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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신청 인용과 추가기소... 누군가는 책임져야 합니다

[권대희 사건] 4년 넘게 끌어온 의료사고... 이 싸움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등록 2020.11.16 16:42수정 2020.11.2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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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0.3% 확률 뚫고 재정신청 인용... 당신 덕분입니다 http://omn.kr/1qarw

가을은 저희 가족에게 괴로운 계절입니다. 대희가 죽음에 이른 수술을 받은 날이 2016년 9월 8일이었기 때문이죠. 중앙대학교 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뒤에도 깨어나지 못했던 대희는 스물다섯 번째 생일도 병원 응급실에서 맞았습니다. 9월 26일이었습니다. 대희는 응급실에서 49일을 버티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희가 죽고 한 달여가 흘러 저희는 경찰에 고소장을 냈습니다. 약 2년에 걸친 수사 끝에 경찰은 2018년 10월 5일, 업무상과실치사와 무면허 의료행위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죠.

의사와 병원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면서 핵심 쟁점이 된 무면허 의료행위가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된 것도 이맘때쯤이었습니다. 2년이나 수사한 사건을 재수사한다며 다시 1년간 쥐고만 있던 성아무개 담당검사는 2019년 가을 무면허 의료행위를 불기소 처분했습니다. 가을만 되면 온 집안에 무거운 공기가 도는 것도 이런 기억 때문입니다.

어느덧 동생이 죽은지 4년, 이제 가슴에 묻고 놓아줘도 좋으련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의료진 책임을 묻는 형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있었던 억울한 일들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
 

서울중앙지검 앞 1인 시위 검찰의 등돌림은 어머니를 1인 시위로 떠밀었다. ⓒ 권태훈

 
1차 가해는 자본에 의해 일그러진 한국의 미용성형과 이를 감독하지 않은 보건당국이 저질렀습니다. 수백 번 돌려본 수술실 CCTV에 담긴 내용은 충격적이었죠. 언급도 없었던 초짜의사와 간호조무사가 들어와 수술을 이어받고, 혈액 등 최소한의 준비도 돼 있지 않았던 병원에선 상태가 안 좋은 환자를 두고 의사들이 퇴근을 해버렸습니다.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이 일은 우리 대희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걸 느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날 대희와 동시에 수술을 받은 다른 두 명의 환자는 집도의가 여러 명을 동시에 수술하고 수술방 이곳저곳을 오간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요? 그렇게 수술을 받은 환자는 대체 몇 명일까요. 과연 그런 일이 이 병원에서만 일어난 일이었을까요. 보건복지부는 이런 일이 강남 한복판에 있는 병원에서 벌어지는 걸 알고는 있는 걸까요.


2차 가해는 검찰이 자행했습니다. 처음엔 병원을 상대로 소송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어머니를 설득한 것도 저였습니다. 부끄럽지만 재정신청이 인용되기 전까지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후회한 적도 있었습니다. 검찰에게 이렇게 할지 모르고 소송을 고집한 제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죠.  

결론이라도 빨리 내줬다면 덜 억울했을텐데 무려 1년을 끈 뒤 핵심쟁점은 불기소처분을 했죠. 그 1년이 어떤 시간인지 검사는 알고나 있을까요. 아들 잃은 부모와 동생 잃은 형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노심초사했던 그 시간을 말입니다. 이후 이 검사는 검찰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하던 어머니와 우연히 마주치자 못 본 척 바삐 걸음을 옮겼습니다.

어긋난 관행은 반드시 바꿔야

다행히 이제 가을도 괴롭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지난 10월 28일 검찰은 법원의 명령에 따라 병원 원장과 그림자의사, 간호조무사를 무면허 의료행위 위반 혐의로 추가 기소했습니다. 법원의 재정신청 인용 덕분이죠. 대희가 떠나고 4년째 가을에 거둔 승리입니다.

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인 사유와 적용법조(적용되는 법률이나 규정 따위의 조목이나 항목)를 검찰은 공소장에서 그대로 따랐습니다.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고 간호조무사는 간호나 진료의 보조 업무만을 할 수 있지만, 성형외과 의사들이 위급한 환자를 간호조무사에게 30분 넘게 의료행위를 시킴으로써 의료법을 위반했다는 것이죠. 당초 성아무개 검사는 이 혐의는 빼고 업무상과실치사죄로만 기소했었지만, 결과적으로 두 개의 죄로 모두 기소된 것이지요.

법원은 11월 3일, 추가로 기소된 의료법 위반을 기존 업무상과실치사재판과 병합했습니다. 이에 의료진 측 변호사는 죄가 새롭게 추가되었으니 변론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공판기일변경 신청을 제출했습니다. 그 결과, 본래 11월 10일로 예정되었던 재판은 두 번이나 연기되어 2021년 1월 12일로 약 두달 미뤄졌습니다. 

애초에 성아무개 검사가 법에 따라 공정하게 수사하고 저지른 죄를 불기소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면, 2016년에 발생한 범죄가 몇 해를 지나 2021년까지 오게 되지는 않았을테죠. 재정신청까지 가면서 법원의 사회적 자원이 낭비되는 일도, 어머니가 1인 시위를 100일째 이어가는 고생을 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아쉬운 마음도 크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재정신청 인용이 환자 동의를 받지 않은 공장식 유령수술이란 성형외과들의 잘못된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는 것에 의미를 둡니다.

저는 믿습니다. 만약 권대희 사건이 없었더라면 더욱 많은 의료사고 피해자가 검찰과 의사들에게 비슷한 일을 당했을 수 있다고요. 아직도 사고 초기 의사들이 저희에게 했던 언행들이 잊히지 않습니다. 소위 '법대로 하자'며 먼저 소송을 원하던 태도와 뻔뻔한 태도를요.


아마도 의료진의 업무상 과실치사죄와 의료법 위반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게 해석하고 불기소한 검찰의 처분들이 관행처럼 오랫동안 쌓여왔기 때문이겠죠. 이러한 관행이 의료행위에 대한 책임감을 떨어뜨리고 사고의 개연성을 높입니다. 그래서 저희의 싸움은 저희 가족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지난 대희의 생일날, 어머니는 납골당에 편지 한 통을 붙여두고 오셨습니다. 

그 편지를 아래 소개해봅니다.
 

납골당에 부친 엄마의 편지 살아있었다면 올해는 대희의 서른번째 생일이었다. ⓒ 권태훈

 
사랑하는 우리막내 대희야
30번째 생일 축하해

엄마가 힘이 없어 네가 남기고 간 수술실CCTV가 있어도
너의 억울한 죽음을 못 밝혀 미안하구나.
너의 억울하고 허망한 죽음이 헛되지 않게
엄마는 끝까지 싸울 거야
힘이 들더라도

명백한 물증인 수술실CCTV 영상을 무시하고
진실을 뭉개는 사람은
그 누구도 용서할 수가 없다
내가 죽어서라도 응징하고 용서하지 않을 거야

엄마는 너의 죽음으로 강자의 횡포를 알았어
너무 서럽고 서럽다.
검찰과 의료는 개혁의 대상

너의 버킷리스트 15번
"세상에 내 이름으로 된 흔적 남기기"
'권대희법'으로
약자들이 보호받는 세상이 되도록
남은여생 다 바치마

훗날 하늘나라에서 떳떳하게 너를 만나기 위해
엄마가 약속하마
불러도 대답 없는 나의 사랑하는 막내아들 대희에게
#권대희생일 #생일편지 #권대희 #권대희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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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정의와 약자의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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