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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수능' 앞둔 고3 수험생들에게

[아이들은 나의 스승 214] 수능 따위에 일희일비 하기엔 인생은 길고 소중하다

등록 2020.11.26 21:13수정 2020.11.26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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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고3 학생들이 9월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여자고등학교에서 9월 모의평가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9월 모의평가는 수능 출제기관인 평가원이 본 수능 이전에 실시하는 마지막 모의고사다. ⓒ 연합뉴스

  
갑자기 늘어난 확진자 수에 심란할 줄 안다. 지난 5월 등교 개학을 한 이후 단 한 번도 학교를 쉬지 않았는데, 수능을 코앞에 두고 느닷없이 원격수업에 들어가 당최 적응이 안 된다는 하소연을 여기저기서 듣게 된다.

그러잖아도 긴장의 연속인데, 수능을 앞두고 비상이 걸렸다는 뉴스가 불안을 더더욱 부채질하는 듯하다. 이 와중에 교문이 닫힌 학교가 수백 곳이고, 지금도 교사와 학생 확진자가 나오고 있으니 뉴스를 탓할 건 못 된다. 수능을 연기하자는 주장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한편 오직 수능에 맞춰 12년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코로나가 대수냐는 분위기도 읽힌다. 수능만 잘 볼 수 있다면 코로나쯤은 걸려도 좋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친구들도 여럿이다. 농담일지언정 건강과 생명을 명문대 진학과 맞바꿀 수 있다는 말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대체 수능이 뭐길래,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역병에 저리 담담할 수 있을까. 코로나보다 더한 감염병도 언젠가는 벗어나지만, 학벌은 영원히 낙인으로 남는다는 걸 이유로 댄다. 우리 사회의 학벌 구조가 너희들의 어깨를 얼마나 짓누르고 있는지 다시금 깨닫는다.

수능에, 학벌에 저당 잡힌 너희들의 신산한 삶에 무슨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위로는커녕 이런 뒤틀린 구조를 만든 기성세대로서 참회가 선행되어야 마땅할 테다. 한낱 수능과 학벌이 배움의 종착역인 사회라면, 더는 미래를 꿈꿀 수 없다.

명색이 교사로서 차마 너희들에게 '수능 대박' 운운하진 못하겠다. 솔직히 아는 만큼 실수하지 않고 답안지에 옮겨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나아가 친구를 경쟁자로 여겨 그를 딛고 올라서야 한다고 주문을 외거나, 섣부른 요행을 바라는 건 악행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오히려 수능과 학벌이 별것 아니라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재능은 지금과 확연히 다를 것이라는 미래학자들의 말을 다시 읊으려는 건 아니다. 대학을 졸업했거나 천신만고 끝에 명문대에 진학한, 경험자로서 너희 선배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청춘에게 빚진 우리 역사
  
'코로나 수능'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부담감은 잠깐 내려두고, 너희들과 청춘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 내 나이 어느새 반백 살이 넘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들 앞에서 아직까진 이팔청춘이라며 호들갑을 떨곤 했다. 민망하지만, 난 아직도 청춘이라는 말에 가슴이 뛴다.

이팔청춘! 청춘이라고 하면 이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알다시피, 인생에서 가장 순수하고, 혈기 왕성하고, 열정이 넘치는 시기가 열여섯 즈음이라는 뜻이다. 이미 열여섯을 지나고 낼모레면 스무 살이 되는 너흰 지금 이팔청춘의 끝자락인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 이몽룡이 성춘향과 만난 것도 이때이고,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 급제를 꿈꾸던 나이도 이즈음이다. 조선 시대 최고 학부 성균관 유생 생활이 시작되는 때도 이때이고, 대개 혼사가 이루어지는 때도 인생의 봄인 이팔청춘 즈음이었다.

이팔청춘이 과거 봉건 시대에 등장한 개념인 건 맞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 우리 몸의 생물학적인 변화가 다를 리는 없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정보화 사회로 급격하게 변모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신체의 발달과 지적 성숙도가 멈추거나 더뎌졌을 리는 없지 않나.

그런데 채 100년, 아니 50년도 안 돼 청춘과 청년으로 간주되는 나이가 대폭 늦춰져 버린 것 같다. 정치권에서는 청년위원회를 꾸려 청년의 범주를 40대 중반까지로 넓혀 놓기도 했다. 그 기준대로라면, 50줄에 갓 접어든 나도 청년이라 우길 수 있을 것 같다.

