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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 베르사유, 앙리... 프랑스인은 못 알아들을 겁니다

시대착오적 외래어표기법과 내 멋대로 구글 지도... 프랑스어를 '정확히' 발음하려면

등록 2020.11.29 20:27수정 2020.11.29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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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수업에서 만나는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학생들에게서 나도 많이 배운다. 첫 순간부터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를 맞닥뜨리기도 한다. "저는 (한국) 사람이에요"에서 괄호 속을 각자 나라로 바꿔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바로 여러 학생들이 손을 들고 묻는다. "나라가 여러 개예요. 어떻게 말해요?"

아차, 부모의 국적이 다른 경우, 소속감을 갖는 모국이 두 개가 되는 것이다! 조부모들의 국적이 다르다면 심지어 모국이 서너 개일 수도 있다. 이런 건 교재에 없었는데... 이럴 땐 어떻게 말하더라?

"저는 스위스-튀니지 사람이에요."
"저는 영국하고 필리핀 사람이에요."
"저는 프란스-이따리아 사람이에요."
"저는 스파인하고 덕일 사람이에요."


귀여운 실수들. 슬며시 웃으며 외국어의 한국어 표기법에 맞게 가르쳐준다.

"프란스 → 프랑스, 이따리아 → 이탈리아, 스파인 → 스페인, 덕일 → 독일. 이렇게 써야 해요."

이 주변 지역 이름도 가르쳐준다.

"'제네바'라고 써야 해요. 쥬네브(Genève; 제네바의 프랑스식 이름), 겐프(Genf; 제네바의 독일식 이름), 지네브라(Ginevra; 제네바의 이탈리아식 이름)라고 부르면 한국인은 아무도 못 알아들어요."

그러고 보니, 딱히 영어식 발음도 아니다. 영어식 지명 'Geneva'를 한국어로 가장 가깝게 옮기면 '줘니-붜'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제네바 발음을 따라하며 웃는다.
 

제네바의 상징인 젯또 분수(Jet d'eau) 제네바? 쥬네브? 겐프? 지네브라? 줘니이붜? Geneva를 한국어로 어떻게 표기해야 할까. 정답은 없다. ⓒ 김나희 본인 그림

 
'취리히'를 칠판에 쓰고 취.리.히.라고 또박또박 읽어줬다. 어디일까요?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Zürich를 '취리히'라고 써요. Zürich라고 발음하면 아무도 못 알아들을 거예요."

학생들이 박장대소한다. 그럴 만하다. 'Zürich'와 취리히는 도쿄과 동경만큼이나 완전히 다른 발음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서툰 글씨로 제네바, 취리히를 열심히 받아적는다.

다음 학생의 차례.

"저는 스위스하고 프랑스하고 베닌 사람이에요."

베닌? 베닌이 어디지? 철자를 불러달라고 했다. 'Benin'. 여전히 모르겠다. 모르는 나라이니 '베닌'이 맞는 표기인지도 모르겠다. 미안하다고 하고 일단 넘어갔다. 수업이 끝난 후 찾아보았다. 한국어 표기법으로는 '베냉'이었다.

베닌? 베낭? 베냉?
 

베냉 지도 베냉은 서아프리카의 민주주의 국가이다. ⓒ 구글지도

 
베냉은 서아프리카의 국가로, 빈국이지만 상대적으로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 동족을 노예로 팔아넘긴 노예사냥꾼들의 후손들이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고, 노예사냥을 당했던 내륙 지역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현재진행형의 비극을 안고 있다. 부두교의 발상지. 한반도보다 넓고 인구는 스위스보다 많은데도 나는 이 나라에 대해 아는 게 정말 하나도 없었다. 일단 'Benin'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조차 모르겠다.

몇십 년 전에 서구로 유학 갔던 분의 사연이 떠올랐다. 언어 수업을 들을 때 나라 이름 100개 있는 표를 암기하라는 숙제를 받았는데, 그중에 한국이 없어서 서러웠다고 한다. 한국은 주요 국가 100개 중에 들어가지도 않는 나라였던 것이다. 이 베냉 학생도 그런 기분이겠지 싶어 제대로 표기법을 찾아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프랑스의 식민지였고 여전히 프랑스어가 공용어이기 때문에 'Benin'은 표준 프랑스어식으로 발음하면 '베낭'에 가깝다. 'in'은 입꼬리를 넓게 벌리고 '앙'하며 콧소리를 내는 발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한국어로는 '베냉'이라고 쓸까? 프랑스 발음 표기법을 찾아보았다.

충격과 공포의 프랑스 발음 표기법

1958년 '로마자의 한글화 표기법'에서는 'Paris'를 빠리, 'vacances'를 바깡스, 'coupon'을 꾸뽕으로 적는 등 프랑스어의 파열음을 된소리로 표현하고 있으나 1986년 된소리를 쓰지 않는 '외래어표기법'이 고시되어 현재까지 유효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1986년도판 프랑스어 표기의 세칙은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 투성이었다.

