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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코로나19 방역, 서구 사회에 비해 훨씬 투명해"

[인터뷰] 책 '반부패의 세계사' 펴낸 김정수 박사

등록 2020.11.03 09:08수정 2020.11.03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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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박사의 <반부패의 세계사> ⓒ 가지출판사

 

김정수 박사의 <반부패의 세계사>는 딱딱한 수치나 통계보다는 동서양의 세계사 무대에 등장해 여러 형태의 부패 문제를 다루었던 사람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다. 그 사람들 중엔 정치인, 성직자, 회계사, 판사, 언론인, 정보원 그리고 수많은 일반 시민들이 있다. 이 책은 그들이 그 시대의 부패와 직면했을 때 어떻게 사고하고 대응했는지를 대화하듯이 쉽게 풀어 설명해 준다.


저자는 지금 캐나다에 살고 있고 필자는 지금 영국에 살고 있다. 아래는 지난 10월 25일부터 대서양을 넘어 우리가 <반부패의 세계사>와 관련해 며칠간 나눈 대화 내용을 정리한 것. 

부패와 반부패는 문명과 함께 시작됐다 

- 개인적으로 부패와 반부패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1997년 'IMF위기'가 계기였다. 과거엔 부패를 독재시대의 산물로 생각했고, 민주화와 더불어 청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997년 문민정부 당시 한보철강 부도로 본격화된 'IMF위기'는 국가, 정치, 시장의 실패를 초래했다. 이 사건을 보면서 부패가 특정체제만의 부산물이 아니며 그 여파가 권력층 일부가 아닌 전체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지난 2006년 부패에 관한 세계사를 다룬 책 <다리미를 든 대통령> 출간했고 최근엔 <반부패의 세계사>를 출간했는데, 인류 최초의 부패와 반부패는 무엇이었나?
"무엇이든 역사에서 '최초'를 특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욱이 동서와 고금에 따라 부패의 정의가 달랐기 때문에 최초의 부패와 반부패가 무엇이고 어떤 사건인가를 명확하게 특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부패와 반부패가 문명과 함께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부패는 사회적 행위와 현상이기에 도시와 통치조직 그리고 문자와 분업처럼 문명을 상징하는 특징들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기원전 30~15세기를 전후 이집트 제1왕조와 중왕국 시기 사법기관들의 부패, 기원전 25세기경 수메르 도시국가 신전 사제들의 공유지의 사유화, 고대 그리스의 델피 신탁을 둘러싼 뇌물, 그리고 주지육림의 하나라 걸왕의 부패는 문명과 권력, 부패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것은 통념과 달리 부패보다 반부패가 앞섰다는 것이다. 부패라는 행위와 사회현상을 특정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점을 알아야 한다는 반부패의 관점이 필요하다. 고대 이집트 중왕국기 <웅변가 농부>, 수메르 우르카기나의 개혁문서, 그리고 중국의 서경은 모두 고대국가 시대 부패를 개혁 혹은 반부패의 관점에서 다룬 기록들이다."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인 수메르문명에서는 왜 자유가 반부패의 의미를 띠게 되었나? 또 왜 시민참여 민주주의가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부패에 효과적인 처방이 되었나?
"고대의 반부패는 고대국가를 건설하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모두 낡은 문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의 기초를 만드는 제헌 혹은 변법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수메르 도시국가들의 주민들은 전쟁으로 관료와 사제집단의 권력이 강해지면서 과중한 세금과 착취, 채무에 시달리게 되었다. 당시 도시국가 라가쉬의 왕 우르카기나는 개혁을 통해 민중들을 고리대와 과도한 통제, 굶주림, 도적질, 살인, 재산과 인간에 대한 부당한 갈취로부터 해방시켰다. 이 개혁을 그는 '자유'라 불렀고, 그것이 '자유'란 말의 인류 최초의 기록이다.

고대 아테네의 솔론은 귀족과 서민들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에 일종의 제헌을 통해 아테네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았다. 그는 시민들의 민회와 시민법정 참여를 보장했다. 민회는 입법과 선전포고, 주요 관직의 임명 등 주요 권한을 갖게 되었고, 시민법정은 귀족 중심의 법정인 아레오파고스를 무력화시켰다. 결국 특권층도 시민법정의 결정에 승복해야만 했다."
 

저자 김정수 박사 ⓒ 김정수

 
- 오랫동안 국제투명성기구의 한국본부인 한국투명성기구(전 반부패국민연대)에서 활동했는데 국제투명성기구를 통해 어떻게 반부패 이슈가 세계화되었고 또 반부패 이슈가 세계화됨으로써 드러난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어떤 문제가 글로벌화되기 위해서는 글로벌 차원의 계기, 문제의식 공유, 관련 제도가 있어야 한다. 인권, 여성, 환경은 이런 과정을 통해 각각 1940년대, 1970년대, 1990년대 글로벌화되었다. 1970년대 중반에 미국은 물론 유럽과 일본의 권력층이 얽힌 록히드 부패사건, 1980년대 말 탈냉전과 경제의 글로벌화로 부패에 대한 글로벌 대처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그 과정에서 국제투명성기구는 부패인식지수의 발표와 국제반부패회의 조직으로 부패의 심각성, 반부패정책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 노력으로 2003년 유엔의 반부패협약이 체결되었고, 2016년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에도 반부패가 중요한 목표로 설정되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차원의 반부패활동이 가지고 있는 한계 또한 분명히 있다.

