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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선 넘지 못한 무용수, 춤으로 승화시킨 사랑

[리뷰]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20.11.19 10:41최종업데이트20.11.1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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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포스터 ⓒ (주)엣나인필름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는 국내 최대의 성소수자를 위한 영화제다. 올해 이 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는 춤에도 성별이 있다는 다소 독특한 이야기를 통해 동성의 사랑을 풀어내는 영화다. 대중적인 아이돌 춤을 보더라도 남성의 춤은 절도 있고 강한 느낌을 주는 동작이 많고, 여성의 춤은 부드럽고 가벼운 동작이 많다. 작품의 공간인 조지아 국립무용단은 이런 구분이 명확한 보수적인 곳이다.  

이곳에서 무용수를 꿈꾸는 메라비는 태어났을 때부터 춤을 췄다고 한다. 그만큼 열심히 실력을 갈고 닦았으나 인정받지 못한다. 이유는 그의 춤이 남성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길고 가느다란 팔과 다리를 지닌 메라비의 춤은 섬세하고 부드럽지만 강한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메라비가 무용수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건 아버지와 형 때문이다. 아버지는 메라비처럼 무용수였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명확한 이유는 등장하지 않지만 메라비와 같은 문제를 겪었을 것이다. 그는 그 편견을 깨뜨리고 싶어 한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메라비의 형은 공부를 잘하는 것도, 별다른 재주가 있지도 않다. 그는 다른 젊은이들처럼 자신도 공사판을 향할 것이란 걸 알고 있다. 춤 말고는 아는 게 없는 메라비 역시 형과 같은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집은 부유하지 않고 인맥이 좋은 것도 아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춤을 춰왔던 마리와 함께 파트너로 연습을 하며 기회를 엿본다.  

그러던 어느 날, 국립무용단에 새 댄서가 온다. 이라클리는 외형부터 메라비와 다르다. 메라비가 곱상한 외모에 길쭉한 몸매를 지녔다면, 이라클리는 남성적인 외모에 단단한 몸매를 보여준다. 강인함이 느껴지는 그의 춤은 단 번에 다른 댄서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두 사람의 직접적인 만남은 오디션 자리를 두고 연습이 시작되면서다. 무용단 앙상블 자리를 두고 선의의 경쟁이 펼쳐지면서 메라비는 일찍부터 연습실을 향한다.  

그곳에서 자신보다 먼저 온 이라클리를 만난 메라비는 그와 함께 연습을 한다. 작은 신체적인 접촉에도 떨림을 느끼던 메라비는 이라클리를 통해 인생의 활력을 찾게 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절대 인정받을 수 없다. 조지아의 춤에는 규정이란 게 있다. 남자는 강하게, 여자는 우아하게 춰야만 한다. 그래서 각자에게 파트너가 있다. 메라비는 오랜 시간 함께한 파트너 마리와 '형식적인' 연인 관계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누군가 마리와 연인 관계냐고 물으면 그는 그런 셈이라고 답한다. 춤에도 형식이 정해져 있듯 사랑의 관계에도 형식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무용단의 춤은 꼭 남녀가 한 쌍을 이룬다.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는 맞지 않다고 여긴다. 이런 보수적인 틀 안에서 메라비는 아픔을 경험한다. 작품은 메라비가 금단의 선을 넘는 전개보다는 편견에 의한 한계로 고통받는 모습을 더 강조한다.   

이 고통은 춤을 통해 표현되고 승화된다. 메라비의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그의 춤은 무겁다. 몸은 높게 뜨지 않고 회전은 제대로 돌지 않는다. 반면 기쁨을 느낄 때의 동작은 섬세하고 아름답다. 한 마리의 백조를 보는 듯하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스틸컷 ⓒ (주)엣나인필름

 
메라비와 이라클리의 춤이 이루는 대조 역시 흥미로운 볼거리다. 메라비가 우아한 한 마리의 백조라면, 이라클리는 거친 야수와도 같은 춤사위를 보여준다. 하늘 위의 백조와 땅 위의 야수가 어우러져 추는 춤은 서로 닿을 수 없는 거리만큼 안타까운 사랑의 감성을 보여준다. 퀴어영화가 지닌 거리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육체적인 사랑보다는 춤을 통한 감정의 교류를 통해 미적인 감각을 더한다.  

이처럼 작품은 춤을 매개체로 두 댄서의 금단의 사랑과 사회가 지닌 편견과 한계를 연결한다. 메라비는 춤 때문에 한계와 아픔을 느끼면서도, 춤을 추면서 이 고통을 승화시킨다. 특히 메라비 역의 레반 겔바키아니는 실제 조지아의 현대무용수로 활약했던 만큼 춤을 통한 감정 표현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티모시 샬라메를 연상시키는 설레는 감정연기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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