의 손길이 닿는 만큼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이 되어가길 바란다. ⓒ 이진순

 
아버지 역시 20여 년을 그 집에서 사시다 가셨다. 아버지는 옆집의 정원 풍경을 마치 우리 집 마당인 양 즐길 수 있고, 여름에 창문을 열어놓으면 사방에서 바람이 들어와 너무 시원한 집이라며 좋아하셨다.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화장실 한 번 가는 것도 온 힘을 다해야 했던 즈음, 아버지는 잘 안 들리는 소리로 무언가를 말하셨다. 귀를 기울여보니 화장실이 바로 여기에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니 부모님 평생에 화장실이 실내에 있는 집에 살아보기는 그 집이 처음이었다.

작년 말 아버지가 위독해져서 병원 입원하신 지 한두 달쯤 지나서 제주도에 갔을 때였다. 어머니랑 같이 자고 있던 새벽, 화장실에 다녀오신 어머니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도 잠에서 깨어 왜 안 자고 앉아 있냐고 물었다. 최근에 일어난 많은 일들을 잊고 지내시는데, 아버지가 병원에 가시던 그 날의 상황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그 상황에서 어머니는 아버지가 병원 가시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아버지를 돌보러 오셨던 요양사 분은 너무도 당연히 위급한 상황을 큰 오빠에게 알릴 의무가 있었고, 소식을 들은 오빠는 황급히 병원으로 아버지를 모셔갔다. 너무나 상식적인 대응이었다. 그렇게 발 빠르고 상식적인 대응 앞에서 어머니는 자신의 생각을 말할 틈도 자신도 없었으리라.

어머니에게 죽음은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훨씬 자연스러운 어떤 것 같다. 늙고 병들면 죽는 것이다, 왜 병원 가서 고생고생하다가 가야 하느냐라는 게 내가 들은 죽음에 대한 어머니의 생각이다. 의료의 발전이 자신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평소에 잘 안 쓸 법한 단어들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셨다.

무엇이 정답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 모두의 앞에 명확한 진로로 놓여 있는 '죽음'의 문제에 대해 살아 있을 때 충분히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을 원하는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쇠약해진 상태에서 의료시스템에 일방적으로 맡겨진 채 침상에 누워 있는 광경들은 생명의 존엄보다는 삶의 비참함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튼 그때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어머니는 아버지가 집에서 돌아가실 수 있기를 바랐었구나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할머니가 그러셨듯이. 그 집에서 어머니는 10년간 할머니를 모시다가 임종을 지켰고, 아버지와 20년을 함께 살고 마무리하였다. 그런 그곳이 어머니의 삶에서는 당연하게도 특별한 공간이었으리라.

이사해서 나와 함께 살게 될 거라고 수차례 이야기했음에도 어머니는 계약을 최종 결정하기 위해 집을 보러 갔을 때 매우 당혹스러워 하셨다. 집을 둘러보려 하지도 않았고,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거실 구석에 앉아 있었다. 같이 갔던 언니와 나만 집을 돌아보며 괜찮지 않냐고 물어도 어머니는 잘 모르겠다는 대답 정도만 했다.

차차 이야기하다보면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계약을 진행하고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족들이 총동원되어 지금 사는 집이 얼마나 낡았고 그동안 충분히 잘 살았는지, 그리고 새로운 집은 화장실도 두 개나 있고, 춥지도 않고, 태풍에 창문도 덜컹거리지 않을 것이고 등등 좋은 점들을 나열하는 것이 일이 되었다.

어머니가 25년을 산 집을 떠나는 마음
 

집앞 한라산 풍경 한라산이 이렇게 전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날이 별로 없다고 알고 있는데, 며칠 전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주었다. 제주에 내려온지 2주째 되는 날이었다. 귀향 2주를 축하하는 한라산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 이진순

 
한 달이 넘는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드디어 1박2일에 걸쳐 지리산의 짐이 제주로 내려왔다. 일주일간은 어머니 집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이사한 집으로 가서 짐정리를 하며 보냈다. 그리고, 저녁에는 어머니 짐 중에 가져갈 것들을 챙기며, 어머니의 이사를 준비하였다.

이제 또 설명과 설득의 시간이 이어졌다. '내 짐은 이미 이사를 왔고, 어머니 짐은 일주일 후에 앞으로 우리가 살 새로운 집으로 갈 것이다.' 어머니는 내 설명을 듣고 상황을 이해는 하면서도 '이 집에서 그냥 살면 안 될까? 집이 헐어도 나 죽을 때까지는 여기 살아도 되지 않을까?' 등등의 이야기를 하셨다.

설명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느 순간은 발끈하기도 했다. 내가 그동안 너무너무 여러 번 목이 터져라 이 집에 살기 힘든 이유를 이야기했고, 어머니도 이 집이 불안하다며 동의해놓고 왜 이러시냐고, 나는 이 집에 살기 싫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 둘의 살림살이가 한 집에 들어왔고, 새로운 공간에서의 새로운 생활이 열흘째를 맞고 있다. 길게 보자면, 내가 제주행을 결심하기까지 2년이 넘는 주춤거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15년의 세월을 털어내고 정리한다는 것이 그만큼의 과정을 요구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에게도 지금까지 25년 동안 살아오셨던 그 집을 정리한다는 것이 그만큼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일일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막연하게나마 어머니는 그 익숙한 공간에서 자신이 숨을 거둘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이식된 나무가 몸살의 과정을 거치듯 우리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할 수도 있으리라. 이 모든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라며, 창문 너머 아름다운 풍경에 감사한다. 
댓글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15년을 지리산 자락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며 살았다. 지금은 멀리 한라산과 가까이 파란 바다를 보며 지낸다. 아직은 조금 비현실적인 듯한 풍경들 속에서 이사와 정리와 청소로 이어지는 현실을 살고 있다.

AD

AD

인기기사

  1. 1 윤석열 킹메이커들
  2. 2 셀트리온 치료제, 전문가들에게 물었더니... "한국은 다를 수 있다"
  3. 3 법정에 선 정인이 양부모 "훈육 차원에서 대화하다..."
  4. 4 53세 남자가 보내온 그 사진... "이게 현실, n번방 없어지겠나"
  5. 5 중학생 딸 폰에 저장된 연락처 '좀 급한 듯'... 뭔가 봤더니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