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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공 던진 손으로 '네일아트' 합니다

[인터뷰] 남성 네일리스트 김재곤씨

등록 2020.11.30 08:45수정 2020.11.30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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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여자가 한다고?"
"남자가 무슨 그런 일을 해."

'직업에 성별이 없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삶에서는 허상에 불과한 말이다. 우리는 오늘도 편견이 정해놓은 틀에 갇혀 직업을 고른다. 네일아트, 네일숍, 네일리스트. 흔히 '금남'의 구역이라고 여겨지는 분야, 여기 그 경계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삶을 적극적으로 구성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

11월 13일, 남성 네일리스트이자 서울 명일동에서 네일샵을 운영하고 있는 김재곤 대표를 만나 직접 네일아트 시술을 받으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원더네일 샵 내부 ⓒ 전연주

 
에너제틱 야구선수, 네일리스트 되다

"삐삐에 번호 찍히면 이제 들어와라! 였죠."

어린시절부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놀던 철부지 꼬마에게 부모님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삐삐를 채워줬다. 활동적이었던 그 꼬마는 자라서 야구선수가 되었다. 20여년간의 야구선수 생활이었다.

잦은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웠던 그는 우연히 여자친구와 함께 간 네일숍에서 왠지 모를 흥미를 느꼈다. 재미있어 보인다면 일단 도전해보는 그였기에 주저없이 네일리스트의 길을 선택했다. 활동적인 야구선수 생활과는 확연히 다른 길이었다.

"답답해서 미쳐버리겠더라고요."

네일리스트의 길을 택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김 대표가 꼽은 것은 타인의 시선도, 사회적 편견도 아닌 '답답함'이었다. 네일 학원 수업을 들으면서 가만히 버텨내는 50분이 그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포기하는 대신 '20분까지는 버티고 건물 밖 한 바퀴 돌고 오겠다'라는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고 점점 그 버티는 시간을 늘려가며 네일리스트가 되었다.

이상하다? 아니, 특별하다!!

활동적인 생활을 하다가 정적인 일을 하면서 겪는 답답함을 제일 어려운 점으로 꼽았지만 따가운 시선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네일리스트로서의 길을 결정하고 난 다음 주변에서 들은 건 "미친 거 아니야? 남자가 무슨 네일이야?" 하는 반응들이었다. 당장 네일아트 자격증을 따러 가는 시험장에서도 그는 그에게로 집중되는 시선을 느꼈다.

"좋은 자리 맡으려고 시험장에 일찍 갔어요. 미리 들어가서 좋은 자리 맡을 수 있었는데 민망한 거예요. 다 여자분들인데 저 혼자 남자니까. 그래서 그냥 앞에서 여자친구가 시험보러 온건데 모델로 온 척 있었어요. 원래 하얀색 가운 입고 시험 보는데 그 가운도 안 입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다가 다른 사람들 자리 잡는 거 보고 마지막에 들어갔어요."

네일리스트로서 일할 때에도 사람들은 낯선 광경에 지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힐끔힐끔 보고 가곤 한다고 했다. 자칫 사회적 편견이 부담스럽고 싫을 수 있을텐데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거니까 좋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몰라서 못하는 거

사실 미국이나 유럽에는 남성 네일리스트가 상대적으로 꽤 있는 편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한국에서는 아직 남성 네일리스트가 낯설기만 하다. 낯선 길을 선택하면서 그 길을 부담이 아닌 특별함으로 생각하고 있는 김 대표에게 왜 한국에는 아직 남성 네일리스트가 별로 없을까에 대해 물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게 강하다는 이유와 함께 "몰라서 접근을 못하는 게 제일 크다"는 이유를 들었다. 남성도 네일 관리를 받을 수 있고, 네일 숍에 갈 수 있으며 충분히 이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에 노출될 일이 없다보니 몰라서 접근 자체를 못한다는 것이다.

"네일숍에 가면 다 여자분들만 많이 앉아있고 하니까 들어가기가 무서우셨대요. 근데 검색해보니까 남자 선생님이 있다고 해서 왔는데 너무 좋다고…"

금남의 구역처럼 여겨져 선뜻 발을 들이지 못했던 사람들, 아내에게 회원권을 선물하고자 숍에 방문하면서도 한참을 문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에게 남성네일리스트 김 대표는 일종의 첫 발을 내딛게 해주는 도우미 역할이었다.

쉽게 해소되지 못했던 고충들을 해소해줌으로써 받은 감사함의 인사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그는 '남자들도 저렇게 화려하게 하는구나'를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편견을 걷어내고 싶어했다.  