청년의 범주가 40대까지 늘어난 까닭인지 '원조 청춘'이었던 10대 후반의 나이는 그저 '어린이'로 치부되는 모양새다. 법적으로 미성년자로 규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말과 행동에도 판단력이 부족하고 미숙하다는 꼬리표가 붙는다. 이미 덩치는 산만한데 말이다.

안타깝게도 10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은 완고하다. 선거권을 만 18세로 낮추는 데만도 수십 년이 걸릴 만큼 철부지로 얕잡아 본다. 법으로 권리를 제한하고, 오랫동안 교육을 통해 학습되다 보니, 이젠 당사자인 너희들 스스로가 미성숙하다는 고정관념을 갖게 된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책임지는 일에서 '자유롭게' 된 것이다. 판단과 선택이 배제된 상황에서 책임질 일 또한 사라진 셈이다. 10대와 20대는커녕 30대까지도 나이 든 부모의 품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비단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만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과거의 청춘은 이렇지 않았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 아니라 한 세기 전, 아니 불과 몇십 년 전의 이야기다. 청춘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간 주축이었고, 나아갈 방향을 밝혀준 등대 구실을 했다. 우리 역사는 청춘에 빚졌다고 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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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 49주기 추도식 ⓒ 김종훈

 
증거 삼아 사례를 소개하려니, 너무 많아 걱정이다. 바로 이달 11월과 관련된 현대사 인물만 해도 차고도 넘친다. 11월 달력에 표기된 역사적 사건마다 그 배후에는 10대의 학생들과 기껏해야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달 초 11월 3일은 광주학생항일운동 9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라는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이끈 이들은, 알다시피, 10대 후반의 광주고보, 지금의 광주일고 학생들이었다.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지도자 장재성도 고작 21살이었다.

또, 11월 10일은 만주에서 의열단이 창설된 날이다. 조선 총독부가 내건 현상금이 백범 김구 선생보다 많았다는 약산 김원봉이 세운 대표적인 항일운동 단체다. 당시 제국주의 타도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한 김원봉의 나이 또한 22살에 불과했다.

그런가 하면, 11월 18일은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지 115년이 되는 날이었다. 조약이 체결되자 전국에서 벌떼처럼 의병이 봉기했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이 태백산 호랑이라고 불렸던, 평민 의병장 신돌석이다. 수능과 모의고사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라 익숙할 거다.

이른바 '을사 의병'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되고 있지만, 그가 처음 의병을 일으킨 때는 그로부터 10년 전이다. 명성황후가 일본의 자객에 의해 시해된 1895년 을미년에 이미 의병장으로 이름이 났다. 1878년에 태어났으니, 그의 나이 고작 17살 때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11월 13일은 꼭 50년 전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고 외치며 22살 전태일이 제 몸에 불을 댕긴 날이다. 배움은 짧았으나, 자신은 수돗물로 배를 채울지언정 버스비를 털어 가난한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 먹일 정도로 가슴 따뜻했던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거듭 말하지만, 파란만장했던 우리 현대사는 10대와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공동체를 위한 그들의 열정과 헌신을 배우기 위해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같은 의미 아닐까.

움츠러들거나 스스로 옥죄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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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6일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서 모의고사를 본 고3 학생이 문제지를 들고 교문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수능을 앞둔 고3 수험생이라며 움츠러들거나 스스로 옥죄지 말길 바란다. 너희들은 지금 다시 오지 않을 인생의 황금기인 이팔청춘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한낱 수능 따위에 애면글면하고 일희일비하기에는 너희들 앞에 펼쳐질 인생은 길고도 소중하다.

장담하건대, 이팔청춘 너희들 각자의 가슴 속엔 분명 장재성이라는, 김원봉이라는, 신돌석이라는, 전태일이라는 열정이 꿈틀거리고 있다. 우리 사회는 너희들에게 자꾸만 미래를 위해 현재를 견디라고 강요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주문인지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수능에 청춘이 저당 잡혀서는 곤란하다.

마음 졸여가며 수능 디데이를 손꼽는 건 너희 가슴 속 열정을 쓸데없이 소모하는 일이다. 부디 허깨비 같은 '수능 대박'의 염원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에 열정을 쏟자. 체력은 비축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열정은 나눠 쓸 수 없다. 오늘 하루, 이팔청춘 너희들의 열정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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