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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작동시킨 무선전화기, 악마를 깨우다

[리뷰] 영화 <콜>

20.11.24 14:51최종업데이트20.11.2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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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글에는 영화 <콜>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콜> 스틸 컷 ⓒ 넷플릭스

 
올 상반기 기대작이었던 <콜>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개봉을 연기하다 결국 넷플릭스 공개를 택했다. 오는 27일 공개를 앞두고 미리 만나본 영화는 극장 정식개봉을 하지 못한 게 아쉬울 만큼 흡인력 있는 스릴러와 탄탄한 설정으로 높은 완성도를 선보였다. 단편영화 <몸 값>으로 주목받은 이충현 감독은 첫 장편 데뷔작인 이 작품에서 수준 높은 연출력을 선보이며 이후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콜>의 설정은 앞서 <프리퀀시>, <동감>, 드라마 <시그널> 등이 선보인 타임슬립의 구성과 같다. 통신장비를 매개체로 과거와 현재의 인물이 소통하고 미래의 정보를 통해 과거를 바꾼다. <시그널>의 무전기처럼 이 작품에서는 무선전화기가 그 역할을 한다. 차이라면 인물에 있다. <프리퀀시>나 <시그널>에서 무선을 나누는 상대는 조력자다. 만약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 중 악인이 있다면, 어떤 전개가 이어질까. 이 아이디어가 작품의 핵심이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서연(박신혜 분)은 기차에서 스마트폰을 잃어버린다. 20년 전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 그녀는 그때의 경험 때문에 불치병에 걸린 어머니를 미워한다. 어머니가 가스불을 잠그지 않아 사고로 아버지가 죽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자신의 스마트폰을 찾기 위해 집에 있던 무선전화기를 작동시킨 서연은 이상한 연락을 받게 된다. 그 연락의 주인은 영숙(전종서 분)이다. 놀랍게도 영숙은 20년 전 이 집에 살던 여자다.
 

영화 <콜> 스틸 컷 ⓒ 넷플릭스

 
두 사람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아버지가 없다는 점,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품고 있다는 점, 친한 친구가 없어 외롭다는 점 등등. 전화를 주고받던 두 사람은 어느새 친한 친구가 된다. 그리고 서연은 과거를 바꾸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된다. 20년 전이라면 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 다만 나비효과 이론처럼 한 순간이 바뀌면 다른 순간 역시 바뀌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떨칠 수 없었던 서연은 영숙에게 아버지를 살려줄 것을 부탁한다.
 
서연과 통화를 하는 영숙의 목소리나 이미지는 소녀 같다. 어린 시절부터 무당인 어머니에 의해 감금당하고 학대당한 영숙은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때문에 서연과 영숙은 순수한 우정으로 서로 앞에 놓인 고난을 이겨내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시점에서 이뤄지는 장르적 변화는 스릴러의 묘미를 선보인다. 줄거리를 모르는 관객이라면 다소 당황할 수 있을 만큼 흥미로운 장면을 선사한다. 서연은 아버지가 살아나면서 마음의 갈증을 채우고 사랑이 채워진 서연에게 영숙은 차순위가 된다. 반면 서연만이 인생의 유일한 즐거움인 영숙은 변화된 상황에 분노를 느낀다.
 
영화 역사상 최고의 여성 악당 중 한 명인 <미져리>의 애니 윌킨스는 애증을 원동력 삼아 범죄를 저지른다. 그녀는 자신이 애독하는 소설의 작가 폴에게 애정을 느끼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소설을 써주지 않자 증오하기 시작한다. 애정이 클수록 증오는 더 부풀어 오른다. 상대를 무너뜨리고 부수고 싶은 명확한 동기는 더 큰 광기를 불러일으킨다. 영숙의 광기가 폭발한 순간, 극은 롤러코스터처럼 질주하기 시작한다. 
 

영화 <콜> 스틸 컷 ⓒ 넷플릭스

 
이 속도에서 느껴지는 스릴감이 특히 무서운 건 서연과 영숙이 맞닿아 있는 시간 때문이다. 영숙은 서연을 비롯해 그 가족에게 공격을 가할 수 있지만, 서연은 그럴 수 없다. 시간의 차이로 인해 물리적인 접촉이 불가능하다. 서연 입장에선 올해 초 개봉한 투명인간과의 사투를 그린 <인비저블맨>보다 더 어려운 적과 싸우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은 어린 시절의 자신과 가족이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극적인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기존의 타임슬립물이 과거와 현재의 인물이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구조라면, <콜>은 한 통의 전화가 악인을 깨워 현재와 과거가 싸우는 모습을 연출한다. 다소 위험할 수 있는 역발상임에도 두 주인공의 우정이 변질되어 가는 과정과 영숙의 어머니가 왜 딸을 감금해야 했는지 이유를 단계적으로 보여주며 탄탄한 구성력을 선보인다. 스릴러의 장르적 매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가족 드라마의 요소가 갖춰야 하는 측면도 충족한다. 
 
만약 올해 초 예정대로 영화가 공개되었다면 누구보다 주목받았을 배우는 영숙 역의 전종서가 아니었나 싶다. <버닝>을 통해 혜성처럼 데뷔한 이 배우는 내면의 악을 깨우는 연기를 통해 악마를 마주한 듯한 섬뜩함을 보여준다. 여기에 극의 중심을 잡는 서연 역의 박신혜와 초반 공포를 조장하는 영숙의 어머니 역이 이엘, 모성애를 통해 극적인 깊이를 자아내는 서연 어머니 역의 김성령 등 여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 역시 극의 완성도를 높인 요소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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