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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헝쓰냐, 프랑스냐...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현지식대로, 우리식대로? 외국어 표기법,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등록 2020.11.29 23:18수정 2020.12.0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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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마르세유, 베르사유, 앙리... 프랑스인은 못 알아들을 겁니다>에서 이어집니다.


'Benin' 출신 학생에게 한국어로 나라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알려주기 위해 현재 쓰이는 외국어표기법과 구글 지도 표기법을 비교해봤다. 국제음성표기법에 의해 원칙적으로 발음을 옮겨적는 외국어표기법은 현재 파리 지역의 프랑스어와 너무나 동떨어졌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표기 방법이 일관되고 눈에 잘 들어온다는 장점이 있다.

구글 지도는 파리 지역 발음을 들리는 대로 받아적어서 현지 발음과 비슷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통일성이 없고 검색할 때 혼란스러우며 원래 알파벳을 떠올리기 어렵다는 문제점들이 있다.  

외국어 표기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쯤에서 외국어 표기의 원칙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겠다. 외국어 단어를 한국어로 표기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가장 닮은 발음으로 옮기는 것인가? 한국어 사용자들끼리 쉽게 그 대상을 지칭하고 이해함으로써 한국어 내의 의사소통을 편리하게 하는 것인가?

표기법에 의한 답은 명확하다. 닮은 발음 찾기가 아니라 편리한 국어 생활이 외국어 단어 표기의 목적이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프헝쓰 대신 프랑스, 도이칠란트 대신 독일이라고 쓴다. '줘니-붜'도 아니고, '쥬네브'도 아니고, '겐프'도 아니고, '지네브라'도 아닌 '제네바'를 쓴다. 한국어 사용자들이 편하게 쓰고 서로 이해하는 단어를 쓰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최소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우선 당사자들의 발음과 심하게 동떨어진 발음으로 부르게 되어 현지인들과 소통이 어려워지는 점이 있다. 스위스에서 제네바라고 말하면 한국인 빼고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코랑탱 가는 길을 물으면 현지인은 알아듣기 힘들어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우리 식대로 부른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어 이름을 자기들 편의대로 옮기는 것을 막기 힘들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한동안 서울을 漢城(한쳥)이라고 부르기를 고집했다. 경(京)은 국가의 수도, 성(城)은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제후국의 수도를 의미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호칭을 바꿔달라고 계속 요구했다(지금은 서울을 首尔(셔우얼)이라고 부른다).

프랑스에서는 미국의 도시인 뉴올리언즈를 여전히 프랑스어식으로 누벨 오를레앙이라고 부르는데, '거기 원래는 프랑스인 땅이었지'라는 뉘앙스를 풍긴다(잔다르크의 고향이 바로 오를레앙이다).

우리도 할 말 없다. 몽골을 중국이 음차한 대로 몽고(蒙古)라고 불러왔었는데, 어리석고 낡았다는 의미가 있어 몽골 사람들은 몽고란 호칭을 좋아하지 않았다(지금은 몽골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자리잡은 이름은 원래대로 부르지만, 새롭게 옮기는 이름은 최대한 현지 발음과 닮은 음역을 쓰는 이원 구조로 갈 수 있다. 그래서 프랑스는 프랑스로 부르고 파리는 파리로 쓰지만 Saint-Saphorin은 생-사포랭(현재의 표준 표기) 대신 더 닮은 발음으로 바꿔 쓰는 이원 접근법은 어떤가? 하지만 '더 닮은 발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는 여전히 어렵다.

외국어 표기의 네 가지 방향

휴! 'Benin' 하나 가지고 여기까지 먼 길을 왔다. 그 과정에서 외국어 표기에서 최소 네 가지 원칙이 충돌함을 알 수 있다.

1) 국제음성표기법에 따라 표기한다는 원칙
2) 그 언어 종주국 수도의 현재 발음에 따라 표기한다는 원칙
3) 편리한 국어 생활을 위해 한국인 사용자들끼리 이해하기 쉽게 지칭한다는 원칙
4) 그 지역의 당사자들이 스스로 지칭하는 발음을 따른다는 원칙

각 원칙은 나름대로의 타당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모든 한국어 사용자를 만족시키는 표기법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처음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현재의 프랑스어 표기법도 합리적인 부분이 있었다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결국은 어정쩡한 타협점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각자 부르고 싶은 대로 쓰자는 소수의견도 있지만, 받아들이기 어렵다. 의사소통이라는 언어의 기본 기능이 붕괴될 것이고, 요즘처럼 검색이 중요한 세상에서 문서마다 명칭이 다르면 효율성이 안드로메다로 간다. 제네바에 대한 내용을 검색했는데 제각각 지네브라, 줘니이버, 겐프, 쥬네브, 제네바라고 쓴다면 혼란의 도가니에 빠질 터! 그래서 공인된 표기법은 필요하다.)

완전히 한국어 안에 외래어로 자리 잡은 단어는 그대로 둔다. 국제음성표기법을 참고하고 타 언어 표기와의 형평성을 고려하되, 모음추이(母音推移)를 반영하여 파리 지역의 발음을 음차한다. 세계 각 지역의 고유명사는 지역민들이 스스로 부르는 발음에 가깝게 옮긴다. 이 정도가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물론 '외래어로 자리 잡은 단어'가 무엇인지에 대해 또 갑론을박이 있을 수밖에 없다. 또 파리 지역 발음을 어디까지 비슷하게 옮길 것인지 역시 의견이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예를 들어 Saint-Saphorin의 표기를 생각해보자.

쌍-싸포항(구글 지도식) ↔ 쌍-싸포랑 ↔ 상-사포랑 ↔ 생-사포랭(국제음성표기법)

왼쪽 끝은 들리는 대로 적는 구글 지도 방식이고 오른쪽 끝은 정해진 음성기호대로 적는 현재의 표기법 방식이다. 스펙트럼상의 여러 후보가 존재한다. 각자 지지하는 이름이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언어들의 표기법도 고려하고 알파벳을 떠올리기 쉬우려면 상-사포랑이 적당하다고 본다. 자음 표기는 그대로 두고, 모음 표기만 파리 지역에 맞춰 변경하는 것이다.
 

생-사포랭? 쌍-싸포항?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스위스 라보(Lavaux)지역의 마을 Saint-Saphorin. 현재의 외국어표기법으로는 생-사포랭이라고 적고, 들리는 대로 적으면 쌍-싸포항이 된다. (캔버스에 아크릴과 유화) ⓒ 김나희 본인 그림

 
그래서 결국 Benin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나라를 뭐라고 부르는지 찾아봐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 한국어 학생에게, 본인의 가족들이 Benin을 뭐라고 부르는지 물어보았다. '베냉'이라고 한다. 유튜브에서 Benin 방송도 찾아봤다. Benin 현지 방송에서 '베냉'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파리 지역에서 많이 진행된 모음 변화가 베냉에서는 일어나지 않아 in을 여전히 '앵'으로 발음하고 있고, 이것이 한국의 1986년식 외국어 표기법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돌고 돌아서 현재 대한민국의 표기법대로 '베냉'이라고 쓰는 것이 맞다는 걸 확인했다. 학생에게는 이 모든 과정을 말하지 않고 단지 '베냉'이라고 쓰면 된다는 짧은 결론만 알려주었다. 학생의 한국어 실력이 아직 짧기 때문이다.

휴!
#제네바 #베냉 #한국어 #프랑스어 #표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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