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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세계 유랑민 된 사연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제4부 작가 및 시민 기자생활 (5)

등록 2020.11.30 10:27수정 2020.11.3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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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서 고향을 찾아온 왕산 후손들. ⓒ 박도


민족 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

중국에서 돌아온 이후 나는 수업이 빌 때마다 같은 구내에 있는 이화여대 중앙도서관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해 연말까지 독립운동사 관계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자 그제야 어슴푸레 독립운동사가 비로소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해 겨울방학 내내 답사자료를 꺼내놓고 본격 집필했다. 

그 무렵 박철규 은사님이 근황을 묻는 전화가 왔다. 그래서 나는 중국대륙 항일유적답사기를 집필 중이라고 말씀드리자 대단히 반가워하셨다.

"요즘 유홍준이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장안의 지가를 올리는 모양이네. 자네는 홍준이 고교 선배가 되니까 더 잘 쓰시게."
"예, 선생님. 격려 말씀 감사합니다."


그해 3월 말에 집필이 끝났다. 책 제목은 이항증 선생의 자문을 받아 <민족 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로 정했다.

탈고된 원고 뭉치를 보자기에 싼 뒤 그즈음 문화유산답사기를 펴낸 한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 한 편집위원은 3주 후 출판 여부를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약속한 날 잔뜩 기대하면서 그 출판사로 갔다.

그 편집위원은 원고 보따리를 내 앞으로 밀면서 겸연쩍게 말했다.

"편집회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필력 부족에 크게 자탄, 낙담하면서 한숨을 쏟았다.

"글을 너무 쉽게 쓴 게 흠이었습니다."

그 무렵 나는 이오덕 선생의 말씀에 감화를 받아 글은 누구나 알기 쉽게 써야 한다는 신념이 굳은 때였다. 차라리 그 말을 듣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 원고 보따리를 들고 뒤돌아섰다.
 

<허형식 장군> 출판 기념식장에 모인 내빈(왼쪽부터 정운현 전 국무총리비서실장, 이규상 눈빛출판사 대표, 필자,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수석 연구위원) ⓒ 박도

   
사학자 장세윤과 언론인 정운현을 만나다

어느 날 이대 중앙도서관 4층 서가에서 <한국독립운동사 연구> 제7집에서 '허형식 연구'라는 장세윤 박사의 논문을 발견하고 단숨에 읽었다. 그러자 허형식 장군의 발자취를 갑자기 더듬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같은 구미 출신인 허형식 장군과 박정희 대통령의 생애를 '네 발의 총성'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고자 기획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그분의 아내(육영수, 김점숙)까지도 총살로 이승을 떠났다. 그래서 현지 답사 자문을 받고자 당시 성균관대학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장세윤 박사에게 연락했다.

내가 만나 뵙기를 청하자 장 박사는 기왕이면 허형식 장군을 국내 신문에 최초로 보도한 <대한매일신문> 정운현 기자도 합석하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리하여 2000년 7월 중순, 우리 세 사람은 성균관대 동아시아연구소에서 만났다.

그날 내가 허형식 장군과 동향이라고 말하자, 두 분 모두 초면임에도 마치 십년지기처럼 맞아주었다. 정운현 기자는 <중앙일보> 재직 당시 특집 '실록 박정희' 현장취재로 구미에도 여러 번 답사했다면서 당시 상모동 박정희 대통령 생가보존회장 김재학 어른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어른은 할아버지 친구로 우리집 사랑방에도 자주 오셨다. 그때마다 나는 사랑에서 그 어른에게 매번 큰절을 드린 바 있었다. 그날 두 분에게 허형식 유적지를 답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장 박사는 답사에 도움이 될 거라면서 중국 헤이룽장성 공산당자료실장 김우종 선생의 연락처를 건네줄 뿐 아니라 다른 자료도 챙겨줬다.

나는 애초 현지 사정에 밝은 김중생 선생과 함께 허형식 장군 유적지를 더듬으려고 했으나 여의치 못했다. 그래서 나 혼자 북만주 현지를 답사키로 작정했다. 서명훈· 김우종 두 분 선생에게 편지와 전화로 현지 안내를 부탁했다. 그러자 두 분 모두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승낙했다.

