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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 편을 쓰기 위해 50년이 걸렸습니다"

[어느 해방둥이의 삶과 꿈] 제4부 작가 및 시민 기자생활 (3)

등록 2020.11.25 11:01수정 2020.11.2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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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흥 마을의 오미자 열매(2006. 9.). ⓒ 박도

     
"하룻밤 만에 다 읽었습니다"
 
나는 그 무렵 새한신문에 글을 연재한 이후부터 교육계의 잡지나 수험생활과 같은 곳에서 원고 청탁이 심심찮게 들어왔다, 입시문제나 모의고사 문제출제 의뢰에는 원고료도 쏠쏠했다. 하지만 그런 청탁에는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 그건 나의 자존심이요, 문학에 대한 순수성이었다.
 
어느 하루 청진동에 있는 다나출판사 문을 두드렸다. 그 무렵 그 출판사는 신흥출판사로 <마루타> <잃어버린 너> 등의 책 광고로 연일 일간지 광고면을 도배하고 있었다.
 
퇴근길에 그 출판사로 찾아가자 한 직원(출판인 황인원씨)은 문전박대하지 않았다. 그도 다른 출판사처럼 '원고를 두고 간 뒤 2주 후에 오라'고 말했다. 그와 약속한 2주 뒤 그 출판사로 갔다.
 
그는 매우 반갑게 맞은 뒤, 곧 정기석 출판사 대표를 만나게 했다.
 
"박 선생님, 원고를 하룻밤 만에 다 읽었습니다. 소재가 다양하더군요."
 
그는 내가 가제로 정한 책 제목 대신에 목차 소제목이었던 <비어 있는 자리>를 이미 책 제목으로 뽑아두고 있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출판 계약을 했다.
 

강원도 황성, 미술관자작나무숲 뜰. ⓒ 박도

 
'죽어도 좋아'
 
1989년 11월 18일, 비로소 나의 첫 산문집 <비어 있는 자리>가 출판됐다. 책 발간에 맞춰 이대부고 제자들이 앞장서서 이대동창회관에서 출판기념회를 마련해줬다. 조촐하면서도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긴 모임이었다.
 
나의 친지, 동창, 제자, 동료 선생님 등 200여 하객들이 축하해줬다. 나는 인사말을 통해 '이제 한 권의 책이 완성됐으니 죽어도 좋다'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웃 연세대 김동길 교수가 그 책을 보고 격려의 편지를 보내왔다.
 
"아름다운 삶이 있어서 아름다운 글들이 쓰질 수 있겠지요. 키츠의 말대로 'Beauty is truth, truth beauty'라면 선생님의 참된 삶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끝까지 아름답게 참되게 그리고 착하게 사시는 빛나는 삶 되기를 빌면서." - 1990년 1월 7일 신촌에서 김동길 적음  
 
그 책을 본 대학 동기 문학평론가 한승옥(숭실대) 교수가 일부러 학교로 찾아왔다. 그는 자기가 다니는 성당 주보에 내 책 리뷰를 썼다면서 그 전문을 전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소설을 쓰라고 권유했다.
 
"소설을 쓰지 못해 수필을 썼네."
"뭐, 소설이 별갠가. 수필을 조금 더 길고 재미있게 허구화시키면 소설이 되는 거지."

그는 내 잦아진 소망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그때 마침 다나출판사 정 사장도 내게 소설을 쓰라고 선 인세까지 챙겨주면서 채근했다.
    

안흥 마을의 앵두(2004.6.). ⓒ 박도

   
첫 장편소설 <그대의 초상>
 
그래서 나는 이제까지 단골 주제였던 분단문제, 이념문제에서 벗어난 청순한 러브 스토리로 제재를 바꿔 소설 집필에 들어갔다. 이왕이면 장편소설로 두 권 이상의 분량으로 잡았다. 작품 구상에서 탈고까지 30개월 남짓 걸렸다.
 
그때는 고3 학년 담임까지 맡은 때라 무척 힘들었다. 어떤 날은 두어 시간 눈을 붙이기도 했고, 주말은 꼬박 밤을 새우기도 했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작품을 쓰다가 다음 날 수업을 위해 중단한 뒤 뒷날 다시 필을 들면 글의 흐름이 이어지지 않을 때였다.
 
