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마틴 에덴> 포스터 ⓒ 알토미디어(주)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만을 바라보고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찾기 시작한다. 그렇게 내 시선을 상대방에게 고정시키면 그 사람의 주변까지 시선이 확장된다. 보통 사랑에 빠지면 눈이 멀게 된다고 이야기 하지만 더 나아가 좀 더 상대방에게 집중하면서 그 주변까지 사랑하게 되어 버린다.
그래서 사랑은 달콤한 감정을 주고 그에 따라 넓은 이해심을 준다. 단순히 과학적으로 이야기하면 호르몬의 힘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꽤 강력해서 두 사람 각자의 행동이나 생각까지 바꿀 수 있는 엄청난 힘이 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서로를 닮아가려 노력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어떤 것들을 상대방을 위해 가지려고 노력하거나, 마주 보고 있는 그 사람과 닮아가려 애쓴다. 그렇게 마주 보고 같은 위치에 서면 사랑이 완성된다고 느끼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은 상대방과 같은 선상에 서있으려 계속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상대방의 주변까지 보게 되고 그 사람의 배경과 가족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사랑의 연장선 상에서 그런 주변과도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 과정은 꽤 힘들지만 그것을 버티게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랑의 힘이다.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로 시작하는 영화 <마틴 에덴>
▲ 영화 <마틴 에덴> 장면 ⓒ 알토미디어(주)
영화 <마틴 에덴>은 기본적으로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마틴(루카 마리넬리)은 우연히 엘레나(제시카 크레시)의 동생이 불량배에게 맞고 있는 것을 보고 그를 구해준다. 그리고 그 동생의 초청으로 그의 집에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엘레나를 처음 만나게 되고 그와 멈출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 영화는 이렇게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모습을 바탕에 깔고 그 둘이 마주 보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배경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경제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마틴은 현재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이고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학력으로 어휘에 능숙하지 못하다. 아직 누나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 그는 자신의 처지와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엘레나의 집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대화했던 그 장면들에서 굉장한 충격을 느낀다. 그는 식사를 마치고 그 집 문을 나서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엘레나에게 느낀 사랑의 감정도 대단했지만, 그 집에서 나눴던 대화나 생활방식 등을 접하게 되면서 이전에 겪지 못했던 엄청난 영감과 에너지를 느꼈다.
그 집에 들어가서 다시 나오는 그 순간부터 그는 어떤 목표점을 만들었을 것이다. 자신과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상대와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세계를 만난 듯한 느낌을 받았고, 황홀한 그 순간에 마틴이 느낀 감정은 배우 루카 마리넬리의 얼굴에서 잘 드러난다. 마르고 볼품없는 옷차림이지만 반짝이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는 그의 얼굴은 마치 모든 것을 처음 경험하는 아이처럼 빛난다. 미술과 시, 그리고 음악을 접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날 것 그대로 엘레나에게 전달하는 마틴은 그 자체로 즐거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새로운 관점을 가진 마틴의 의견을 들은 엘레나도 그에게 호감을 느낀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의 사랑 속에 숨어있는 것
두 사람이 만난 것이기도 하지만, 두 세계가 만난 것이기도 하다. 빈민의 저학력층인 마틴과 상류의 고학력층인 엘레나가 만나게 된 것인데, 이 둘은 서로 접하지 못했던 배경을 가진 상대방에게 강력하게 끌린다. 교육을 제대로 마치지 못한 마틴이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건 주로 번뜩이는 재치와 유머다. 그런 비형식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마틴의 태도는 꽉 짜인 규율 속에서 자란 엘레나에게 새로운 감정과 생각을 선사한다. 반대로 엘레나는 박학다식한 지식과 여러 가지 책들을 마틴에게 알려주는데 이것은 마틴의 행동과 생각을 크게 변화시킨다.
마틴은 짧은 단어와 지식들을 최대한 동원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을 제대로 쓰기 위해 모아둔 돈으로 중고 타자기를 구입하고 여러 가지 도서들을 탐독한다. 엘레나의 사랑이 열어준 그 지식의 세계에 들어온 그는 평소에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면서 계속 자신의 글을 잡지사에 투고하려 애쓴다.
그의 모습은 빈곤층이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주류 사회에 진입하려 수없이 시도하지만 번번히 반송 메일을 받는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는 약간 모자란 듯 보이는 그가 수없는 실패를 하고 다시 도전하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그는 엘레나와 동등한 위치, 즉 작가로 성공한 위치에 서있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영화는 초반에 마틴과 엘레나의 계급적 위치를 보여주는데 그런 엄청난 계급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사랑에 빠지면서 그것마저 그들이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하지만 영화 중반 그들이 극장에서 나오면서 영화에 대한 평가를 하는 장면을 통해 그들이 가진 의식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엘레나는 영화가 긍정적이어서 좋다고 하지만, 마틴은 진정한 빈곤층이 어떤 식으로 살고 있는지 제대로 묘사하지 않았다고 불평한다. 엘레나는 부르주아적 계급의 관점에서 보다 나은 미래를 보고 싶어 하지만, 마틴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관점에서 빈곤층들의 문제를 정면으로 직면하는 것을 통해 현재를 수정해야 미래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계급적 대립은 마틴이 우연히 접하게 되는 사회주의와 엘레나의 가족이 선호하는 민주주의 또는 자본주의의 대립으로 영화 내내 이어진다. 점점 사이가 벌어지는 마틴과 엘레나 사이의 간극은 마치 두 체제가 같이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두 사람도 공존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다. 영화는 민주주의가 주창하는 이야기를 엘레나 주변 인물들을 통해 설명해주고, 그다음으로 마틴이 새롭게 만나는 사회주의 주창자들의 주장을 통해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가치를 설명한다. 그리고 마틴은 그 사이의 간극 안에서 자기 자신 만이 믿는 방향으로 의식을 만들어간다.
계급과 체제 갈등, 그리고 사랑
▲ 영화 <마틴 에덴> 장면 ⓒ 알토미디어(주)
강력한 사랑의 힘으로도 이 두 체제 간의 간극은 막을 수 없다. 사랑은 국경도 넘는다고 하지만 마틴과 엘레나 사이의 계급적 간극과 사상적 간극은 서로가 받아들이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마틴은 전반부의 인물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 아나키스트적으로 보이는 그는 대중들 앞에서도 두 체제가 가진 문제점 같은 것들을 쉽게 설명하기도 한다.
후반부 마틴의 눈빛은 분노에 차 있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절망으로 가득해 보인다. 에너지가 매우 넘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지쳐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그의 모습은 계급갈등이나 체제 갈등의 한가운데서 그저 그 시끄러운 논쟁을 바라봐야만 하는 일반 대중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결국 그 싸움 자체도 어느 정도의 지위에 있어야만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니까.
영화 <마틴 에덴>은 마치 한 인물에 대한 전기 영화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가 사랑에 빠지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실연을 겪지만 개인적인 성공을 경험한다. 그 과정에서 그의 눈빛과 생각은 바뀌었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강력한 사랑조차 그런 외부적인 요소에 의해 영향받고 망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마틴의 모습을 통해 세상에서 개인의 모습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지를 잘 보여준다. 영화의 이야기도 매우 흥미롭지만 엄청난 에너지를 보여주는 마틴 에덴 역을 맡은 루카 마리넬리의 강력한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다. 그의 눈빛에 사랑, 계급, 체제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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