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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마을공동체 해볼까?' 이 엄마들의 결실

[지리산활동백과] 아이들의 공부·놀이 공간 '행복안의봄날센터' 지키는 최홍성미씨

등록 2020.11.28 11:26수정 2020.11.2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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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는 지리산권 지역에 필요한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들과 공익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민간 지원단체로, 아름다운재단과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개소 3년차를 맞아 지리산권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 모임, 공간, 네트워크를 소개하는 글을 싣습니다.[편집자말]

행복안의봄날센터에서 만난 최홍성미씨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경남 함양군 안의면, 이름에서부터 파릇파릇 새출발의 기운이 느껴지는 '행복안의봄날센터'는 지역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최근 새롭게 지어진 커뮤니티 공간이다.

보통 마을의 면단위에는 이같은 역할을 하는 복지회관이 하나씩 갖추어져 있는데, 이곳은 그걸 몇 단계 껑충 업그레이드한 버전이랄까. 건물 외형도 세련된데다 내부에는 작은 도서관, 어린이교실, 동아리방, 다목적홀 등 다양한 용도의 공간이 쏠쏠하게 들어가있다.

센터와 앞뒤로 나란히 자리한 조선시대 문화재 광풍루에서 이 번듯한 건물을 바라보며 누군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일 수 있겠지만, 가장 오래된 함양과 가장 새로운 함양이 만나는 자리가 바로 이곳이 되겠다. 

사실 지난 7월 준공식을 마친 후, 코로나19 여파로 제대로 된 개관도 못해보고 내내 문이 닫혀있었다. 그사이 동료직원이 일을 그만두는 바람에 지금은 최홍성미씨 혼자 일을 하고 있다. 가을치고 날씨가 꽤 쌀쌀해지기도 하는 10월, 조금 쓸쓸하게 그러나 꿋꿋하게 '행복안의봄날센터'를 지키고 있는 최홍성미씨를 만나고 왔다. 

"한 번 둘러보세요. 여기가 작은 도서관이고요. 여기는 수업이 가능한 놀이방이에요. 2층에는..."

2층까지 꼼꼼히 투어를 시켜주고, 이 건물이 경남 제 1호의 제로 에너지 건축물이라는 깨알 소개도 덧붙인다. 우리는 1층 가장 안쪽, 성미씨의 사무실이기도 한 아늑한 '작은 도서관'에서 귤바구니를 사이에 놓고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전업은 환경운동, 현업은 교육활동, 생업은 농사

"함양에 내려온 지 10년째예요. 저희 부부는 서울에 살면서 환경단체에서 활동했고, 시부모님이 여기서 사과농사를 하고 계셨어요. 연세가 많이 드시면서 농사를 지을 형편이 안돼 함께 일을 도우려고 내려왔어요. 이제 시부모님은 농사에서 손을 떼셨고 저희가 농사짓고 있어요.

6천 평 조금 넘는데 사실 저희 두 사람이 농사짓기엔 버거운 평수이긴 해요. 진작 농사를 알았다면 못 지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건강하고 안전한 사과 생산을 위해 남편은 꾸준히 비료나 방제 등의 성분을 많이 따져보고 공부를 하고 있어요. 어른들은 관행대로 농약방에서 시키는 대로 하시게 되잖아요. 부모님 세대를 그대로 따라하자니 '그게 아니더라' 느낀거죠. 기후도 기후지만 여러모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걸 몸소 느꼈어요." 


성미씨의 생업은 원래 농사다. 서울에 '농부시장 마르쉐'가 처음 생길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데, 이날도 남편은 서울 마르쉐 장터에 갔다고. 요즘 같은 수확철에는 더더욱 사과농장 돌보기에도 바쁘지만 마음 한쪽은 사과 농장에 두더라도 몸과 나머지 마음 반쪽은 월에서 금, 9시부터 6시까지, 행복안의봄날센터를 지켜야 한다.

"안의는 면 소재지 중에선 큰 편이에요. 안의면에는 초·중·고등학교가 다 있거든요. 게다가 여기가 조금 특별한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휴관이 끝나고 다시 문을 연 지 2주. 그 2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도서관을 찾아와 책을 읽다 가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 있었다. 점잖은 그 모습이 신기하다고 생각하던 최홍성미씨는 어느 날 어르신으로부터 안의에 관한 귀한 역사를 듣게 됐다.

