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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에겐 테스 형이, 내겐 '덕무 오빠'가 있다

'세상이 왜 이래' 싶은 날, 내가 읽은 이덕무의 글들

등록 2020.11.28 11:34수정 2020.11.2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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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의 신곡이 핫하다. 지난 추석 온라인 콘서트에서 단연 화제가 되었던 노래다. 그가 "테스 형!" 하고 목 놓아 부를 때 그 테스 형이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 형일 줄이야. 그만의 기발한 유머에 모두 반응했다. 

사실 우리는 이 땅에 없는 사람들에게 자주 위로를 받고 깨달음을 얻는다. 세월을 견딘 것들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훈아는 수천 년 전에 죽은 소크라테스를 형으로 두었는지도 모른다. 고백하자면 나에게도 조선시대에 살았던 오빠가 있다.

책이라는 우주를 유영하던 그때 
 

오라버니, 안녕하세요!:) 조선시대 실학자 이덕무의 사진과 소개 ⓒ TVN 알쓸신잡 방송분

 
요즘 유행하는 MBTI 검사를 하면 '인싸' 유형에 속한다는 ESFJ가 나오지만, 사실 나는 어릴 때 책 읽으며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아싸' 유형에 가까운 아이였다. 동네에 가까운 도서관이 있었는데 방학이면 점심, 저녁 도시락까지 싸서 하루 종일 그곳에 있었다.

부모님은 "책만 보지 말고 밖에 나가 좀 뛰어놀아"라고 하셨지만 나에게 책을 읽는 일은 직접 몸을 움직여 땀을 내는 것만큼이나 가슴이 뛰고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이었다. 이 느낌을 표현할 길이 없던 난 그저 입을 닫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운 좋게 안소영 작가의 <책만 보는 바보>라는 책을 만났다. 이 책은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책벌레'로 알려진 이덕무의 자서전을 보고 흥미를 느낀 작가가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쓴 소설이다. 서문에서 소설이라고 못 박아둔 작가에게 배신감을 느낄 만큼, 책 속의 이덕무라는 사람을 직접 만나는 기분이었다. 그는 어린 나에게 책 읽는 것의 즐거움을 멋진 문장으로 표현해 주었다.
 
책과 책을 펼쳐 든 내가,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얼마쯤 될까. 기껏해야 내 앉은키를 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책과 내 마음이 오가고 있는 공간은 온 우주를 다 담고 있다 할 만큼 드넓고도 신비로웠다. 때론 가슴 벅차기도 하고, 때론 숨 가쁘기도 하고, 때론 실제로 돌아다닌 것처럼 다리가 뻐근하기도 했다. (21쪽)

어린 나는 도서관 책상에 읽지도 못할 책들을 욕심껏 쌓아두고 이루지 못할 꿈들을 해맑게 품고는 했다. 한비야처럼 세상을 여행하며 살아볼까, 시골의사 박경철처럼 의사가 되어볼까, 아니면 박완서 같은 소설가가 되어볼까 하며 신나게 미래를 오해하곤 했다.

그게 얼마나 큰 오해였는지 뼈저리게 느끼며 성장할 즈음, 난 다시 이덕무를 만났다. 고전연구가 한정주가 번역하고 엮은 이덕무의 문장이 담긴 <문장의 온도>라는 책에서. 다시 만난 그는 여전히 내 곁에 남아 성장한 나를 보듬어 주었다. 외로울 때 책을 찾는 나에게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나도 마찬가지야'라며 고백해 주었다. 
 
슬픔이 닥쳤을 때는 사방을 돌아봐도 막막할 뿐이다. 다행히 나는 두 눈을 지니고 있어 조금이나마 글자를 알고 있으므로, 손에 한 권의 책을 든 채 마음을 달래고 있노라면 무너진 마음이 약간이라도 안정이 된다."
이목구심서 2  <문장의 온도> (209쪽)

그는 일상 속 마주하는 작은 것들, 이를테면 차 끓는 소리, 아침 노을과 저녁 노을, 어린아이의 울고 웃는 모습과 시장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모습 같은 걸 관찰하고 기록했다. 글감이 없다며 뭘 써야 할지 막막해하는 나에게 나침반이 되어줬다.

달라졌지만, 그대로인 세상 속에서 

글을 쓰는 과정은 쉽지 않아서, 썼다 지우길 반복하고 3시간을 쓴 글을 3초 만에 다 지워버리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겪다 보면 '글 쓰는 작가들은 이미 재능을 갖고 태어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래 이덕무의 문장을 읽으며 그의 글쓰기 과정도 나의 과정과 다른 게 없었구나 하며 위로를 받는다.
 
한 편의 글이나 한 편의 시를 지을 때마다 때로는 부처의 배에 보관하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가도, 때로는 쥐의 오줌이나 받는 데 쓰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들지 않기도 한다. 선귤당농소 <문장의 온도> (353쪽)

올해가 끝나간다. 유독 현명하다는 누군가를 붙잡고 투정을 부리고 싶은 날들이 많았다. 테스 형이든, 덕무 오빠든 붙잡고 "세상이 왜 이래"하고 목놓아 따지고 싶은 날이 많았다. 일상을 빼앗긴 채 견디는 날들로 1년을 꼬박 채웠다.

작년과 너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때가 되니 하늘은 높아졌다. 감나무에는 작년처럼 감이 열렸다. 세상이 왜 이렇냐며 따지기엔 너무 아무렇지 않은 바깥 풍경이다. 공허하다. 

공허함이 깊어져도 테스 형을 그리고 덕무 오빠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를 건진다. 어쩌면 사람들은 운 좋게 건진 조금씩의 위로로 수백 수천 년을 견뎠는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www.brunch.co.kr/@silverlee7957)에도 중복하여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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