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초반 거창국제연극제 공연 모습 ⓒ 거창연극제 제공
상표권 보상금액을 놓고 거창군과 갈등을 겪던 거창국제연극제가 1심에서 승소했다.
서울중앙법원 제22민사부는 거창연극제 상표권 분쟁과 관련해 "거창군은 17억 3558만 원을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원회 측에 지급하라"라고 13일 판결했다. 30년 역사 연극제 상표권 가치를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거창연극제 상표권 분쟁은 지난 2018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부 지원이 끊기면서 한동안 파행운영되던 거창연극제는 거창군과 운영에 대한 권한을 넘기는 조건으로 상표권을 평가해 보상금액을 받기로 합의했다.
양측은 각각 선임한 전문가 감정팀이 평가금액을 산출하고 평균값을 보상금으로 지급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거창군이 선임한 전문가 평가팀은 11억 261만 원을 상표권 가격으로 평가했고, 거창연극제 측이 선임한 평가팀은 감정가는 26억 3705만 원을 산출했다. 합의서 내용대로라면 평균값인 18억 6983만 원이 상표권 보상금액이 되는 것이었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거창군이 "경제적 파급효과와 사회적 기여도에 차이가 있다"며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재평가를 요구하면서다. 거창연극제는 합의된 계약과 다르다며 약속된 보상금액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2019년 5월 제기했다.
1년 6개월의 시간 동안 법정 공방이 벌어진 것이지만, 법원은 처음에는 판결 대신 강제조정과 화해를 통해 해결하려고 했다. 2019년 12월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강제조정으로 14억 8473만 원의 금액을 거창군이 거창연극제에 지급하라고 조정했으나 거창군은 이를 거부했다.
법원은 2020년 4월 24일 재차 화해를 권고하며 거창군이 처음 감정한 상표권 평가액인 11억261만 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거창군에 의해 거부됐다.
거창군과 거창연극제는 화해 권고 이후 협의를 통해 ▲상표권 이전에 대한 보상금 8억원 ▲현 군수 임기 동안 집행위원장·예술감독 임기보장 ▲거창겨울연극제 등 삭감된 6개 사업 연극제 예산 원상회복(연 1억5000만 원~2억 원) 등 조건 등에 합의했다.
그러나 거창군의회가 화해를 이행하기 위한 거창군과 거창연극제 사이의 합의 내용을 상당 부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의회의 최종 승인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법원은 판결을 통해 합의된 금액보다 약간 낮은 17억 3558만 원을 상표권으로 집행위원회 측에 지급할 것을 선고했다. 두 차례에 걸쳐 조정과 화해 권고를 무시한 거창군에 대해 거창연극제의 요구에 근접한 판결을 내린 것이었다.
군의원들이 본연의 역할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사실 양측이 합의한 계약서를 거창군이 이행하지 않으면서 시작된 소송은 거창군이 불리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서로 합의해서 도장을 찍었던 계약을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논의하자는 것은 억지를 부리는 것과도 같은데 어떻게 이길 수 있겠냐?"는 것이 대다수 문화예술계와 지역 인사들의 예상이었다.
갈등을 해소하고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야 할 군의원들이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거창군과 거창연극제 갈등의 출발에는 이전 재임했던 군수와 군의원들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창연극제 파행은 지난 2014년부터 시작됐다. 거창연극제를 처음 만들고 이끌어 온 이종일 집행위원장이 경남예총 회장 재임 당시(2005~2009년) 보조금을 반환하지 않고 운영비로 쓴 게 문제가 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4년 새 집행위원장이 선임됐는데, 연극과는 관련이 없는 전직 군수가 거창군과의 협의를 거쳐 추대되면서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2014년 문체부는 거창연극제를 대표 지역축제로 선정하고 4억 원을 지원했으나 연극에 전문성이 없는 집행위원장이 재임하는 2년 동안 거창연극제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평가 최하 등급인 F를 받았고 지원금도 삭감됐다.
내부적인 혼란과 갈등이 생겼고, 이 과정에서 거창군의회는 연극제를 군청에서 직접 운영하라고 권고하고 연극제 예산을 삭감하기에 이르렀다. 거창군은 2017년 독자적인 거창연극제를 개최를 준비했으나, 상표권 도용 논란이 제기됐다. 거창연극제 측이 소송을 냈고, 법원이 거창연극제 측 손을 들어주면서 거창군은 행사를 목전에 둔 상태에서 급하게 이름을 바꾸는 소동을 벌여야 했다.
2019년에는 추가경정예산으로 편성된 거창연극제 지원 예산을 군의회가 삭감시키면서 거창연극제는 수년째 유명무실한 상태다. 상표권을 넘기는 것으로 정리되는 흐름이었으나 보상금에 이견이 생기면서 법정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이번 판결에 대해 거창연극제 측은 "최소한의 명예회복을 위해 판결 대신 법원의 조정과 화해를 받아들여 양보하려 했으나 거창군의회가 번번이 제동을 걸었다"면서 군의회에 유감을 나타냈다. 이어 "지역에서는 문화 예술에 대한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하는데, 법원을 통해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았다는 것이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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