"어느 날은 그 분과 담소를 나누게 됐는데, 저는 너무 귀중한 이야기인 것 같아 받아 적어야 하나 싶었지만 일단 듣고만 있었어요. 어르신 말씀은 전 세계의 어느 학교도 안의중학교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진 학교가 없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안의가 어떤 곳인 줄 아느냐', '대단한 곳이다' 하면서 이야길 들려주시더라고요."

알고보니 안의는 수많은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한국 아나키스트들의 성지였다.

"제가 생각하기로 그 세대의 어르신들이 그런 배경 속에서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살아오셨던 것 같아요. 그 다음 세대 어른들은 어떻게 움직였는지 모르지만, 여전히 자부심은 강한 것 같아요. 함양군민이 아니라 안의군민이라고 할 정도로요." 

귀농·귀촌인이 많고 동네 분위기 활달한 산청에서도 타지에서 살다온 내가 적응해가는 것이 녹록지 않았다. 시간과 마음이 꽤 많이 드는 일이라 나는 여전히 최적화 진행중인 새내기 주민이다.

귀농·귀촌인에게 꽤 열려있는 산청에서도 그런데 하물며 자부심도 강하고, 정서가 견고한 이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고, 새로운 일을 꿈꾸며 살아나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그래도 10년 차면 동네에서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 다 겪어보고 새내기 티도 벗었을까. 그렇담 한결 능숙하게 뭐라도 일 좀 벌여볼 수 있지 않을까.

안의 엄마들의 분투
 

행복안의봄날센터에서 만난 최홍성미씨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최홍성미씨는 지난 2018년부터 '안의사랑교육공동체'에 합류해 동네 엄마들과 아이들 교육을 위해 사부작사부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공동체 초창기 멤버들은 공동육아를 했어요. 구세군 교회에서 사관(성직자)하시던 분이 아이 키우는 엄마였거든요. 그 분이 중심이 돼서 사람들 모아서 책놀이도 하고, 여러 가지 새로운 교육을 시도해 본 거에요.

당시 몇몇 엄마들을 교사로 구성해서 '사랑듬book 문화교실'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요즘으로 치면 마을교사 같은 거죠. 저도 그 시기 즈음 주변 엄마들과 교류하면서 공동체를 알게된 거에요. 그런데 그 문화교실을 이끌던 사관이 다른 곳으로 발령받아 가게 되면서 공간도 바뀌고 활동할 사람도 더 필요해졌어요. 그 때 제가 합류하게 된 거예요." 


그때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와의 인연도 시작됐다.

"처음에 저흰 공동체가 뭔지 잘 몰랐어요. 깊은 생각 속에서 시작했다기 보다 말그대로 '공동', '육아'였던 거죠. 그런데 같이 공부를 좀 해보자, 다른 지역은 어떻게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 설계해보자는 차원에서 선진 사례들을 모으고, 마을공동체를 탐방하게 됐죠.

잘 운영되는 다른 곳들이 너무 부럽고 좋았고, 그래서 저흰 허탈했어요. '우린 어떻게 하지? 결과는 멋진데, 저렇게 되려면 과정은 어떻게 밟아야 하지?' 하고요. 환경이 다르니까요. 안의면에서 어떻게 꾸려나가야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다들 아이들 키우고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인데, 시간과 공을 그만큼 들일 수 있을까 걱정됐죠."


최홍성미씨를 비롯한 안의의 엄마들은 다채로운 교육과 따뜻하고 말랑한 공동체에 목말라 있었지만, 막상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 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다른 곳들을 둘러보고 와서 꿈이나 바람들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래서 군수나 의원들을 만나서 아이들을 함께 키울 수 있는 공간과 환경을 만들어 달라 제안했는데 다들 격려하고 응원하기만 할 뿐, 막상 저희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았던 거죠. 그래서 의기소침하고 지치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들은 아이들을 모아 함께 놀고 배우는 일을 이어갔다. 

환경운동을 했던 최홍성미씨는 아이들과 자연을 들여다보는 활동을 꼭 하고 싶었다. 그래서 2019년에는 '초록꿈틀 자연학교'를 열기도 했다. 안의에 살고 있는 아이들 30명과 함께 안의에 어떤 동물들이 사는지, 강에는 어떤 물고기들이 사는지 다양한 자연 환경을 관찰하고 체험하는 활동이었다.