지금 국제적으로 가장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는 부패의 정의는 '공적 권력' 혹은 '위임된 권력의 사적이익을 위한 남용'이다. 보편적으로 보이는 이 정의는 사실 공과 사의 구분 및 사적 이윤의 범위가 명확해지기 시작한 18세기 이후의 서구 사회라는 특정시대, 특정지역을 배경으로 탄생한 개념이다.

때문에 이 정의는 글로벌화 된 현대사회에서 기업 간 혹은 기업 내 부패라는 사적분야의 부패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 또한 위임된 권력이 개인의 이익이 아닌 조직의 이익을 위해 남용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익의 측면에 집중하다 보니 도덕적, 윤리적 측면의 부패를 포함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촛불혁명, 반부패의 위대한 실천 

- 보수적인 우리나라 국회와 헌법재판소마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키게 만든 한국 시민의 촛불혁명이 반부패를 실천함에 있어 어떤 의미를 띠었다고 평가하는가?
"촛불혁명은 국가의 최고 권력인 주권의 소재가 국민에게 있음을 밝힌 과정이다. 박근혜 정부는 국가권력을 사유화하고, 정부-정치-기업-민간의 4각 커넥션에 의한 부패를 저질렀으며, 헌법을 무력화했다. 때문에 국가의 틀 내에서 국가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던 기존의 반부패정책으로는 당시의 부패를 극복할 수 없었다. 우르카기나, 솔론, 중국의 상앙처럼 제헌 혹은 변법 수준의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가 말해주듯 국가기구가 사유화된 가운데 주권의 담지자인 국민의 직접 나서서 나라를 바로 세운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촛불혁명은 기존 부패 개념과 그 개념에 기초한 반부패정책이 갖고 있던 한계를 뛰어 넘은 반부패의 위대한 실천인 셈이다."

- 책에서 "청렴하고 깨끗한 사람들은 한줌도 안 되는 세상, 부패가 넘쳐나는 세상, 이렇게 썩은 오물이 넘쳐나는 세상은 왜 아직까지도 망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라고 말했다. 어떤 이들은 "부패는 인간생활의 윤활유와 같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못산다"며 적당한 부패는 인간사에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편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부패가 윤활유가 될 수 있는 경우는 한줌에 불과하며, 맑은 물에 물고기가 없다고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부패는 '공적권력의 사적 이익을 위한 남용'이라는 근대서구 자유주의적 정의와 더불어 개인과 사회의 윤리 도덕적 타락과 오염이라는 공화주의적 개념도 포함하고 있다. 부패를 개인적인 자유주의로만 보면 윤활유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회적 공화주의를 함께 고려하면 부패는 결코 윤활유가 될 수 없다."

- 우리나라 기업과 기업 간의 부패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지?
"나는 <반부패의 세계사>에서 우리나라 부패를 크게 3단계로 나누었다. 첫째, 해방부터 1960년 4.19혁명까지 체제전반이 부패한 낡은 부패(old corruption)의 시대, 1961년부터 1997년 'IMF위기'까지 성장과 개발의 이름 아래 모든 것이 동원되었던 개발부패의 시대, 그리고 그 이후를 신자유주의 부패로 규정했다. '정경유착'은 개발부패 시대의 산물로 국가와 기업의 유착과 결탁이 개발의 명분 아래 합리화되었던 시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기업지배구조 개선, 회계투명성 강화와 같이 시장의 효율성을 강화하고 정부의 규제나 통제보다는 기업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이었다. 그래서 반부패도 부패 방지를 통해 국가경쟁력이 강화되고, 기업 이윤이 증가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적 담론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러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버블 없는 경기침체를 통해 더욱 명백히 드러난 것은 시장의 효율성, 기업의 자립성에 모든 것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기업의 부패, 기업과 기업간 부패는 자율적 개선도 중요하지만 공적인 간섭과 견제, 특히 주식시장과 금융에 대한 공적감시가 강화되어야 한다."

- 지난 1990년대에는 독일에서 생활했고 지난 2008년 이후 부터는 캐나다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독일과 캐나다가 한국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면? 또 한국이 독일이나 캐나다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면?
"시대가 많이 변했다. 나는 1990년대의 독일과 2000년대 초반의 캐나다는 배울 것이 많은 사회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라는 대역병의 시대를 겪으면서 우리가 개항 이후 서구를 따라잡기 위해 가졌던 배움의 콤플렉스는 이제 넘어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슈피겔>지는 코로나19 대처 과정에서 서구사회가 '치명적 오만'에 빠져 안이하게 대처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후 독일은 한국방역을 모델 삼아 코로나19에 대처하고 있다.

프랑스 <르몽드>지는 마르셀 모스의 '총체적 사회적 사실' 개념을 빌려 한국은 의료공공성과 시민의식차원에서 프랑스와는 완전히 다른 총체적 사회적 사실을 구축했다고 조명한 바 있다. 코로나19 방역이라는 측면에 집중해서 보면 한국은 정책 결정 과정, 감염 관련 데이터 관리, 의료 장비의 공급과 조달, 치료제 및 백신 개발과정에서 미국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독일이나 캐나다에 비해 훨씬 투명하다."

-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 책은 분량도 많고 주제도 딱딱해 보이지만 청소년들도 쉽게 읽을 수 있다. 반부패에 관한 이야기지만 수치와 통계보다는 주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세계사 속에서 부패와 맞닥뜨린 정치인과 성직자와 회계사, 판사와 언론인과 정보원,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이 어떤 판단을 내리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의 반부패 노력에 대한 이야기가 수많은 가짜뉴스들의 홍수 속에서 독자들이 그 너머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시각을 갖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저자로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반부패의 세계사

김정수 (지은이),
도서출판 가지, 2020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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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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