숫자 1, 2, 3(un, deux, trois)은 표기법에 따르면 현재 '욍, 되, 트루아'지만, 실제 파리 지역 발음은 '앙, 드, 트화'에 가깝다. '앙'소리 나는 1을 '욍'이라고 적다니! 또한 앵발리드(Invalides)는 앙발리드, 코랑탱(Corentin)은 꼬헝땅에 가깝다.

'마르세유, 베르사유, 몽트뢰유'로 표기하고 있는 Marseille, Versailles, Montreuil를 한국어로 받아적으면 각각 '마흐쎄이, 베흐싸이, 몽트회이'에 가깝다. 자음은 관행대로 적는다 해도, '마르세이, 베르사이, 몽트레이'가 된다. 어떤 경우든 '유'는 절대 아니다!

굳이 이해하려고 노력하자면 파리 중심의 프랑스 북부의 발음이 빠르게 변해왔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봐줄 수 있다. 여전히 다른 지역에서는 국제음성기호에 가깝게 발음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파리 지역의 현재 발음을 음역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1958년 표기법을 28년만인 1986년에 개정했으면, 1986년으로부터 2020년까지 34년이 흘렀는데 이제 재개정할 때도 되었다고 본다. 아무튼, 현재 외국어표기법으로는 'Benin'은 '베냉'이다. 파리식 발음으로는 '베낭'이다.

내 멋대로 쓴다, 구글 지도
 

구글지도의 한국어판의 프랑스 파리 부분 오흘리와 오를리, 앙발리드와 앵발리드, 노뜨흐담므와 노트르담, 꿀레 베흑트와 쿨레 베르트, 바스띠으와 바스티유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들리는 대로 적는다는 자체 방침을 따르지만 이미 자리잡은 한국어 표기를 완전히 무시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 구글지도

 
국제음성기호에 원칙대로 맞추다 보니 파리 지역 발음과 심한 괴리가 있는 외국어표기법이 한 극단이라면, 그 외국어표기법을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고 내 갈 길 가는 또다른 극단은 구글 지도 표기이다.

구글 지도 한글판의 취지는 현지의 발음에 가장 가깝게 음차하여 구글 지도를 보고 현지 지명을 찾을 때 비슷한 소리로 현지인과 소통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유호뻬앙 죠흐쥬 뽕삐두, 아홍디쓰멍, 브하썽, 빨레 후아얄, 메히꾸흐 등 생소한 표기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완전히 독자 노선으로 가지는 못하고, 파리는 여전히 빠리 대신 파리라고 쓰고 있고 앵발리드와 앙발리드가 섞여 있다.

들리는 대로 받아적은 표기는 나름의 타당성이 있다. 처음에는 신선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구글 지도 방식의 극단 역시 문제가 있다. 하나씩 짚어보자.

우선 r은 한국인의 귀에는 가래 끓는 ㅎ소리처럼 들리지만, 그렇다고 과감하게 ㅎ을 선택하긴 어렵다. 한국어의 ㅎ과 프랑스어의 r은 다른 발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럽언어들과 공유하는 공통 단어들이 있어서, 프랑스어에서만 r을 ㅎ으로 옮기기는 곤란하다. 그랬다가 레스토랑을 헤스토항, 라디오를 하디오라고 적게 되기 때문이다. 또 r이 ㄹ에 가까운 소리가 나는 불어권도 있다.

단어마다 거센소리를 쓸지 된소리를 쓸지 매번 정하는 것은 번거롭다. 정말 들리는 대로 적는다면 스트라이크(strike)는 스뜨라이크, 스페인(Spain)은 스뻬인, 스키(ski)는 스끼, 스케이트(skate)는 스께이트로 적어야 할 것이다. 또한 프랑스어에도 파열음이 거센소리로 들릴 때가 있다. 크루아상(croissant)의 c는 ㄲ 아닌 ㅋ 소리가 난다. 그래서 표기법에서 편의를 위해 일률적으로 거센소리를 쓰기로 한 결정도 타당하며, 표기법을 무시하는 구글 지도는 혼란을 낳는다.

현지인과의 소통을 위해서라면 말로 이해를 못 했을 때 철자라도 적어서 지명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데, 구글 지도의 표기를 보고는 알파벳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엉히'가 우리가 '앙리'라고 써오던 Henri임을 떠올리기란 어렵다. '아흑듀흐 끌라흑'을 보고 Arthur Clark을 추론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맨 처음에는 실제 발음과 괴리된 외국어표기법을 보고 분개했다. 그랬던 마음이 천상천하 유아독존 구글 지도 표기법을 보고 누그러졌다. 아, 들리는 대로 '아홍디쓰멍' '꼬헝땅'으로 쓰면 또 다른 면에서 소통이 안 되고 통일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구나. 정답은 없을지도 몰라. 어쩜 이것도 답은 아닌 거야. 적당히 중간의 타협 지점을 찾아야겠구나.

'Benin' 학생에게 뭐라고 알려줘야 할지 아직도 모르는 상태로 계속 조사에 나섰다.

*다음 기사 <프헝쓰나, 프랑스냐...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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