"안의면은 덕유산과 지리산을 둘러싸고, 진주 남강의 최상류 지역으로 풍부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는 곳이에요. 가까운 곳에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접하며 산다는 것은 큰 행복이고 감사함이죠. 초록꿈틀 자연학교를 열었을 때, 생명을 마주하는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요. 가능하다면 지속적으로 이곳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자연의 소중함과 우리 마을의 가치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멀리서 보기에 참 대단한 엄마들이라고, 어떻게 저렇게 재미난 일들을 할까 생각했는데, 보이는 것처럼 쉽게 술술 풀리는 것만은 아니었나보다. 모두 아이들 돌보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느라고 하루가 모자란데, 마을공동체 일까지 병행하자니 점점 무리가 된 탓이다.

"지난해에는 대표를 맡고 있던 김은경씨마저 상황이 여의치 않게 돼 공동체를 이어갈지 말지 힘든 시간들을 보냈어요. 그래도 여지껏 어렵게 일궜는데 조금만 이어나가보자 하고 대표를 제가 이어받았어요."

억지로 뭘 하지 않아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니, 어떤 때는 그렇게 버티고 있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저도 상황이 호락호락하진 않았는데, 이어 가야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은 내가 1년 동안 해볼게, 돌아가면서 하는 거야' 했어요."

그렇게 임시방편 삼아 최홍성미씨가 버팀목을 자처했다.  

봄날이 온다

 

고즈넉한 광풍루 뒤에 자리잡은 행복안의봄날센터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색으로 꾸민 행복안의봄날센터의 도서관 공간 ⓒ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그러던 중 함양군에서 국토교통부 예산을 받아 '행복안의봄날센터'를 건립했고 그곳에서 교육 프로그램과 공간을 맡아달라는 면의 제안을 받았다. 센터가 지어지는 동안 담당 공무원들이 여러차례 바뀌길 거듭했고, 내용은 계속 달라졌다. 결국 최홍성미씨가 행복안의봄날센터에 정식으로 채용돼 아이들 교육 프로그램뿐 아니라 센터 업무 전반을 맡게 된 거다.

아이들과 월세 걱정없이 공부하고 놀이할 수 있는 작은 공간 하나를 그토록 애타게 바랐는데. 모두가 지치고 포기하고 싶었던 뜻밖의 순간에 센터가 찾아왔다. 물론 그만큼 방대한 업무까지 뒤따르겠지만, 든든한 공간을 얻었으니 여기서 그간 꿈꿔온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만큼 천천히'라도 잘 펼쳐가면 좋겠다. 

행복안의봄날센터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이제 막 재개관했다. 아직 안정된 것이 없고 알아주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최홍성미씨는 다른 동료들과 그리고 안의의 더 많은 이웃들과 천천히 함께 가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최홍성미씨는 공유부엌도 꼭 열어보고 싶지만 주변을 두루 살피면서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 있단다. 언젠가는 상상만 했던 일들이 여기서 하나 둘 씩 실제로 펼쳐질 테니, 이젠 적어도 월세 낮은 곳을 찾아 여기저기 문 두드리지 않아도 될테니, 서두르고 맘 졸이지 않아도 된다. 여기서 아이들이 뒹굴뒹굴 놀기도 하고, 재잘재잘 공부하고, 책도 함께 읽고, 왁자지껄하게 떡볶이 만들어 먹는 풍경을 볼 날이 머지 않았음을 느낀다.  

소파 방정환 선생 말씀하시길, 어린이는 가장 새로운 사람이라 했다. 뿌리가 근본이라고 새싹을 누르면 그 나무는 죽어버린다고 했다. 아무리 귀하고 오래된 말씀이라 해도 그것으로 아이들의 뻗어가는 영혼까지 막을 수는 없다. 뿌리가 튼튼한 만큼 새싹을 위해야 그 나무는 튼튼하게 자랄 수 있다.

튼튼한 뿌리를 가진 안의마을에서 새로운 시대의 새 인물인 아이들이 마음껏 피고 자랄 수 있도록 '행복안의봄날센터'만큼은 아이들의, 그리고 어른들의 새로운 모험과 배움에 활짝 열린, 함양에서 가장 새로운 공간이 되면 좋겠다.

글 | 푸른
사진 | 임현택
기획/진행 | 누리

Author 푸른
내 이름도 별명도 살고 싶은 모습도 '푸른'. 나는 따뜻하거나 뜨거운 사람. 
어린이의 벗 되어 살고 싶다. 어린이 해방을 꿈꾸며 산청에 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인터뷰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홈페이지와 아름다운재단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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