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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V 빌런 걸러냈다" 코로나가 영화제에 가져온 의외의 '훈풍'

[기획] 코로나19 시대, 영화제 온·오프라인 결합 중요성 확인하는 계기

20.11.02 15:06최종업데이트20.11.0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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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된 학술 프로그램 '포럼 비프' ⓒ 부산영하제

 
코로나19는 국내외 오프라인 중심의 영화제에 재앙 같은 것이었다. 감독·배우와 관객이 직접 만나서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고, 영화인들이 교류를 하는 행사가 사람 간의 접촉이 제한되면서 취소되거나 축소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 중심의 개최를 통해 의외의 성과로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달 30일 폐막한 부산영화제는 상영을 제외하고는 모든 행사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몇 안 되는 행사에서 가장 관심을 많이 받은 것은 지석영화연구소(이호걸 소장)가 주관한 '포럼 비프(FORUM BIFF)'였다. 아시아콘텐츠어워즈나 아시아필름어워즈의 조회수가 4천회를 약간 넘기거나 5천 외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면 포럼 비프는 2만 1천 회에 달하며 전체 온라인 행사의 70%를 차지했다.
 
포럼 비프는 부산영화제가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학술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주제를 통해 영화의 담론을 형성하고 깊이 있는 토론을 진행한다. 올해도 가장 시의성 있는 주제인 젠더와 페미니즘, 광주민중항쟁 40주년, 한-러 수교 30주년을 맞아 러시아 영화, 코로나19 시대의 삶과 영화 등을 놓고 다양한 발제와 토론이 이어졌다.
 
사실 포럼 비프는 영화제 기간 중 참여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비인기 행사였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진행된 올해는 달랐다. 직접 부산에 오지 못하더라도 관심 있는 이들은 누구나 유튜브 중계를 통해 프로그램을 지켜볼 수 있었다. 토론 주제들이 참신하고 좋았던 덕분에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실시간 참여를 못하더라도 녹화영상을 통해 토론 내용을 다시 확인할 수 있기에 좋은 자료가 됐다.
 
국내 대학의 한 영화과 교수는 "공부가 많이 됐다"며 "수업과 수업 사이나 점심을 먹으며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주목받은 포럼과 GV의 변화
 

베트남과 연결했던 부산영하제 <은밀한> GV ⓒ 부산영화제

 
전 세계를 연결해 온라인으로 진행한 GV(관객과의 대화)도 마찬가지였다. 감독과 배우를 초청할 수 없었던 해외 작품의 경우 상영 후 온라인 GV를 진행했는데, 신선했다는 평이다. 물론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듣는 게 최선이지만 관객이나 감독 모두 만족한 기색이었다.
 
지난 21일 베트남에서 동시상영 후 진행된 <은밀한> GV에서 캐시우엔 감독은 "부산을 못가서 아쉬웠는데, 부산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며 "베트남 관객들과 함께 볼 수 있게 해 준 기술진들에게 감사하다"라고 인사를 전했다.
 
192회 상영 중 135회에 걸쳐 진행된 GV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된 건 총 90회였다. 코로나19로 이동이 제한돼 감독과 관객의 만남이 쉽지 않았던 상황을 온라인이 해결한 것이다.
 
관객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일반적인 GV의 경우 질문 대신 마이크를 잡고 영화에 대한 평을 길게 늘어놓거나, 엉뚱한 질문을 하는 관객들이 종종 있었으나 온라인 GV는 이를 방지하는 구실을 했다. 관객들의 선택이 많은 질문을 우선으로 했기 때문이다. 한 영화 커뮤니티 이용자는 "GV 빌런(악당)을 걸러냈다는 점에서 괜찮은 시도였다"고 평가했다.
 
손을 드는 것이 아닌 온라인 채팅창으로 궁금한 내용을 올리다 보니 질문도 상당히 많아졌다. 진행자의 능력에 따라 여러 질문을 잘 취합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뒤늦게 올라오는 질문은 선택받기 어려운 한계도 있었다.
 
그렇지만 대면으로만 진행돼 온 GV를 확대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음은 분명했다. 영화제 체류 일정이 짧은 감독과 배우들은 보통 1회 정도만 GV를 진행하는데, 감독의 의지만 있다면 공간적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2회 이상도 가능한 것이다.

"학습효과 대단, 자신감 갖게 됐다"
 

25회 부산국제영화제 온라인 GV는 채팅 창을 활용해 질문을 적으면 호응하는 관객들이 많은 질문을 우선적으로 묻는 방식이었다. ⓒ 성하훈

 
온라인 GV 생중계나, 유튜브 채널 활용을 통해 다양한 영화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의 중요성도 커졌다. 이용관 부산영화제 이사장이 "학습효과가 대단했고, 잘 될 것 같은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한 것도, 온라인의 장점이 크게 도드라진 부분들 때문이었다.
 
지난 9월 개최된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속에 개막식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해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유튜브 등을 통해 1200명이 동시 시청했고 좋아요 반응도 6만개를 기록하며 영화제 관계자들을 고무시켰다.
 
온라인 중계 댓글창에는 "직접 참석하지 않아도 개막행사와 축하 공연을 볼 수 있어 좋다"거나 "해외에서 실시간으로 개막식을 보는 것이 감격스럽다"는 등의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국내 4대 영화제 중 부산영화제에 앞서 온오프라인에서 정상적으로 영화제를 개최한 부천영화제 배장수부집행위원장은 "코로나19 시대 온라인은 피할 수 없는 대세"라며, "장점들을 잘 살려나갈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천영화제는 올해 불가피한 극장 축소를 보완하기 위해 하이브리드 개념을 도입해 관객 접점 다각화에 힘을 썼다. 오프라인 플랫폼(극장) 외에 온라인·모바일 플랫폼과 연계해 국제영화제 존재 의의인 영화 다양성 보호와 증진 및 영화 향유권 확대를 꾀했다. 온라인으로 전환된 영화제들이 많았던 상황에서 온·오프라인을 잘 활용한 결과였다. 
 
오프라인 정상개최 영화제들 돋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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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에 개최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GV(관객과의 대화) 모습 ⓒ 부천영화제


한편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나면서 국고지원을 받는 7개 국내 주요 영화제들이 모두 마무리됐고, 각 영화제의 성과도 드러났다. 코로나19로 인해 정상적인 개최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가운데, 부산영화제는 가장 많은 상영작과 온라인을 활용한 프로그램들이 주목받으며 국내외적인 위상을 확인시켰다.
 
부천영화제도 제한적이기는 했으나 오프라인 행사를 중심으로 온라인 상영을 병행하며 정상적으로 개최한 영화제가 됐다. 코로나19의 장벽을 뛰어넘은 것이다. 초청작품은 42개국 194편으로 가장 많았다.
 
반면 전주영화제는 전주시의 우려로 인해 심사위원과 상영작 관계자만을 입장시키고 무관객으로 치러지면서 명맥만 이은 셈이 됐다. 영화제 이후 초청작 상영을 9월까지 지속했으나 정상적인 개최를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도 온라인으로만 진행되면서 코로나19 장벽에 갇혀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진행되는 가운데서도 정상적인 상영이 이뤄졌고,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경기도의 우려 속에 일반 관객없이 영화관계자들만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나 정상적인 개최 형식을 취하면서 개최의 의의를 살렸다.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도 모든 상영을 정상적으로 진행해 세계 3대 청소년영화제로서의 위상을 확인시켰다. 54개국 189편의 영화가 극장에서 아무런 사고 없이 상영됐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영화제 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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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주요 영화제, 정책 등등)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각종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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