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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의 억울한 의료사고가 국회에서 다뤄졌습니다

[의료소송 5년, 끝까지 간다] 우리 가족 손 잡아준 21대 국회 국정감사

등록 2020.11.27 14:08수정 2020.12.0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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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정확히 한 달 전인 지난 10월 26일 제21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끝났습니다. 코로나19로 증인도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일부 위원회에서는 영상을 통한 원격 국감을 진행하는 등 여러모로 어려운 환경에서 의원과 보좌진들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눈에 선했습니다. 저도 제19대 국회 때 국회에서 일하며 국정감사를 준비했던 경험이 있거든요.

불과 한 달 남짓한 짧은 기간, 여러 피감기관에서 보내온 방대한 자료들을 분석하고 이 중 핵심 사안만 추려 7분 동안 질의하기 위해 보좌진들은 말 그대로 주말도 반납하고 밤낮없이 일한답니다. 제가 밤새 만든 자료가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장에 띄워지고 의원님이 이를 바탕으로 문제를 지적하던 순간은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일했던 19대 국감보다 저에겐 이번 21대 국회 국감이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번 국정감사에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언급됐기 때문이죠. 공장식 유령수술을 받다가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난 동생 권대희의 사연이 국정감사장에서 다루어졌거든요. 그런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장이 아니라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장이었습니다. '의료사고'였음에도 소관 기관인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검찰과 법원을 다루는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다뤄지게 된 것이죠. 어떻게 된 일일까요. 
 

법사위 국정감사장에 등장한 권대희 사건 김남국 의원이 추미애 장관에게 고 권대희 사건을 둘러싼 검찰의 문제에 대해 질의하고 있다. ⓒ 김남국TV


의사가 아니라 검사와 싸워야 했던 나날들

동생 대희는 수술 중 3500cc에 달하는 대량출혈이 발생했지만, 담당 의사가 동시에 여러 환자를 수술하느라 제대로 조치하지 않았고 그 결과 과다출혈로 사망했죠. 저와 어머니는 진실을 밝히고 책임 있는 사람들이 처벌받게 하고자 5년째 싸우고 있습니다.

기댈 곳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생 대희가 떠나고 대희를 그렇게 만든 의사들이 아무런 피해 없이 떳떳하게 영업하는 모습을 보며 절망했죠. 정작 억울한 건 우리인데 온 힘을 다해 억울함을 증명해도 더욱 억울해지기만 했습니다. 우리가 경찰도 검찰도 아닌데 온 가족이 CCTV를 돌려보고 의사들을 만나 대화를 녹음하며 증거를 수집했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모은 증거를 다 갖다 바쳤지만, 검찰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경찰이 2년 동안 수사한 끝에 내놓은 기소 의견부터 보건복지부와 온갖 유명 대학병원, 전문 감정기관이 내놓은 감정 결과도 깡그리 무시했죠. 대희의 사건을 담당했던 성아무개 검사가 내놓은 수사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넘긴 무면허 의료행위, 즉 의료법 위반 혐의를 불기소한다는 것이었죠.

병원 측을 대리한 변호사가 성 검사와 서울대학교 의대와 사법연수원을 함께 나왔고, 그 변호사가 과거 출연한 라디오 방송에서 성 검사와 친분을 언급했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란 걸 알게 된 뒤 문제를 제기했지만 귀담아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검찰에 항고를 했지만 결국 기각했죠.


"이 항고사건의 피의사실과 불기소이유의 요지는 불기소처분 검사가 작성한 불기소결정서 기재와 같으므로 이를 원용하는 바, 일견 기록을 세밀히 검토한 결과 불기소처분 검사의 처분이 부당하다고 볼 자료 없으므로 이 사건 항고를 기각한다." 

결국 법원에 검찰의 불기소 처분의 타당성을 묻는 재정신청까지 갔습니다. 법원은 8개월이나 사건을 들여다봤습니다. 하루하루 두려움에 떠는 시간이었죠. 만약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우리는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요.