작품에 현장감과 사실감을 잃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작품 배경 장소를 찾아다녔다. 서부전선, 한강, 임진강, 청평호, 월정사, 경포대, 거진항, 세브란스병원, 벽제 장제원 등을 수시로 찾았고,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와 어느 독자의 후원으로 유럽까지도 다녀왔다.
 
탈고한 원고는 2800여 매였지만 원고지 1만여 매의 파지를 냈다. 컴퓨터 자판에 익숙지 않아 줄곧 만년필로만 썼다. 나는 원고에 대한 결벽증이 심해 어떤 부분은 너댓 차례 퇴고와 정서를 거듭했다.
 
그래야 직성이 풀렸고 내 부족한 재능을 정성으로 메우고 싶었다. 그리고 내 필체에 혼을 담고자 했다. 그러자 무리한 집필에 따른 어깨 통증으로 신촌의 한 한방병원에서 석 달 남짓 침을 맞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척 행복했다.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 소설 속에서 청순하고 아름다운 두 여인과 사랑도, 결혼도 했으며, 끝내 그들이 내 곁을 떠날 때는 눈물도 많이 흘렸다. 마침내 1992년 1월 15일 나의 첫 장편소설 <그대의 초상> 제1부 '빛과 사랑' 편이 출간됐다.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 표지 ⓒ 시와사회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
 
그 책이 나온 뒤 출판사 정 대표는 시장 반응이 시큰둥하다고 책 제목을 크게 탓했다. 나는 '그대의 초상(肖像)'이란 제목은 아름다운 한 여인의 모습을 형상화하여 붙였다. 그런데 정 대표는 그 초상을 '초상(初喪)'으로 해석하면서 제목을 바꾸라고 권유했다.
 
그리하여 제2부 '빛과 그림자' 편을 낼 때는 책 제목을 <그리움의 향기>로 바꿨다. 그래도 시장 반향이 시원치 않았다. 그러자 출판사에서는 더 이상 광고도 하지 않고 내 책 판매를 포기하는 듯했다.
 
나는 그제까지 고집했던 분단문제, 이념문제는 다루지 않는다고 작심하고 집필했다. 그런데 출판된 작품을 보니까 해직 기자와 비전향 장기수 딸의 순애보로 이념문제가 작품 속에 농익어 있었다. 영업사원 출신인 정 대표는 작품성보다 시장 반향을 제일 우선시했다. 그게 출판사가 살아남는 길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었다.
 
1993년 추석 때 마침 고종아우인 김윤태 문학평론가가 내 집에 왔다. 이런저런 얘기를 끝에 나의 첫 장편소설 얘기를 했다. 그러자 그는 자기가 편집위원으로 있는 한 출판사에 주선해보겠다고 말했다.
 
나는 원작을 다시 가다듬어 곧장 그가 추천한 시와사회 출판사로 보냈다. 원고를 넘긴 지 사흘 만에 연락이 왔다. 그 출판사 대표 이소리 시인은 만나자마자 선뜻 자기 출판사에서 내겠다고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썼다.
 
곧 초교 교정지와 함께 머리말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다음과 같이 썼다.
 
 "매미란 놈은 여름 한철 동안 울기 위해 땅속에서 10여 년간 유충 시기를 보낸다고 한다. 나는 이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위해 무려 오십 년간의 세월이 걸렸다. "
  
새로운 제목을 고심하던 가운데 그 무렵 출근길 시내버스가 독립문고가도로 위를 지나는데 문득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는 말이 불쑥 떠올랐다. 사실 나는 늘 누군가(어머니)를 그리며 살고 있었다.
 
이 책이 발간되자 몇 신문에 서평이 나갔다. 그러자 여러 방송국에서 출연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나는 그때마다 책 판매를 위해 빠지지 않고 출연했다. 그런 탓인지 초판 3000부가 한 달여 만에 나갔고, 곧 재판이 나왔다.
 
지난날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간사였던 이소리 대표는 나를 신입회원으로 추천한 바, 1994년 6월에 정식으로 민족문학작가회의에 입회했다. 당시 이사장은 백낙청 선생, 상임이사는 정희성 시인, 총무간사는 이승철 시인이었다.
 
그때 민족작가회의에서는 매달 마지막 토요일을 만남의 날로 정해놓아 그 자리에서 여러 문인과 친교를 나눴다. 그때 알게 된 분으로 이기형, 이경자, 현기영, 김영현, 이오덕, 유시춘 선생 등이었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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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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