2000년 8월 17일 제2차 항일유적답사 길에 올랐다. 그날 오후 하얼빈시 건국가 조선문화궁전에서 김우종·서명훈 선생을 만나 허형식 장군의 항일투쟁사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허형식 장군 순국 희생지에서 현지 관리들과 함께.(2000. 8.) ⓒ 박도

 
허형식 장군 순국 희생지를 찾아가다

이튿날 새벽, 동포 운전기사를 안내 겸 통역으로 삼아 허형식 장군 순국 희생지를 찾아갔다. 마침내 헤이룽장 성 경안현 대라진 청송령 들머리 허형식 희생지 비석에 이른 후, 나는 들꽃 한 묶음을 비 앞에 바치면서 깊이 묵념을 드렸다.

그곳 현지인들은 허형식 장군의 고향 출신 첫 참배객이라고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대대로 환영해 줬다. 다음날 청년 허형식의 근거지 가판점(현 빈안진) 일대를 둘러봤다. 그곳은 청년 허형식이 항일전사로 맹활약하면서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군사부장 최용건을 만나 후일 동북항일연군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기반을 닦은 곳이었다.

그곳을 답사한 다음 날, 곧장 창춘으로 갔다. 그곳에서 청년 박정희가 젊은 날 문경초등학교 교사직을 그만두고 호적까지 고쳐가면서 애써 찾아간 만주군관학교를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2000년 8월 22일, 지린성 인민대회상임위원회 동포 리정문 부주임의 안내로 창춘 교외 날랄툰에 있는 옛 만주군관학교를 참으로 어렵게 찾아갔다. 하지만 그곳은 그 무렵 중국군 기갑부대로 변해 있었다. 군부대는 어디나 사진 촬영금지이기에 멀리서 부대의 담벼락만 촬영한 뒤 허무하게 발길을 돌렸다. 

귀국 후 장세윤 교수와 함께 허형식 장군의 임은동 생가와 상모동 박정희 생가를 탐방했다. 
   

하얼빈 동북열사기념관에 소장된 허형식 장군의 유품들 ⓒ 구미 허형식 장군기념사업회 전병택

   
허형식 장군 생가

구미시 임은동 264번지 허형식 장군 생가와 그 앞 왕산 허위 생가는 폐허가 된 채 대나무 몇 그루만 자라고 있었다. 임은 허씨 가운데 전 구미시의원 허호씨는 고향 땅을 지키며 친절히 안내해 줬다.

그 무렵 박정희기념관을 세운다고 그러기에 나는 장문을 당시 김관용 구미시장에게 보냈다. 박정희기념관보다 먼저 폐허가 된 왕산 생가부터 돌보는 게 바른 처사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런 연유인지 그 몇 해 후 왕산기념관이 세워지고, 생가 터는 왕산기념공원으로 조성됐다. 
  

1999년 왕산 허위 생가 터로 현재는 왕산기념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바로 앞이 허형식 장군 생가 터로 현재는 그 많은 꽃 중에 하필이면 벚꽃 하우스가 들어서 있다. ⓒ 박도

 
나는 구미중학교 선배인 허호 의원을 통해 만주로 망명했던 왕산 유족들이 러시아, 중국, 북한, 우즈베크,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 미국, 등지로 뿔뿔이 흩어졌다는 얘기도 들었다. 허 선배 주선으로 대구에 살고 있는 허형식 장군 작은집 조카(허창수) 댁에도 찾아가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들었다.

허형식 장군 부인은 해방 후 귀국해 남대문 옆 회현동에서 과일장수로 살았었다. 하지만 6.25전쟁 때 인민군에 부역혐의로 1950년 9.28 수복 후 우익청년들에게 연행돼 미아리 골짜기로 끌려가 즉결 처형됐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허형식 장군의 딸과 아들은 허형식 장군의 혈맹 동지 북한의 산업상(6.25 당시는 전선사령관) 김책의 배려로 6.25전쟁 전에 월북해 평양 대동강변에서 산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 얼마 후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에 거주하는 왕산 후손 허도성 목사가 일시 귀국해 만났다.

그분은 임은 허씨 왕산 후손들이 그새 국제 고아로 '일리야' '부로코피' '슈라' '나타샤'가 됐고, 당신 후손마저도 머잖아 '로버트 허' '벤 허'가 될 판이라고 눈시울을 적셨다. 우리 현대사의 아픈 그늘이 아닐 수 없다. 사회 정의나 대한민국 국가 정의를 위해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문제이리라.
    

왕산기념관 전경 ⓒ 박도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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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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