그 와중에 어머니께선 대희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지고 이만큼이라도 가해자들과 싸울 수 있는 건 수술실 CCTV 덕분이라며 '수술실 CCTV 설치법'을 어떻게든 통과시켜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재판으로 바쁜 와중에도 지난해 겨울 국회를 찾아 다른 의료사고 피해자분들과 100일간 1인 시위를 하신 건 그 때문이죠. 도움 주는 기관이나 단체도 없이 피해를 본 환자들끼리 힘을 합쳐 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20대 국회는 한 번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국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올해 새롭게 구성된 21대 국회는 달랐습니다. 무더웠던 올 여름 국회와 법원, 검찰청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하던 어머니께 몇몇 의원실에서 먼저 연락을 취해왔지요. 

가장 먼저 연락을 해준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수술실 CCTV 필요성을 강하게 공감하면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을 직접 발의했습니다. 이 법안에 관심 가져달라며 국회에 호소하는 어머니의 편지를 선배, 동료 의원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전달하기까지 했죠. 이번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권대희 사건 관련 질의를 했습니다. 

김남국 의원은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가 병원 측 변호사와 서울대 의대 동기면서 사법연수원 동기"이고, 그 많은 감정기관의 결론도 배척했다는 점에서 "누가 보더라도 피의자에게 굉장히 유리한 처분을 했다고 의심이 될 만한 그런 사건"이라고 질문했습니다.

김 의원은 "의료사고를 전담하는 공인전문검사제도의 문제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어서 (검찰에) 관련한 자료요청을 했는데 전혀 오지 않았다"며 "사생활과 명예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하면서 제출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추미애 장관은 "상당히 의심이 가는 질문"이라며 "(인용확률 0.3%에 불과한) 법원의 재정신청도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수사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라고 답했습니다. 

아무렇게나 칼을 휘둘러도 처벌받지 않는 검사

재정신청이 인용된 후 우리 가족이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아무도 처벌받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아무개 검사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법원이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었음에도 검찰 내부에선 수사과정에서 문제가 있는지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감찰, 징계 혹은 견책 같은 것들이 전혀 논의되지 않았죠. 검사가 자기 이름을 걸고 처분을 내렸는데, 처벌받지 않고 아무도 통제하지 않았습니다. 시스템적으로 성 검사와 같은 사람은 언제든지 또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도적 결함이 있는 것이죠.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질의하는 김진애 의원 검찰의 기소편의주의와 셀프감찰 문제를 지적하고 성 검사에 대한 감찰 계획을 질의했다 ⓒ 김진애TV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은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이 문제를 날카롭게 질의했습니다. 소중한 질의시간을 쪼개어 어머니의 억울함을 담은 영상편지를 국정감사장에서 틀고 성 검사에 대한 감찰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증거와 전문기관의 감정에 반해서까지 사건을 불기소한 성 검사, 이에 불복한 항고조차 제대로 보지 않은 고등검찰청, 재정신청 인용 후에도 아무런 자체 감찰 계획이 없는 검찰의 문제를 지적하고 검찰의 기소편의주의와 '셀프 감찰'을 비판했습니다. 김 의원은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법무부 차원에서 감찰 계획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바로 저희 가족이 검찰에 하고 싶은 질문을 대신 해준 것입니다. 

추 장관은 "국감장에서 문제 제기가 됐기 때문에 (해당 검사에 대한) 감찰 사유는 충분하다고 본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약속이 지켜지고 꼭 감찰이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기댈 곳 없던 환자 유가족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억울함을 풀어주신 김진애 의원님, 김남국 의원님, 또한 보좌진분들께 이 지면을 빌려 감사를 드립니다.

이밖에도 저희에게 손 내밀어 주신 의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보건복지위원회에서도 환자를 위한 법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계신 의원들이 있지요. 권칠승, 김원이, 양향자,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이번 국감장에서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저는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큰 이슈를 만들어내는 것이 국감의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감의 효용성은 국민의 삶에 밀접하게 닿은 민생 현안에서 입법부가 이렇게 지켜보고 있고 질의할 것이란 점을 의식하게 해 검찰, 행정부가 더 공정하고 신중하게 업무를 처리하게 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믿습니다.

고생한 의원들과 보좌진들께 응원을 보내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회에 보답하는 길은 정치문제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거라 믿고 꾸준히 지켜보겠습니다.

21대 국회에 감사와 응원을 담아, 대희 형 태훈 올림. 
#국정감사 #법사위 #김진애 #김남국 #권대희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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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정의와 약자의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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