사람들에게 전해진 그의 진심, 섬세함

작은 손톱 위에 아트를 하는 것은 꽤 섬세함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그가 어떻게 그 접점을 찾았던 걸까 궁금해졌다.

밖에서 놀아도 옷이 더러워지는 건 싫어했고, 무채색으로만 가득한 선수들의 옷차림 중 유난히 빨강, 주황 옷을 입어 유난히 튀는 것을 좋아했던 그였다. 김 대표는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자신의 취향과 섬세함을 손톱에 옮겨담기 시작했다.

실제로 숍에서도 김 대표의 깔끔하고 섬세한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딱 들어가는 순간 여타 네일숍에서 진동하던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입구에 디퓨저를 놓았음에도 수시로 탈취제를 뿌리고 향균 작업을 하고 있다는 그의 세심함 덕이었다.

네일을 받으면서 인터뷰를 하던 중 화려하게 네일아트가 되어 있는 그의 왼손이 눈에 들어왔다. 왼손에만 네일을 하고 있는 이유를 묻자 "아직은 사회에서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가 있어서"라며 탄식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왼손에만 네일아트를 하고 있는 김재곤 대표 ⓒ 전연주

 
"옛날에는 밖에서 왼손을 아예 안 꺼냈거든요. 근데 요즘에는 익숙해져서 그냥 빼고 다니고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다니기도 해요."

사회적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다면 양 손에 다하는게 맞지 않을까 싶었지만 한 손에만 네일아트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고 그것은 오히려 그의 차별점이 되기도 했다.

"양 손 손톱모양이 다르잖아요. 안 한 쪽은 넓적한데 젤 네일 한 쪽은 모양이 이쁘게 잡히거든요. 한 손에만 네일을 하는 네일리스트는 거의 없잖아요. 여성분들이 대부분이고 대부분 양손에 하시니까. 말로만 (네일받으면) 손톱 모양이 바뀌고 말리고 모양이 잡힌다고 말하지 직접 보여줄 수는 없잖아요. 근데 저는 한 손만 하니까 너무 비교되게 잘 보이는 거예요. 얘기할 때도 직접 보여드리면서 하기 좋고 해서 그냥 지금도 이렇게 한 손만 해요."

네일 뿐 아니라 그의 왼쪽 손과 팔뚝에는 약간은 흐릿하고 엉성해보이는 타투가 있었다. 타투에 대해 묻자 타투에도 관심이 많아 도전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에게 바늘을 찌르기 전에 그 느낌을 먼저 알고자 직접 한 거라고 답했다. 이론공부만으로 느끼는 한계를 직접 체감해보면서 애로사항을 확인하고 발전해나가는 그였다.

"꼼꼼하다고 잘 하는 건 아닌데 꼼꼼하기라도 해야 잘 하는 사람들 반이라도 따라갈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해요."

네일아트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가치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최선을 다해주는 곳이다'라는 느낌을 받게 하고 싶다고 했다. 가격과 속도 경쟁이 과열되어 있는 이 업계에서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손해일지도 모른다. 수익보다는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정성과 시간을 쏟는 게 그에게는 더 중요했다. 그리고 그의 그 섬세한 진심이 고객들에게도 전해진 게 아닐까.

"오히려 남자가 많지 않아서 더 관심이 생겨요"

김 대표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다. 그는 네일 같은 뷰티 관련 업종 뿐 아니라 '꽃집'을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네일리스트만큼은 아니지만 플로리스트 또한 남성이 많은 직군이 아니기에 의아해하며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당당한 웃음을 지으며 "오히려 남자가 많지 않아서, 흔하지 않아서 해보고 싶고 경험해보지 못한 분야라서 도전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남성 네일리스트 후계자 양성에도 관심이 있다고 했다. 점점 남자도 네일을 한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에 뿌듯함을 내비친 그는 낯선 길에서 도움을 구하기 어려울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또 네일에 관심있는 남성이든 현재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남성이든 같이 모이면 재미있을 것 같다며 웃으면서 말했다.

앞서 '아직 남성들이 몰라서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 김 대표는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모아 사회에 새로운 변화구를 던지려고 준비하는 것 아닐까.  

"자기가 해보고 재미있으면 남 시선 신경 하나도 안 써도 될 것 같아요."

즐기는 자는 아무도 이길 수 없다 하지 않았는가. 사회가 만든 틀에서 벗어나 본인의 재미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김 대표야말로 그 어떤 화려한 네일보다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직접 김재곤 대표에게 받은 네일 ⓒ 전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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